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을 읽을 때 '사이다'라는 반응을 접할 때가 있다. 말 그대로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마음속의 답답한 부분을 확 뚫어줬다는 비유인데, 읽고 나면 덕분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명확해지는 것 같고 확실한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임지은 작가의 <연중무휴의 사랑>은 서문에서부터 "애매한 마음"에 대해 이야기할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 책은 "덜 모르겠는 것 위주로 써 내려간" 결과물이다. 애매한 마음에 대해 집중한다는 건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푹푹 찌는 여름의 한 가운데인 7월 29일, 분당구의 모처에서 임지은 작가를 만났다.
체념하지 않고 계속 고민하는 것, 연중무휴의 사랑
- 첫 책인데 3쇄를 찍으셨다고요. 축하드립니다. 독자분들은 왜 이 책을 찾았을까요?
"우선은 표지인 정이지 작가님의 그림이 사람들을 끌어당긴 게 아닌가 생각해요. 실제로 표지가 예쁘다는 후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내용적인 측면으로는, 점도가 느껴지는 에세이라 그런 것 같다고 추측하고 있어요. 최근 에세이들이 대체로 산뜻하다는 인상을 받아요. 그게 멋져 보여서 많이 참고하고 그 과정 중 많이 좌절했어요. 산뜻하고 강단 있는 사람이 먹히는 시대인 거 같은데 저는 그게 잘 안 되는 사람인 거 같았거든요.
왜, 힙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신디사이저 음이나 쿨한 영어 가사에 공감하고 싶은데, 아무리 들어도 거기에는 마음이 붙지 않는, 결국 질질 짜면서 낡은 발라드 열창하는 그런 타입 있잖아요. 어떻게 해도 좀 질척이고 끈적거리고 기름진 인간이라 에세이도 결국 좀 그런 부분들이 있는 거 같아요. 근데 의외로 저 같은 사람들도 아직 많이 있었던 거 같아요."
- "페미니즘 에세이라고 알려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서문이 인상적이에요.
"어쨌든 저는 이 사회에 사는 한 명의 여성으로서 제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고, 거기엔 페미니스트적 측면이 분명 있죠. 다만 나를 설명하는 여러 단어가 있고 그중 하나가 페미니스트다, 라는 게 더 정확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그 단어 중 다른 단어를 발견할 수도 있겠죠. 제 삶에 관해 쓰다 보니 페미니즘이 묻어나왔달까요.
또 '이런 목소리가 페미니즘적인 메시지다'라고 경계를 딱 지어서 말하고 싶진 않았어요. 오히려 저는 페미니즘을 규정하는 다양한 목소리가 있었으면 좋겠고, 제 책이 페미니즘 에세이다 아니다 식으로 논쟁적이면 좋겠어요. 그런 게 지속되어서 점점 페미니즘의 영역이 확장되어가길 바라요."
- 책에는 여성 혹은 여성인권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그냥 일상 얘기도 있어요. 이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면.
"제목 그대로 '연중무휴의 사랑'이 아닐까요. 작가와 활동가의 영역은 각기 다른 부분이 있어요. 어떤 사회적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때마다, 그런 에너지가 내가 되고자 하는 업이나 삶과 부딪힐 때마다 그 다름이 늘 부끄러워요. 하지만 거기서 체념하지 않고 그 문제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 역시도 저는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연중무휴라는 말은 연중무휴로 불타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제 전부를 다 바치지는 못하지만, 끊임없이 사랑을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태도로 글을 썼어요. 책의 내용을 관통하는 하나의 무언가가 있다면 그 태도일 거 같아요."
- "임지은의 애매한 마음들이 거기 있음"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에요.
"지금의 세상은 제가 무언가를 잘 알고 있다고 자꾸 착각하게 만들어요. 잘 알고 싶어 하는 부분들만 편식해서 보여주고. (웃음) 그러면 어떤 사안에 대해 잘 안다고 섣불리 말하거나 명명해버리기 쉬워요. 물론 그럼에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고, 틀렸을 때 정정할 공통의 기준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 사회는 자칫 오래 들여다봐야 알게 되는 것조차 빨리 단정 짓고 지나치는 경향이 있고 저는 그 경향에 저항하고 싶어요. 그래서 살아가며 갖게 되는 애매한 마음들이나 해결되지 않고 거기 남아있는 마음들에 집중하게 되는 거 같아요.
