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해월 최시형
해월 최시형 ⓒ 자료사진
 
그는 조급하지 않고 그렇다고 멈추지도 않았다.

매사에 열정적이면서 차분한 성품이다. 겹겹이 두터운 벽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이 과제이지만, 단숨에 넘기 어렵다면 돌아서라도 쉼 없이 넘고자 하였다. 500년이 넘게 굳게 자리 잡힌 성리학적 가치관이 쉽게 무너지리라 믿지 않았다. 

오래 전에 토착화된 불교와 서세동점의 물결을 타고 밀려온 기독교(천주교)가 하나같이 죽어서 극락과 천당을 바라는 내세주의 종교인데 비해 동학은 살아서 보국안민과 지상천국 건설이라는 현세주의 종교이다. 외래사조로부터 전통문화를 지키면서 보국안민과 지상천국의 현세주의로 가는 길은 그러나 현실적인 벽이 너무 높고 두터웠다. 

그는 시대를 절망하면서도 '길이 없는 길'을 찾아 쉼없이 걸었다. 그리고 비탄에 빠진 도인들과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보듬고 다독이면서 행보를 넓혀나갔다. 감동적인 언변이나 내밀한 속삭임보다 신념에 찬 확신이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었다. 

긴 세월 동안 외진 산간마을을 찾아다니며, 이 땅에서 태어나 모진 세파를 겪으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민초들과 서스럼없이 어울리고 무람없이 지내게 되었다. 

최시형은 무욕ㆍ관후ㆍ인자한 성자적 기품을 지녔고 근검정직하여 그의 성정과 훈도는 그를 접하는 모든 사람들을 강화시키기에 충분했다.(…) 1864년 이후부터의 동학의 생존과 집단으로부터의 일체의 운동은 최시형의 일거수일투족에 집결되었다.

다시 말해서 최시형의 생존은 바로 동학의 생존이요 그의 활동은 곧 동학의 운동이 되었다. (주석 4)

그는 조선조의 개결한 선비가 아니었다. 심중에는 낡고 부패한 왕조, 물밀듯이 밀려오는 일본과 서양세력, 적서ㆍ반상ㆍ남녀차별의 하나같이 두터운 벽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 앞에 불뚝불뚝 치솟는 저항의식이 잠재된 혁명가였다. 그래서 깊게 사유하고 쉼없이 일하고 활동하였다. 

해월은 어디를 가든지 잠시도 쉬는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짚신을 삼거나 멍석을 짜거나 손을 놀리지 않았다고 한다. 노끈을 다 꼬아서 할 일이 없으면 꼬았던 노끈을 풀어서 다시 꼬았다고 한다. 제자들이 쉬기를 권하면 해월은 "한울님도 쉬지 않는데 사람이 한울님이 주는 녹(祿)을 먹으면서 부지런하지 않는 것은 한울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니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주석 5)

범상한 듯 하면서도 남다른 역사관과 시대정신을 갖고 민초들의 다정한 이웃이고 스승이 된 최시형은 동학의 명실상부한 리더로서 어지러운 시국에 대처하고 있었다. 각 지역의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거나 천거받아 접주로 임명하여 교세는 하루가 다르게 확산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차츰 동학을 보국안민과 척왜척양의 역사의식으로 무장되어갔다. 최시형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동학교의 지도층은 처음에는 동학을 어디까지나 종교운동으로서 이끌어갔다. 그들이 종교적인 입장을 고수할 때 그들의 활동은 종교적인 한계를 벗어나지를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현실적인 면에 눈을 돌릴 때 그들의 활동은 정치적인 운동으로 전환될 수도 있었다. 1893년에 동학교도들이 보은에 집결하여 탐관오리의 배격과 척양과 척왜를 표방하고 나섰던 것은 그러한 경우였다. (주석 6)
 
 2세 교주 최시형 선생에 대해 설명하고 있은 이윤영 관장
2세 교주 최시형 선생에 대해 설명하고 있은 이윤영 관장 ⓒ 이민선
 
그는 도인이나 접주를 만나면 '정성과 믿음'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 방법론을 제시한다. 

배울 때에는 폭 넓게 하고, 물을 때에는 자세하게 물으며, 행할 때에는 독실하게 하십시오. 만일 삼년 안에 도에 대한 눈(도안, 道眼)이 밝아지지 못하고, 마음 바탕이 신령스럽게 되지 못하면, 이것은 정성이 없고 믿음이 없는 까닭입니다.

정성과 믿음이 있으면 돌을 굴려서 산 위로 그 돌을 올리는 것일지라도 쉽겠습니다만, 정성이 없고 믿음이 없으면 돌을 산 밑으로 굴려 내리는 것조차도 어려운 것이니, 공부하는 것의 쉽고 어려움도 바로 이와 같습니다. (주석 7)

그는 사사로움과 사특함을 배격하였다. 법설을 할 때이면 특히 이 점에 역점을 두었다. 

사사로운 욕심을 끊고, 사사로운 물건을 버리며, 사사로운 영화를 잊을 수 있다면, 기운이 모이고 정신이 모이게 되어 환하게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길을 갈 때에도 발끝이 평탄한 곳을 가게 되고, 집에 있더라도 정신이 조용하게 모이고, 자리에 앉으면 숨결이 고르고 편안하게 되며, 누울 때에는 정신이 그윽한 곳에 들어, 하루 종일 어리석은 듯하며 기운이 평정하고 심신이 청명하게 됩니다. (주석 8)


주석
4> 목정균, 「동학운동의 구심력과 원심작용」, 이현희 엮음, 『동학사상과 동학혁명』, 234쪽, 청이출판사, 1984. 
5> 오문환, 『동학의 정치철학』, 198~199쪽.
6> 한우근, 「동학의 리더십」, 『백산학보』제8호, 500쪽, 1970.
7> 최준식, 앞의 책, 91쪽.
8> 앞의 책, 93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해월 최시형 평전] 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해월#최시형평전#최시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