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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는 조금씩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약한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지속되어야 경제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썩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다. 복잡해 보이기도 하고.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입장에서 체감하는 물가 상승은 아무래도 식비 쪽이 아닌가 싶다. 계란에서부터 라면에 이르기까지 식비 물가는 전방위적으로 오르고 있다.

그런데 만일 음식 구입 비용이 낮아지면 어떨까. 해마다 식비가 줄어드는 것이다. 작은 비율이라고 해도 조금씩 감소하는 식비.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다. 14년 전 여자친구를 만나면서부터이다. 

2007년, 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나는 스물한 살, 아내는 스무 살.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않던 좋은 시절이었다. 갓 스물을 넘긴 커플이 으레 그렇듯 데이트의 상당 부분을 먹고 마시는 데 집중했다. 주머니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았던 우리에게 식사는 꽤 합리적인 데이트 코스였다. 

비싼 음식을 추구한 건 아니었지만 식비가 꽤 들었다. 여가 비용의 대부분이 데이트 식비로 나갔다. 그러다 문득 상상하길, '만약 내가 이 여자와 결혼해서 자녀가 생기면 온 식구 먹는 돈만 해도 상당하겠는걸' 싶었다. 다소 거친 계산법을 따랐지만 먹는 입이 추가되면 식비도 비례해서 늘어난다는 지극히 평범한 결론이었다.

상상은 현실이 되어 나는 여자친구와 결혼을 했고, 두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2021년 현재, 네 식구의 식비는 연애하던 시절의 식비보다 적다. 우리 가족은 하루 식비 15000원을 기준으로 살아간다. 어떻게 해서 이런 생활이 가능했을까.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집밥은 '만세'다 

첫째는 집밥의 등장. 우리는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음식의 중요성에 눈 떴다. 집밥을 하려면 외식보다 부지런을 떨어야 하지만, 부지런을 떨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특히나 집밥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 쌀은 농부이자, 농협 조합원이신 처가 어른들께서 주신다. 그리고 땅 한 뙈기를 빌려 채소 농사를 짓는다. 일회성으로 그치는 외식과 달리 집밥은 모든 재료를 알뜰히 사용할 수 있다. 

텃밭을 가꾸면 온 가족이 먹을 채소가 차고 넘친다. 4~5평만 되어도 토마토, 양배추, 완두콩, 강낭콩, 참외, 고추, 상추, 오이, 가지, 샐러리를 넉넉히 먹을 수 있다. 언급한 채소는 실제로 올해 우리가 심고 즐긴 수확물이다. 농약을 치지 않았기에 벌레가 많이 낀 것들은 포기하면서 먹을만한 것들만 골라 먹었다.

그 이외의 재료를 마트에서 구해다 쓴다고 해도 저렴하다. 우리 가족은 생활협동조합에서 유기농 먹거리 코너를 애용한다. 적은 생활비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고 반문하겠지만 채소류와 쌀, 기타 농산물을 제외하고 나면 충분하다. 원재료는 완성된 요리보다 언제나 더 싸다. 

그뿐인가. 집밥은 사람 수가 늘어도 수저만 더 놓으면 된다. 연애하던 시절에는 아내와 내가 각각 다른 메뉴를 두 개 시켜 먹었다. 식구가 늘어 식탁이 꽉 찬 지금은 된장찌개를 하나만 끓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시지 야채 볶음도, 한창 제철인 블루베리도 조금씩 떠서 같이 먹는다. 

집밥을 오래 먹으면, 재료 보관과 요리 활용의 노하우가 생기므로 고급 재료를 쓴다고 해도 전체적인 식비가 늘지 않는다. 한 끼 외식할 돈이면 최소 세 끼 이상의 재료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밥은 만세다. 그리고 비싼 식재료는 정말 맛있다. 
  