명쾌한 건 명쾌하게, 애매한 건 애매하게 다루는 것이 더욱 정확한 방식이라고 믿어요. 후자는 오랜 시간이 걸리고 명쾌하지도 않아요. 다만 내가 명명하기 어려운 게 있다는 걸 알려주면서 어떤 경향에 의심을 하게 만들어주죠. 저는 그럴 때 전보다 조금 더 정확하게 살고 있는 거 같다고 느껴요."
- 책 속에서, 평론가와 아티스트 간에 있었던 갈등을 이야기한 글에 유독 긴 각주가 달려 있어요. "조금 더 해명이 필요하다"(p.91)고 느껴서 단 각주인데, 이 해명은 왜 필요했을까요?
"해당 평론가분은 열심히 목소리를 내오신 분이고, 제가 못하는 방식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이에요. 여전히 저는 그분을 응원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 일은 논의해볼 여지가 있는 지점이라고 봤어요. 아직은 제 생각에 변화가 없고요. 그렇다 해도 분명 이런 비판은 당사자에게 상처가 될 수 있겠다 싶어 이 글을 책에 넣을까 고민이 많았는데, 편집자님 설득으로 넣게 되었어요. 그렇다면 내가 왜 이렇게까지 말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조금 더 덧붙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문제를 바라보는 제 전제를 조금 더 설명하고도 싶었어요. 해당 글은 원래 SNS에 썼던 글을 가져와 출판에 맞게 수정을 거친 글인데, SNS 게시 당시 그 글로 인해 DM과 댓글을 엄청 많이 받았거든요. 최근에도 댓글이 달리더라고요. 이 사람이 이 지경이다, 이런 말을 했는데 아직도 똑같이 생각하냐. 매번 열심히 댓글을 달면 지우고 사라지시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거기에 응답해온 내용과 생각을 좀 더 정리해서 각주로 달았어요."
우왕좌왕하는 순간들이 쌓여 '글'이 됩니다
- "모두가 이토록 자신이 무해한 사람이길 바라"지만 "개인의 기본값이란 타인을 상처 주는 데 있다고 가정해야 맞는 게 아닐까"(p.184)라고 했어요. 무해함은 지은님에게 어떤 문제로 다가오는 걸까요?
"언젠가부터 무해함이 윤리를 담보하는 긍정적인 가치가 되어버린 것 같아요. 많이 다치는 사회니까,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단어라고도 생각하고요. 하지만 그게 기본값인 삶은 너무 생기가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누군가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겠다고 엄청 친절하게만 굴면 오히려 누구와도 가까워질 수 없지 않나요. 무해하고 아무런 상처도 안 주는 관계는 둘 사이 거리가 멀 때만 가능하잖아요.
중요한 건 내가 상처를 줬을 때 사과하고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자세이지, 아예 상처를 주지 않는 무해한 관계를 처음부터 지향해야 한다는 것에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그런 관계는 서로를 엮어주는 게 하나도 없는 관계 아닐까요?"
- 작가님으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애매한 마음이나 경계에 머무르는 순간들이요. 하다못해 카페 가서도 뭘 시킬지 한참 고민하는 사람이다 보니 우왕좌왕하게 되는 순간들이 무척 많아요. 그런 순간들로 고민하고 생각하던 시간들이 쌓이고 모여 결국 글이 되는 거 같아요."
- 다음 책 계획이 있나요.
"임지은 시인님과 공저로 쓴 책이 8월 말에서 9월 초쯤에 나올 거 같아요. 같은 이름을 가진 시인과 작가가 만나 비슷한 주제를 두고 써나간 에세이입니다. 색다르고 즐거운 경험이었고 무엇보다 미리 읽어본 시인님 글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 이후에도 다른 산문집들을 계약하게 되어 함께 내용을 구상 중이에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민준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coolboy95)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