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
민주당에서 '원팀'이라는 말이 처음 각인되었던 때는 2018년 지방선거였다.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홍보 영상에서 강원도 내 18개시·군 자치단체장 후보자들과 '원팀'이라는 말이 반복되는 노래에 맞춰 율동을 펼쳤다. 사실 원팀이라고 굳이 말을 안 해도 원팀 같았다. 그들이 모두 흰색 셔츠 입은 중년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중년 남성' 일색의 정치판에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영상이었다.
2018년 지방선거는 젠더 관점에서는 정말 지독하게 기울어진 선거였다. 민주당 완승이 아니라 '민주당 남성의 완승'이었기 때문이다. 여성 광역단체장은 없었고, 기초단체장은 226명 중 8명뿐이었다. 당연히 '파란색 남자'들의 향연일 수밖에 없었다. "50대 이성애 남성 엘리트 독점정치, 즉 '아재 정치'(권수현 여.세.연 대표)"라고 말해도 무방했다. 민주당 공천 심사 과정에서도 보이지 않는 '남성 카르텔'이 작용하면서 '여성 배제'가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관련 기사:
"결과는 더불어아재당"... 여성에게 선거는 '기울어진 운동장',
http://omn.kr/rqlk)
그러나 민주당은 그해 말에 일어난 '이대남' 논란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막상 여성 대표성 제고에 대해선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심지어 제1야당 대표가 비례대표 여성할당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니, 여성의 정치 진출 기회는 예전보다 오히려 축소되는 분위기다.
'군필'이라는 갈라치기
원팀은 이번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레이스에서 다시 호명됐다. 사실상의 본선이었고, 그래서 더 경쟁이 치열했던 2017년 경선의 후유증이 계속되고 있는 양상이다. '친문' 혹은 '극문'을 자처하는 극렬 민주당 지지자들이 1등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비토하고 있는 현실은, 최종적으로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민주당 입장에서는 긍정적이지 않다.
하지만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대신 남경필을 뽑자'라고도 말한 극렬 지지자들은 애초에 원팀 같은건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원팀에서 이 지사를 빼낼 방법을 고안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지사는 표면적으로는 문재인 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정체성을 가졌다는 점이다.
이 지사는 민주당 소속이며, 남성이고, 이성애자이며,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왔고, 변호사다. 여기까지는 문 대통령과 동일하다. 다만 팔 골절로 인한 군 면제자라는 점이 다르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강점으로 꼽힌 것은 '군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꼬박 3년을 현역으로 다녀왔다는 점, 문 대통령이 특전사라는 점은 두고두고 회자가 되는 내용이다. 특히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격 자세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는 사진과 비교되면서, 두 대통령이 군대를 다녀왔다는 사실은 민주당에 의해, 민주당 지지자들에 의해 꾸준히 부각됐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는 '특전사' 이미지를 전면에 부각시키기도 했다. 바로 '대한민국 남자'라는 PI(President Identity)다. 당시 함께 나온 '사람이 먼저다'가 문 대통령을 상징하는 대표 슬로건으로 자리 잡은 반면, '대한민국 남자'는 기억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
내용을 살펴보면 문 대통령이 특전사 군복을 입은 사진 밑에 "나라가 위기에 빠지면 이념도 갈등도 없다. 나라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 남자는 다 그렇다. 대한민국 남자, 문재인"라는 황당한 문구가 적혀있었다. 김정숙 여사와 함께 찍은 사진 밑에는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가족보다 나를 먼저, 자신에게는 무엇보다 소홀해야 남자다. 대한민국 남자, 문재인"이라고 써 있었다. 이 내용은 당시 박근혜 후보에 맞서, '남성적인' 특전사 이력을 최대로 강조하려다가, 오히려 큰 비난을 받고 일찌감치 폐기됐다.
그럼에도 남성 중심의, 또 남성의 정상성 수행이 큰 강점이 되는 정치환경에서는 '미필'은 어떤 경우라도 약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 트위터에서 5만 9천명의 팔로워를 가진 이낙연 전 대표 지지자 '더ㅇㅇㅇ'는 이재명 지사를 공격하는 두 개의 이미지를 제작했다. 하나는 '군필여당 미필야당', 하나는 '군필원팀'. 첫 번째 이미지도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 큰 논란이 됐고, 두 번째 이미지는 김두관 의원이 바로 "자신을 빼달라"라고 밝히면서 뉴스에 크게 오르내리게 됐다.
만약 부정한 방법으로 군대를 기피했다는 의혹이 있으면, 이러한 비판이 용인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지사는 어린 시절 공장에서 일하다가 프레스 기기에 왼팔이 눌려 팔이 휘어졌고, 이 때문에 군대에 가지 못했다. 김두관 의원과 정세균 전 총리가 "장애 비하"라고 입 모아서 말했던 이유다.
또한 해당 이미지들은 이 지사에 대한 모욕임과 동시에 여성 후보인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을 아예 '없는 후보'로 취급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극렬 지지자들에 의해 민주당 원팀의 자격이 '남성'에서 '비장애인 군필'로까지 확대된 꼴이다. 한편으로는 민주당이 유독 대통령 혹은 대통령 후보의 '군필'을 강조하고, 그것을 마케팅으로 삼았던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파란색밖에 없는, 다양성이 실종된 원팀
이는 '지지자들이 만들었다'면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박용진 의원도 해당 포스터에 대해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분열을 조장하는 것에는 단연코 맞서 싸우겠다"라며 선을 그었다. '군필원팀'에 속한 네 명 중 세 명이 포스터에 유감을 표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낙연 전 대표는 말이 없다. 문제의 포스터가 이 전 대표 지지를 위해서 만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반응이다.
민주당 차원에서도 여성과 장애인을 배제하지 않는 원팀을 만들고 싶다면 해당 포스터에 대한 명확한 메시지를 줘야 하는 게 아닐까? 경선 레이스 내내 이런 이미지들은 어느 쪽에서든 무수히 생산될 수 있다. 극렬 지지자들을 제재할 방법은 사실상 그들이 지지하는 대상으로부터의 '경고' 뿐이다.
한편으로는 이재명 지사 역시 15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민생에 관한 것은 과감하게 '날치기'해줘야 한다" 라면서, 유독 차별금지법을 날치기 하면 안되는 법이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 반성하셨으면 한다. 경기도지사이자, 민주당 대선후보 주자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그가 "논쟁이 심한 차별금지법, 이런것은 날치기 하면 안되겠지만"이라는 말한 것은 정치권과 대중에게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다. 가난과 장애로 인해 차별의 아픔을 잘 알고 있고, 지금도 소수자성으로 공격받는 이 지사가 차별금지법에 대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태도를 보여주길 희망한다.
지금 민주당의 원팀은 오로지 파란색밖에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다양성을 확대하기는커녕 누가 더 가부장제 사회의 '올바른' 리더인지를 따지면서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 하루 아침에 무지개 빛으로 변화할 것을 기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누가누가 더 파란가'를 재고 있으면 안 될 때 아닌가. 지금 민주당 경선 레이스엔 감동도, 희망도 없고, 우울한 파란색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