"어느 한 가지 일에 진심으로 기도를 하다보면 그 기도가 하늘에 닿구요, 다시 그 기도가 감흥이 돼서 돌아오게 돼 있는 거예요."
영화 <극비수사>에 나오는 말이다. 영화 주인공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나도 진심을 다하는 일이 하나 있다. 김현희-KAL858기 사건 일이다.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 여객기가 사라졌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현 국가정보원/ 아래 국정원) 수사결과에 따르면 북쪽 공작원이 비행기를 폭파시켜 115명을 죽였다. 당시 대통령선거와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한 북의 만행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시신과 비행기록장치(블랙박스) 등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폭파범이라고 자백한 김현희씨 진술에는 여러 가지 모순점이 있었다. 게다가 김씨는 사형선고 직후 사면을 받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 안기부 직원과 결혼하고 사라졌다. 실종자 가족들은 오래전부터 재조사를 요구했고, 그렇게 34년이 흘렀다. 나는 제대로 된 재조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20년 가까이 사건에 몰두하며 고민하고 있다.
이 고민을 바탕으로 몇 달 전 KAL858기 사건에 대한 책을 냈다. 얼마 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한 방송사가 책 관련 문의를 해왔다고 했다. 놀랐다. 방송사가 채널A였기 때문이다.
채널A는 예전에도 사건을 다루었다. 적어도 두 번이었는데, <정용관의 시사병법>에서 김현희씨 인터뷰를 내보냈다. 그리고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에서도 잠깐 다루었다. 모두 2014년에 방영됐고, 안기부 수사결과를 지지하며 북쪽의 "만행"을 강조했다. 내가 놀란 이유는, 나의 경우 ('진실'은 모르지만) 수사결과에 문제가 있고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어서다.
연락을 준 <이만갑>에 감사하며
연락을 준 이는 <이만갑> 제작진이었다. KAL858기 사건 방송을 준비하고 있고, "사건에 대해 정밀하게 추적하셨던 분을 섭외하고 싶어서" 검색을 하다 책을 발견했다고 했다. 책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다고 들었는데, 방송에 나와달라는 요청이었다. (나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알고 계셨는지 모르겠지만) 책에 관심을 갖고 연락을 준 것 자체가 참으로 고마웠다. 진심이다.
그럼에도 사정이 있어 방송 출연은 어려웠다. 그 대신 '서면' 형식이라면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궁금한 점을 알려주면 전자우편으로 답변을 보내고 방송에 내보내는 형태다. 좀 무리한 제안이지 않을까 했는데, 그래서인지 답이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답변이 없어 살짝 물어보니, 녹화가 끝났고 방송 날짜도 잡혔다고 했다. 당황스러웠지만, 방송이 이미 만들어졌다 하니 그 내용이 어떨지 기다려졌다.
수색 관련 틀린 내용 많아
그렇게 해서 7월 4일에 방송된 <이만갑>을 확인했다.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 준비한 듯했다. 비록 큰 틀에서 나와는 관점이 다르지만, 사건 관련 의혹들도 언급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들어갔을 때는, 미안한 말이지만, 실망했다. 기본 사항부터 잘못된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방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부분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실종) 그 다음날인 30일에 격추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 해가지고, 우리나라 정부는 태국 공항에 도착하기 직전에 사라졌기 때문에 태국 밀림을 수색을 하고, 버마(미얀마) 정부는 오다가 안다만 상공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바다를 수색을 하고."
두 가지가 잘못됐다. 첫째, 격추 가능성 이야기는 정확하지 않다. 당시 정부와 대한항공은 테러 가능성(또는 확신)을 내비쳤지만, 미사일 등에 따른 격추 얘기는 없었다고 안다. 둘째, 한국과 버마가 밀림과 바다를 동시에 따로 수색했다는 말은 틀리다. 초기 수색 자체가 태국-버마 국경지대인 (칸차나부리) 밀림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나중에야 해상 수색이 이어진다.
방송 뒷부분에도 수색 내용이 나오는데 이 역시 문제다.
"그 당시에 사건 수사기간이 20일에 불과했습니다. 바레인에 갔던 수사팀들 다 철수를 시켜요. 블랙박스 하나 건져오지 않고, 조기 종결을 시킨 거예요."
첫째, 버마를 바레인으로 착각한 듯하다. 둘째, 20일이 아니라 10일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내가 정보공개 청구로 열람한 기록에 따르면, 조사단은 수색 시작 5일 만에 철수 계획을 세웠고 10일 만에 철수한다(박강성주, <눈 오는 날의 무지개: 김현희-KAL858기 사건과 비밀문서>, 35쪽).
