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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중구, 동구에 걸쳐있는 구도심은 현재는 매력적인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아픈 역사가 녹아들어있다. 인천항이 개항된 이후 중국 산동성 노동자와 상인들을 필두로 일본인들도 건너오게 되면서 각자의 구역을 만들게 되었고, 현재까지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속에서 인천은 한국의 수도로 통하는 외항일 뿐만 아니라 대륙의 강대국들이 만나는 주요 지점이었다. 그 때문에 수많은 전쟁의 배경이 인천이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던 연안부두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에는 러일전쟁의 각종 추모비가 있어 러시아의 향기가 진하게 풍긴다. 반면 미국과 관련된 장소는 차이나타운 뒤편 동산에 자리하고 있다. 각종 매체를 통해 한번쯤은 들었을 자유공원이 바로 그곳이다.

1888년 서양인들에 의해 조성된 한국 최초의 서구식 공원으로 원래는 위치 자체가 각국의 공동 조계 구역에 있었기에 각국공원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종로의 탑골공원보다 무려 9년이나 앞서서 건설되었으며, 최초의 커피하우스인 덕수궁 정관헌, 러시아 대사관 등을 설계한 사바틴이 이 공원을 설계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가 되고 난 후 서공원이라 명칭을 변경하면서 일본식으로 공원을 새롭게 단장했다. 광복을 맞이하고 6.25 전쟁을 거친 후 반공을 줄기차게 외친 이승만 정권 하에서 인천 상륙작전을 기념하는 곳으로 이 공원이 선정되어 이때부터 자유공원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자유공원의 맥아더동상 한국 최초의 서양식 공원인 자유공원은 미국과의 인연이 유독 깊은 장소라 할 수있다. 조미통상수호조약을 체결한 장소 중 하나로 알려져 있고, 맥아더장군 동상도 세워져 있다.
자유공원의 맥아더동상한국 최초의 서양식 공원인 자유공원은 미국과의 인연이 유독 깊은 장소라 할 수있다. 조미통상수호조약을 체결한 장소 중 하나로 알려져 있고, 맥아더장군 동상도 세워져 있다. ⓒ 운민
동시에 그 유명한 맥아더 동상이 자유공원에 들어섰고, 현재도 인천항을 내려다보고 있다. 동상 말고도 자유공원의 이곳저곳에는 미국 관련 흔적들을 엿볼 수 있는데 우선 자유공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으로 이동해 보도록 하자.

산의 능선을 따라 전망 좋은 자리마다 팔각정이 들어서 있는데 이 부근에 개항 직후 미국 공사관이 임시로 들어섰기도 했고,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처럼 인천은 다양한 국가들과 얽힌 역사의 한 장면들을 가슴에 새겨보는 도시라 할 수 있다.     
 
인천으로 넘어 온 서양 열강 국가들의 사교 모임의 장, 제물포 구락부 인천 구도심 자유공원 아래 자리잡은 제물포 구락부는 인천으로 넘어 온 서양 열강국가 외교관들의 사교모임의 장으로 이용되었다.
인천으로 넘어 온 서양 열강 국가들의 사교 모임의 장, 제물포 구락부인천 구도심 자유공원 아래 자리잡은 제물포 구락부는 인천으로 넘어 온 서양 열강국가 외교관들의 사교모임의 장으로 이용되었다. ⓒ 운민
   
이제 자유공원에서 제물포 구락부 방향으로 내려가 보기로 해 본다. 인천항의 번화한 모습과 함께 시원하게 펼쳐진 푸른 바다의 모습을 보니 나의 마음이 벅차오른다. 예전에는 이 항구를 통해 수많은 최초의 문물이 들어와 우리 삶의 모습을 여러므로 변화시켰다. 그런 중요성에 비해 우리는 인천항을 단순히 수출입을 위한 창구로만 보는 게 아닌가 싶다.

계단을 조금 내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서양식 건축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인천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의 사교모임을 위해 지어진 제물포 구락부가 바로 그곳이다. 2층 양옥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부에는 사교실을 비롯해 당구대, 도서실, 식당 등 다양한 시설은 물론 외부에는 테니스코트까지 설치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자연스럽게 각국 조계지는 철폐되었고 일본인들만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다가 해방 후 미군정 병사들의 클럽으로 쓰이기도 하는 등 근현대사의 많은 애환을 담고 있는 건물이다. 이후 인천시립박물관을 거쳐 2020년부터 미래세대를 위한 복합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건물이 2층이라곤 하지만 서로 이어져 있진 않고, 각자의 층으로 통하는 입구로 따로 들어가야 해서 완전히 분리된 공간이라 봐도 무방하다. 1층은 매번 다른 주제가 정기적으로 교체되는 특별전시실로 이용되고 있고, 2층은 개항 그 당시 제물포구락부의 모습을 어느 정도 재현해 놓았다.
     