 집밥은 부지런을 떨 가치가 있다.
집밥은 부지런을 떨 가치가 있다. ⓒ 이준수

'이것'을 줄이자, 돈이 남았다  

둘째, 육식 비중의 감소. 우리는 고기를 줄였다. 벌써부터 고기 마니아들의 원성이 들리는 듯하다. 사실 나도 고기가 좋다. 고기 없으면 밥 못 먹는... 까지는 아니더라도 채식주의자는 결코 되지 못할 식성과 체질의 소유자다. 그렇지만 고기를 줄인 명확한 이유가 있다. 자식에게 건강한 지구를 물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두 명의 자식이 있다. 내 인생은 아버지가 되기 전과 그 후로 나눌 수 있을 만큼 가치관의 변화가 뚜렷하다. 현재 지구는 기후 변화로 인해 갖은 재해가 발생하고 있다. 시베리아의 툰드라 지대가 녹고, 유럽과 미국이 불볕더위에 시달린다. 동시에 오랜 기간 폭우가 쏟아져 수천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음 세대들이 생존하기 힘들어진다. 이건 윤리적인 당위가 아니라 과학적인 사실에 가깝다. 나는 기후 변화를 위해서 작은 실천이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래서 <2050 거주불능 지구>, <우리가 날씨다>, <작은 행성을 위한 몇 가지 혁명> 같은 책들을 읽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내가 품고 있던 몇 가지 오개념을 바로 잡게 되었다.

나는 '육식'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다. 그러나 육식이 대기 중 온난화 가스에 미치는 영향은 51%나 된다. 처음에는 오타인 줄 알고 여러 번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으나 51%가 맞았다. 어째서 그런가. 우선 반추동물(대표적으로 소)은 트림이나 방귀로 메탄가스를 배출한다. 메탄은 이산화탄소에 비해 온실가스로써 20배나 더 강력한 효과를 낸다.

또 소를 키우려면 목장과 축사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숲이 사라진다. 대두와 같은 사료의 재료를 재배하기 위해서도 땅이 필요하고, 곡식을 사료로 가공하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양의 화석연료가 쓰인다. 정리하자면 육식이라는 피라미드 꼭대기를 지탱하기 위해 거대한 기반 환경이 파괴되어야 하는 것이다. 

엉뚱하게도 육식 축소의 결과는 남아도는 식비다. 돈을 아끼기 위해 육식을 줄인 것은 아니었으나 최종적으로 경제적 이득을 보았다. 고기를 아예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육고기가 견딜 수 없을 만큼 당기는 날에는 닭을 먹는다. 소보다는 돼지가, 돼지보다는 닭이 사육과정에서 탄소를 덜 배출하기 때문이다. 
 
 텃밭은 몸과 마음의 양식을 제공해준다.
텃밭은 몸과 마음의 양식을 제공해준다. ⓒ 이준수
 
여기까지가 나의 이야기다. 식비가 줄어들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것 치고는 긴 설명이었다. 다만 내가 소상히 사유를 밝힌 까닭은 치솟는 물가로 고민하는 분이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이며, 기후 변화에 대응하여 실질적 움직임을 추구하고 싶은 분도 있을 거라는 짐작 때문이다. 어떤 계기가 되었건 집밥을 해 먹고, 육식을 줄이면 식비 규모가 작아지고 환경에 밥숟가락 하나만큼은 기여할 수 있다.

나는 전문 환경활동가도 아니고, 열렬한 채식주의자는 더욱 아니지만 소소한 생활양식의 수정만으로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웃을 일이 별로 없는 세상에서 이 정도면 남는 장사다. 시도해 보아서 손해 볼 일은 없을 테니 혹 구미가 당긴다면 집밥을 한 끼 차려보는 건 어떨까. 오 년 이상 깎여나간 식비는 생각보다 금액이 클 수 있다.

식비를 중심으로 하여 다른 분야까지 절제하는 생활이 연결되면 상당한 목돈이 모인다. 지방에서 신축 아파트를 장만할 만큼. 이 모든 행운은 지혜로운 아내를 만난 덕분이다. 팔불출이라는 핀잔을 듣겠지만 내게는 엄연한 진실이므로 행운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비법을 남겨본다.

#집밥#식비#텃밭#환경#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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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하는 가계부, 미래의창 2024>, <선생님의 보글보글, 산지니 2021> 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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