덧붙이면,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틀릴 수 있다고 본다. 나 역시 글을 쓰며 틀릴 수 있고, 그런 부분이 있다면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겠다.
태영호 의원과 김현희 씨는 학교 동문인가?
특히 관심이 갔던 대목은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부분이다. 북쪽 외교관 출신인 그는 현재 남쪽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방송에서는 KAL858기 사건에 대해 말해 줄 특별 손님으로 나왔다. 그런데 핵심 발언에 문제가 있다.
"나는 평양외국어학원에 다니면서 김현희를 한 번도 못 봤어요. 왜 못 봤는가 하면, 내가 74년도에 평양외국어학원에 들어가가지고 76년도에 내가 중국으로 떠났습니다."
태 의원은 김현희 씨와 같은 학교 출신이라고 강조했는데 과연 그러한가? 평양외국어학원은 방송 화면에도 나왔듯, 한국식으로 쉽게 말해 '외국어 전문 특목고'라 하겠다. 그런데 수사결과에 따르면, 김씨는 하신인민학교 및 중신중학교를 졸업하고 김일성종합대학에 간 뒤, 평양외국어대학으로 학교를 옮긴다. 1974년에서 1976년 사이, 김현희씨는 '중신중학교' 학생이었다고 알려진다. 태영호 의원이 말한 '평양외국어학원'은 다니지 않았다.
혹시 태 의원이 평양외국어학원을 김씨의 평양외국어대학교로 착각한 것일까? 실제로 다른 출연자들도 방송에서 학교 이름을 혼동해 사용했다('외국어학원', '평양외국어대학교'). 태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가 북한에서 진짜 다니기 힘든 평양외국어학원이라는 게 있거든요. (중략) 북한에서는 외교관들만 전문 양성하는 국제관계대학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거 졸업하고."
다시 말해, 대학교의 경우도 평양외국어대학과 '국제관계대학'으로 두 사람은 다른 학교를 나왔다. 그런데도 방송에서 그의 발언은 묵직한 증언으로 받아들여진다. 진행자의 말이다. "아 이거는 음모론이고 뭐고, 북한 동창들이 있는 거잖아!" 태 의원 같은 학교 동문들이 있기에 김씨가 폭파범이 맞다는 뉘앙스로 들리는 발언이었다.
다만, 태 의원은 몇 년 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김현희하고는 학교 동문이거든요. 제가 평양외국어학원을 나왔고 김현희는 평양외국어대학을 나왔죠. 외국어대학 밑에 평양외국어학원이라는 중등학교가 있어요. 외국어대학 학장과 외국어학원 원장을 같은 사람이 해요. 같은 학교 동문이라고 할 수 있죠"(<월간조선>, 2017년 2월호).
곧, 두 학교 책임자가 같은 사람이라서 같은 학교라는 얘기다. 지나친 비약이다. 설령 (태 의원 기준에서) 동문이라 하더라도, 그는 이 발언으로 관심을 받을 수 있겠으나 '증인'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스스로 김 씨를 본 적이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시 <이만갑>으로 돌아가자. 태 의원이 김씨와 같은 학교를 나왔다고 하자 질문이 나왔다.
태영호 의원님 혹시, 김현희 관련해가지고 이런 얘기 다른 데서도 하신 적이 있나요?" "아 예, 오늘 아니 누구도 나한테서 이런 거 물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진행자가 말한다. "야, 오늘 처음이야 그러면. 김현희 동문! 현직 의원에게 듣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 확인했듯, 태 의원은 4년도 훨씬 전에 동문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했다(나아가 <월간조선> 기사는 다른 언론에서도 많이 인용됐다). 동문 이야기 자체도 맞지 않지만, 이를 <이만갑>에서 처음 했다는 말도 맞지 않다. 물론 착각했을 수도 있다.
역대 정부 모두 KAL858 재조사를 했는가?
이번 방송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대목은 출연자가 다음과 같이 말한 부분이다.
"역대 정부마다 이 KAL기 폭파사건에 대한 원인규명은 계속해왔어요. 그런데 수차례 반복되어 온 이 원인규명에서 북한이 한 소행이라는 것이 충분하고 넉넉하게 입증된다라는 것은 이미 전 정부 때부터도 밝혀진 내용…"
내가 충격을 받은 이유는 사건을 북의 소행이라고 해서가 아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북이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역대 정부마다" 원인규명, 곧 재조사를 했다는 부분이다. 또 다른 출연자도 "끊임없이 계속해서 모든 정권에서 재수사를" 했다고 전한다. 과연 그러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틀렸다. 그것도 크게, 틀렸다.
