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자기기 덕후다. 그중에서도 애플에서 출시한 기기들은 대부분 다 가지고 있다. 아이팟에서부터 아이패드, 아이폰, 맥북, 에어 팟, 애플 워치까지 모두 한 번씩 내 손을 거쳐갔다. 최근에는 아이맥과 애플 키보드, 마우스까지 구입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감히 말할 수 있다. 애플 본사의 유리창 하나 정도는 내가 사주었다고.
특히 스마트폰은 더없이 훌륭하다. 스마트라는 형용사가 떳떳하게 수식할 만하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가로 세로 길이 10cm 미만의 작은 기기 안에 모여 살고 있다.
심한 길치인 나에게 신속 정확하게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정보요원, 오늘의 날씨를 시간대별로 친절히 일러주는 기상캐스터, 우리말이지만 뜻이 생소한 단어들을 정의해주는 국어 선생님도 있다. 게다가 신문기사에서 마주한 난해한 사회 현상을 3줄로 간결하게 요약해주는 지식인들, 피부 트러블이나 생리통 같은 자질구레한 질병에 대한 치료법을 알려주는 의사 선생님까지.
스마트폰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을 단 몇 초 만에 뚝딱뚝딱 내놓을 것만 같다. LTE와 5G 기지국의 은총을 받은 지역에서라면 어디서든지. 그저 손을 뻗기만 하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오랜 시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쌓아 올린 지식들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이 얼마나 찬란한 문명의 이기인가.
이 훌륭한 기기를 손에 쥔 나는 점점 달라지고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을 생각하거나 고민하는 시간이 차츰 줄어들었다는 것. 사실 깊게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생활 반경에서 필요로 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대부분 손가락뿐이다. 다섯 손가락으로 네모나고 앙증맞은 이 문명을 집어 올려 화면을 몇 번 건드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더 이상 긴 글을 읽지 않으려 했고, 스스로 생각하거나 고민하는 일이 현저히 적어졌다.
그러던 나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준 계기가 있었다. 얼마 전, 남편을 데리러 공항에 가다가 도로 한복판에서 핸드폰이 방전되어 버렸던 일이 그것이다. 도착까지 10분쯤 남은 지점에서 갑자기 휴대폰이 꺼졌다. 덩달아 내비게이션 앱도 꺼져버렸다. 내비게이션 없이 운전을 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몹시 당황했다. 속도를 줄여 천천히 길을 찾아 나아가고자 했으나, 정글과도 같은 부산 시내에서 그런 여유란 절대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뒤차들이 내 차 궁둥이 뒤로 밭게 붙어 빨리 가라고 재촉했다. 눈앞이 깜깜했다. 평소 버스와 지하철을 거꾸로 타는 것은 기본이고, 외우고 있는 길이란 출근길과 퇴근길 밖에 없는 길치인 나에게 내비게이션이 없다는 것은 곧 재난상황임을 의미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일정 속도를 유지한 채 천천히 도로 주변을 살펴봤다. 그러자 높이 걸린 녹색 이정표가 시야에 들어왔다. 다행히 도로 바닥에 시멘트로 적힌 화살표들과 행선지의 방향도 어렵지 않게 찾았다.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무사히 공항에서 남편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운전대를 잡고 내비게이션을 튼 순간부터, 조물주가 선사해준 공간지각 능력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스스로 길을 찾고자 하는 의지를 내버렸다. 내비게이션이 명하는 대로 유턴을 하고 속도를 줄이고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그래서인지 내비게이션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이정표를 보고 길을 찾는 것 자체가 생경한 경험이었다. 갑자기 스마트폰이 방전되는 비상상황이 없었으면 겪지 못했을 느낌이었다.
스마트 기기들은 날이 갈수록 진화한다. 그런데 왜 스마트폰을 쥔 나는 점점 퇴화하는가. 대뇌는 제 쓸모를 잃은 지 오래다. 사색과 반성의 시간들이 없어졌다. 신문기사나 사설을 읽을 때도 스스로 현상을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그보다는 공감수가 가장 많은 댓글을 읽고, 공감을 하면 그것이 곧 나의 의견이 되었다. 어느덧 나는 스마트폰이 보여주는 네모난 시야 안에서만 보고, 듣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루 단 몇 시간이라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자 한다.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어버린 나에게, 하루 단 몇 시간만이라도 자유를 주어야겠다. 스스로 멍청해질 자유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