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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어느 광고에서 아내가 여행을 떠나며 남편에게 "곰국 끓여놨다. 다녀올게"라는 말을 던지고 의기양양하게 떠나는 모습이 그려진 적이 있다. 남편의 당황스러운 눈동자도 함께. 우스웠지만 전적으로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우선 '왜 하필 곰국일까'라고 생각했고, 곰국을 끓여놓을 자신이 없으니 나는 저렇게 나가는 그림은 연출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광고 당시까지 한 번도 내 손으로 곰국을 끓인 적이 없었던 때문이었다. 머릿속으로도 곰국 끓이는 것은 간단하지 않고 복잡하고 어려운 절차였고, 그 수고를 남편을 위해 했으면 당연히 좋아해야 되는 것 아닌가도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생각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광고에 공감하는 것 같았고, 이후로 다양한 패러디를 만들며 개그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것 같다.

생애 처음으로 소꼬리를 끓였다. 무려 8킬로그램의 뼈. 무지막지한 양이었다. 날카롭게 잘린 뼈와 거기에 붙은 약간의 살과 기름 덩어리, 비닐봉지에 번지는 핏기. 봉지에서 꺼내 핏물 빼는 것부터 눈을 질끈 감아야 했다.

소꼬리를 끓이겠다고 결심하고 사러 가면서도 걱정이 많았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잡내를 잡을 수 있다는 다양한 방법을 찾았고, 무와 양파 그리고 대파, 월계수 잎, 생강 등 각종 냄새 잡는 것들까지 한꺼번에 사니 커다란 장바구니는 입구까지 가득 찼다.

넓은 대야에 8킬로그램의 뼈를 반으로 나누어 핏물 빼는 데 3시간, 초벌로 삶기 30분, 1차 육수 뽑기 3시간, 2차로 다시 4시간, 마지막 육수 뽑기 4시간. 큰 들통에다 가득 물을 부어 절반 가까이로 졸여질 때까지 나흘간 들통 두 개를 밤낮없이 번갈아 끓이고 따르고 했다. 며칠간 집에 사골 향이 진하게 퍼졌다. 네 번이나 다섯 번까지 우려낸다는 말도 있었지만, 더는 뼈를 가지고 씨름하고 싶지 않았고 과감하게 세 번으로 마감했다.

전쟁 같던 곰국 끓이기 
 
냉동실 가득한 곰탕 길가에 널린 세 잎 클로버처럼 냉동실 가득한 곰국을 보니 행복은 멀지 않다.
냉동실 가득한 곰탕길가에 널린 세 잎 클로버처럼 냉동실 가득한 곰국을 보니 행복은 멀지 않다. ⓒ 장순심
 
남편이 대장암 수술을 받은 지 한달이 지나, 곰국을 먹어도 된다는 말에 일을 벌인 것이었다. 매번 연한 된장국과 맑은 국으로는 상차림에 한계가 많았다. 먹는 사람도 고역이었을 것이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를 늘려야 했다. 안내장에 '4주 후 곰국을 먹을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있었고, 한 번 수고하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이 과정을 기꺼이 시작했다. 

이전에도 소꼬리나 우족을 한두 번 끓인 적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 과정이나 과정에서의 어려움이 전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아마도 실패했거나 가족 중 누군가의 수고가 나보다 컸기 때문이었으리라.

이번엔 모든 과정이 몸으로 다가왔다. 더구나 삼복의 한가운데였다. 이전처럼 남편의 수고를 빌릴 수도 없었다. 혼자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끓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고 과정마다 둥둥 뜬 기름과의 전쟁, 불과의 전쟁이었다. 무엇보다 온몸에 진하게 냄새가 배어드는 것이 유쾌하지 않았다.

나흘을 끓인 소꼬리 국물의 양이 엄청났다. 하루 이틀은 아이들도 남편도 열심히 먹어 주었다. 막 곤 국물에 밥 말아서 뚝딱 치우는 한 끼가 보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개운하고 뿌듯할 수 없었다. 이틀이 지나니 더는 찾지 않았다. 벌써 물린다는 말도 나왔다. 이제는 기름을 잘 걷어내서 소분하고 냉동실로 직행해야 했다. 작업을 완료하니 냉동실이 가득 찼다.

고생스러웠지만 가족들이 건강해질 수 있다는 만족감은 컸다. 언제든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냉동실에 그득했다. 이 정도면 소꼬리 값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다. 끓이는 과정에서 분리된 고기와 연골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적당히 나누어 냉동실에 얼렸다. 냉동실의 국물과 고기 한 덩이를 꺼내 끓이면 곰국 맛집의 모양이 어느 정도 나왔던 것 같다.

무엇보다 남편이 먹을 수 있는 것이 하나 더 늘었다는 만족감이 컸다. 솔향이 밴 소금을 넣고 파를 듬뿍 썰어 넣으니 진한 국물이 풍미를 더했다. 소면을 적당히 넣어 끓이기도 했고, 버섯과 만두를 넣어 끓이기도 했다. 푹 삶아져 흐물흐물해진 살코기를 적당히 얹으면 밥을 말아 후루룩 넘길 수도 있었다. 끼니를 채우는 데는 최고였다.

곰국과 함께 김과 만두도 먹을 수 있다고 했다. 이것만 해도 넘치게 감사한 조건이었다. 어느 어머니가 아이를 키운 건 8할이 김과 달걀이었다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남편의 끼니에 김과 만두가 8할은 아니어도 충분한 역할을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게다가 곰국에 만두를 넣어 끓이니 영양이 채워진 상이 차려지는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내가 기꺼이 곰국을 끓이는 이유 

가족들과 달리 나는 곰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족들의 표현에 따르면 몸에 좋은 음식은 죄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정도니.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만 어쩔 수 없이 먹었을 뿐 스스로 선택해서 먹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상황이 이러니 그동안은 내 손으로 곰국은 끓일 생각도 하지도 않았다. 가족들이 진한 곰국이 생각난다고 하면 맛집에 가서 먹든가 사다 먹이는 선택을 했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일부러 해장국이나 설렁탕 곰국 등의 맛집을 찾아다닐 정도로 좋아했다. 해마다 어머니께 소꼬리를 사서 가져갔고, 며칠이 지나면 어머니가 냉동실에 얼려놓은 곰국을 가져가라고 하셨고, 큰 가방으로 가득 가져와서 가족들이 잘 먹곤 했었다. 늦었지만 어머니의 사랑과 노고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이번에 더 깊이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곰국은 정말 건강에 좋은 것일까? 문득 의구심이 들었지만, 지금 영양 성분을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은 상에 올릴 수 있는 종목이 늘었다는 것, 남편이 만족해하고 잘 먹는다는 것, 애들도 행복해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가족이 만족하니 따라서 행복해졌다. 길가에 널린 세 잎 클로버처럼 냉동실 가득한 곰국을 보니 행복은 과연 멀지 않은 것 같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 말이 요즘처럼 많이 다가오는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피할 수 없어 즐기는 쪽을 선택한다. 갑자기 다가온 대장암이라는 남편의 병과 그로 인한 상차림도, 무더운 여름의 소꼬리와 씨름하는 수고도. 우울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날마다 한다.

병을 얘기하면 서로가 불편해지고 어색할까 싶어 정말 가까운 가족 몇 외에는 남편의 발병도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니 평상시와 같은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이유가 되고, 평상시와 같은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해 준다. 앞으로의 일상도 그렇게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곧 나만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남편을 위한 곰국을 끓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느 광고처럼.

#소꼬리#곰탕#대장암#수술 후 식사#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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