먼저 발언들이 나온 맥락을 살펴보자. 역대 모든 정부가 재조사를 했다는 말은, 노무현 정부 때 있었던 재조사가 언급되며 나왔다. 이 조사 결과 (북의 만행이라는) 안기부 결론대로 나왔으니, 더 이상의 "음모론"은 없어야 된다는 뜻이다.
전에도 몇 번 지적했지만, 노무현 정부 때 두 번의 재조사 시도가 있었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발전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다. 진실화해위원회의 경우, 실종자 가족들이 위원회가 제대로 조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청을 철회했다. 따라서 결론 없이 조사가 중단된다. 국정원 발전위원회의 경우 '첫' 재조사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었는데, 공식 수사결과가 맞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이 조사에는 여러 문제가 있었는데, 특히 김현희 조사 실패, 동체 수색 실패 같은 치명적 결함이 있었다(박강성주, <눈 오는 날의 무지개: 김현희-KAL858기 사건과 비밀문서>, 304쪽).
틀려도 한참 틀린 말이 왜 방송에 나왔을까?
이와 같은 두 번의 시도를 빼고는 어떤 재조사도 알려진 바 없다. 다시 말해, 사건이 일어났던 1987년 이후 노태우-김영삼-김대중-이명박-박근혜 정부, 그리고 지금의 문재인 정부도 KAL기 사건 재조사를 안 했다. 참고로, 문재인 정부의 경우 버마(미얀마)에서 동체 '추정' 물체가 발견되어 이를 '확인'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공식적인 재조사라 할 수 없고, 그나마 이 노력도 여러 가지 우여곡절로, 특히 올해 2월 발생한 미얀마 쿠데타로 복잡한 상황을 맞게 됐다.
결국, 노무현 정부만 KAL858기 사건을 다시 조사했다. "역대 정부마다" 또는 "끊임없이 계속해서 모든 정권에서" 재조사를 했다는 말은 틀려도, 한참 틀렸다. <이만갑> 출연자들의 계산된 거짓말인지, 단순한 착각인지 모르겠다. 아울러 미안한 말이지만, 전혀 맞지 않는 말을 걸러내지 못한 제작진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밖에도 몇 가지 문제점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폭탄 관련 내용이다. 공식 수사에 따르면 비행기를 파괴시킨 것은 김현희씨 일행이 설치한 시한폭탄이다. <이만갑>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방송했다. "폭탄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 일본인이야. 일본인이고." 아니다. 안기부는 1988년 1월 15일 수사발표에서, 폭발물은 북쪽 조선로동당 대외정보조사부 최 과장으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일본 사람이 아니었다.
또한 방송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 가운데 하나가 "음모론"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용어가 좀 더 조심스레 사용되었으면 한다. 물론 아무런 근거 없이, 또는 매우 부족한 근거로 특정 생각을 진실로 확신하는 것은 문제다. 하지만 "음모론"이라는 말은, 때로 정당한 문제제기 자체를 문제로 몰아세울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음모론의 '음모'다(박강성주, < KAL858, 진실에 대한 예의: '분단권력' >, 282쪽).
"국민이 불쌍한 거죠"
위와 같은 문제들은, 어쩌면 '예능' 성격을 지닌 방송의 구조적 한계일지 모른다. 제작진과 출연진이 노력을 했겠지만, 결국 사실 '검증'보다는 '재미'가 우선일 수 있어서다(이는 예능 방송에 대한 나의 편견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앞에서 말했듯, 이번 <이만갑> 방송은 나름대로 의미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파견된 조사단은 블랙박스 탐지기 자체가 없었"다고 지적하는 한편, "누가 봐도 이상한 생각이 들 만큼 초동수사가 엉망진창이었"다고 했다. 이 사건을 대선에 활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안기부의 '무지개 공작'도 언급했다.
그리고 태영호 의원의 발언엔 대다수 동의하기 어려웠지만, "결과적으로는 국민이 불쌍한 거죠"라고 했을 때는 공감했다. 물론 태 의원은 사건이 북의 만행이라는 전제에서 한 말이지만, 이는 더 넓은 뜻으로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실종자 가족이 내게 했던 말이 오랜만에 다시 떠오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한민국에 태어난 죄밖에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