제물포구락부의 내부 모습 제물포구락부의 2층에는 그 당시의 모습을 충실히 재현해 놓았다.
제물포구락부의 내부 모습제물포구락부의 2층에는 그 당시의 모습을 충실히 재현해 놓았다. ⓒ 운민
 
음악 관련 시설이 재현되어 있는 헐버트 홀에서 시작해 인천 관련 자료들의 책자를 보며 휴식도 취할 수 있는 로제타 셔우드 홀 룸, 메킨지 홀을 둘러볼 수 있다.

특히 예전 외교관들이 술 한잔 하면서 대화를 나눴을 것 같은 김란사 바는 제물포 구락부의 나름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지만 현재는 방역의 문제로 인해 직접 음료를 즐기는 호사는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멀고 먼 낯선 이국에 와서 치열한 외교전의 무대가 되었던 제물포구락부, 앞으로 충실하게 콘텐츠를 갖추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명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계단을 내려와 맞은편 건물로 갈 차례다. 꽤 긴 담장을 끼고 있는 공간이라 밖에서는 그 진가가 드러나지 않지만 입구로 들어와 그 공간을 두리번거린다면 규모가 꽤나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이곳은 현재 인천시민愛집이란 이름으로 최근에 개방된 곳으로 한때는 시장 관사로 쓰였던 집이기도 하다.
 
인천시민애집의 전경 제물포구락부의 바로 맞은 편에는 인천시민애집이 위치한다. 한때 인천시장관사로 쓰이는 등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현재는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개방되었다.
인천시민애집의 전경제물포구락부의 바로 맞은 편에는 인천시민애집이 위치한다. 한때 인천시장관사로 쓰이는 등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현재는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개방되었다. ⓒ 운민

입구의 관리동으로 쓰였던 건물은 역사 전망대라는 명칭을 달고 넓게 창을 내어 멀리 인천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와 휴식공간으로 쓰이고 있으며 관사로 쓰였던 거대한 한옥 건물은 제물포 한옥 갤러리로 인천의 과거 역사를 살펴보는 갤러리로 이용된다. 한옥 갤러리 왼쪽으로 들어와 신발을 벗고 건물 내부를 차근차근 둘러보기로 한다.      

역사 회랑이라 불리는 복도를 거쳐 역사 북 쉼터로 들어오니 사방이 확 트인 거대한 공간이 나타난다. 역사 북 쉼터라 불리는 곳인데 밖에는 아름다운 야외정원의 풍경이, 내부는 시원하게 탁 트인 공간이, 게다가 한옥과 일본식의 어느 한가운데 있는 듯한 인테리어가 주는 조화 덕분에 한동안 이 공간에 푹 빠져 헤어 나오질 못했다.
 
인천시민애집 역사북쉼터의 전경 인천시민애집, 한옥갤러리의 내부로 들어오면 가장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 역사북쉼터가 나타난다. 마음껏 기대 앉으며 독서와 함께 사색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다.
인천시민애집 역사북쉼터의 전경인천시민애집, 한옥갤러리의 내부로 들어오면 가장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 역사북쉼터가 나타난다. 마음껏 기대 앉으며 독서와 함께 사색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다. ⓒ 운민
 
그 뒤로 미로 같은 공간이 계속 이어진다. 예전 인천시장관사로 쓰였던 기억을 되살려 방마다 인천직할시 시절의 사진자료와 팸플릿 등을 전시해서 그때의 추억을 되살려 보자는 취지로 꾸민 것 같았다. 어느덧 관사의 가장 깊숙한 공간에 들어왔다. 예전 시장이 사적인 공간에서 생활용품으로 쓰였을 만한 티브이,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는 모습이 나름 신선했다.      

그리고 가장 의외의 공간인 화장실까지 살펴봤는데, 현재는 그 자체의 용도로 쓰이진 않지만 욕조, 세면대를 이용해 갤러리의 무대로 쓰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다소 황당했고,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관리동까지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이를 감수할 만한 볼거리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인천 사랑애 집을 둘러보며 의문이 든 점이 하나 있었다. 분명 기와, 단청 등 한옥의 외형을 어느 정도 취하고 있지만, 건물 구조를 살펴봤을 때, 미로처럼 건물이 길쭉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살펴봤을 때 왜색이 진하게 느껴진다. 그렇다. 원래 이 건물은 일본인 사업가 코노 다케노스케의 별장이었다고 한다.

수입상이었고 포목 장사로 돈을 많이 번 그는 공들어 이 집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서구식 레스토랑 '동양장', 고급 사교 시설인 '송악장' 등 역사를 거쳐 관사, 역사자료관으로 쓰였던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 이어온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보니 건물이 무척 색다르게 보인다. 잘 꾸며진 정원을 거닐면서 인천이 가진 독특한 지위와 겹겹이 쌓인 역사의 무게가 만만치 않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러시아(연안부두), 중국(차이나타운), 미국(자유공원)에 이어서 또 다른 역사 여행을 계속 떠나보도록 하자.     

덧붙이는 글 | 9월초,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경기별곡 시리즈 1권이 출판됩니다. 많은 성원,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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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팟케스트 <여기저기거기>의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obs라디오<굿모닝obs>고정출연, 경기별곡 시리즈 3권, 인조이홍콩의 저자입니다.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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