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에서/못 만날 혼령/꽃구름/타고 왔나 봐//연분홍/ 이내로 머흐는/아슴한/얼굴, 얼굴들 ...//홀연히/손 흔드는 뒷모습/다시 돌아/가나봐,"(시조 "복사꽃" 전문).
김정희 시조시인이 이번에 펴낸 시조집 <복사꽃 그늘 아래>(고요아침 간)에 실려 있다. 1934년 태어난 김 시인이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창작열을 불태우고 있다.
김 시인은 이번 시조집 '시인의 말'에서 "저물녘 영혼의 심지를 밝히며 살아온 남들을 뒤돌아본다. 시는 나에게 있어 선(禪)이며 기도(祈禱)였다"고 했다.
진주에서 줄곧 살아온 김 시인은 "진주 땅에 살면서 진주와 인연 깊은 작품을 모아보려 했는데, 주제를 확대해 여든을 살아온 삶의 발자취도 엮게 되었다"고 했다.
김 시인은 "어느덧 종교가 되고 신앙이 된 나의 시(詩). 이제 남은 날은 적지만, 살아온 남들의 궤적으로 여기시며 공감해 주시며 더 없는 기쁨이 되겠다"고 했다.
"마침내 눈을 뜨는/한 우주를 봅니다//긴 세월/뿌리 깊이/잠들었던/종소리//이윽고 노래가 되는/황홀한 순간입니다"(시조 "난꽃 피던 날" 전문).
"꽃들은 이울기에 더 없이 아름답고//목숨은 사라지기에 더욱 더 소중하다//날 새면 고마운 하루, 고개 숙여 받드는,"(시조 "좋은 날" 전문).
밝은 기운과 긍정적인 생각이 물씬 풍긴다. 팔순에도 난꽃을 보고 '황홀한 순간'이라고 했다. 난꽃을 피우기 위한 오랜 기다림이 느껴진다.
시인은 스스로 '저물녘 영혼'이라 했지만 지금도 '꿈'을 꾸고 있다. 다음은 시조 "꿈 하나 있습니다"의 두 번째수다.
"이승에 초대받아 무위의 날을 보내고//돌아갈 무렵이면 가진 것도 없으면서//끝내는 사라질 목숨, 꿈속에서 꿈을 꾼다"(시조 "꿈 하나 있습니다").
이번 시조집에는 그동안 써온 작품들이 '남명의 하늘', '봄 아지랑이', '연못에서 만난 바람', '무심을 위하여'로 묶여 있다.
이지연 경기대 교수(시인)는 "무애와 절조와 상태의 조화로운 온유돈후(溫柔敦厚)"라는 제목의 해설에서 "김 시인의 작품에서는 바람이 불고 있다. 온화하면서도 때로운 매운 바람이다. 여린 바람, 푸릇푸릇한 초록 기운이 도는 바람이기도 하면서 온유돈후한 조화로운 바람이기도 하다"고 했다.
'온유돈후'는 "괴이하거나 익살스럽거나 노골적이지 아니하고 독실한 정취가 있는 경향"이란 뜻이다. 여러 작품을 설명한 이 교수는 "온유돈후함이 느껴지지 않은가. 인자하고 친절한 너그러운 인품은 시인의 인품이기도 하고 시세계의 일관된 주체이기도 하다"고 했다.
김정희 시인은 시조집 <물 위에 뜬 판화> <망월동 백일홍>, 수필집 <차 한 잔의 명상> 등을 펴냈고, 한국시조문학상과 허날설헌문학상, 월하시조문학상, 한국예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진주에 '한국시조문학관'을 조성해 관장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