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영 작가님, 다른 스포츠랑 다르게 왜 골프만 관중을 갤러리라고 불러요~?"
"듣고 보니 그러네요~ 익숙한 용어라서 저는 그런 신선한 의문을 가지지 못했어요. 같이 상상력을 발휘하며 말해 볼까요?"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부터 모든 호기심과 창의력은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삶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려는 사람은 '안다'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을 경계한다. 왜냐하면, 안다고 생각하면서부터 진짜 알아야 할 것을 모르게 되기 때문인데 이를테면, 여전히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당연한 사실 따위 말이다. (웃음)
그것은 사물에 관해서든 사람에 관해서든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무튼 골프를 치지 않는 독자로부터 반짝이는 질문을 받고 함께 알아보았다.
골프 관중을 갤러리라고 부르는 이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원래 '갤러리(gallery)'는 미술품을 진열, 전시하고 판매하는 미술관이나 화랑을 의미한다. 영국에서는 극장의 맨 위층 구석자리에 서서 보는 공간을 뜻한다. 이처럼 흔히 예술과 관련된 단어를 골프에서는 관중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한다. 그렇다면 어떠한 연유에서, 유독 골프 스포츠에서만 관중을 '갤러리'라고 부르는 걸까?
대중화가 된 오늘날과 달리 과거의 골프는 상류층만이 누릴 수 있는 고급 취미생활이었다. 그랬기에 당시 귀족 스포츠로 인식됐던 골프는 대회를 열더라도 극히 소수의 선수와 관중만 참여 가능했다. 그들에게 골프 대회를 보는 일은 마치 미술관이나 극장의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갤러리'라는 말이 유래됐다고 한다.
미술 전공자인 나의 상상력을 이어간다면 이러하다. 다른 스포츠와 다르게 물, 바람, 햇살, 나무, 모래, 풀, 돌 등 자연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으며 경기하는 선수의 모습은 풍경화 속 하나의 점으로 인식되지 않았을까. 다르게 표현하면, 관중은 자연의 변화에 적응하며 깃대를 향해 가는 골퍼와 함께 동선을 옮겨간다. 그렇게 대자연과 함께 자기만의 스코어를 기록해가는 창조주의 예술 작품(인간)을 로프 밖에서 감상했으리라.
이러한 역사적 뿌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전히 미술관이나 골프를 고급 취미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달리 규칙을 준수하지 않는 일부 갤러리들의 비매너로 프로 선수가 피해를 입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반대로 골프 정신을 훼손하는 일부 프로 선수의 비매너로 갤러리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일 역시 매스컴을 통해 자주 접하게 된다.
로프 밖 갤러리는 침묵하는 것이 매너
2019년에는 김비오 프로 골퍼가 중요한 샷을 날리는 순간 휴대전화 카메라 셔터 소리를 낸 갤러리가 있었다. 그로 인해 미스샷을 낸 선수는 갤러리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고, 그에게는 자격 정지 3년과 10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됐다. 그 후 골프 협회는 프로 선수 인성 교육을 이야기했고, 갤러리들은 골프 매너 준수라는 자성의 소리를 높였다(한국프로골프협회는 지난 2020년 김비오 프로 골퍼의 징계를 풀어주는 특별 사면을 단행했고, 그해 김 프로 골퍼는 필드에 복귀했다).
그래서 요즘은 '명예 마샬'(marshall, 골프장에서 대회가 진행될 때 경기 방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갤러리를 감독하는 요원) 제도를 도입해서 갤러리들 스스로 '조용히'라는 단어나 '카메라 X'가 적힌 팻말을 들고 경기를 즐긴다.
오래전 나도 프로 선수의 경기를 보기 위해 갤러리로 참석한 적이 있다. 요즘 골프대회는 한 장소에 설치된 스탠드에서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 실제 선수들이 치르는 코스를 갤러리가 따라다니며 모든 경기를 관람한다.
그래서 대회 주최 측은 골프 선수가 경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갤러리와의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코스를 따라 로프를 설치한다. 이때, 자원봉사자는 로프 안으로 갤러리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지하거나, 선수가 경기할 때 갤러리에게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준다. 동행 중에는 웃고 떠들더라도 골퍼가 경기 중에 중요한 샷을 날리는 순간만큼은 모두가 침묵하는 것이 예의다.
이러한 갤러리 문화를 보면서 우리가 사는 인생과도 닮았다고 생각했다. 인생 여행의 동반자가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실천하기 전까지는 옆에서 애정이 어린 조언을 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자기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샷을 날리는 순간만큼은 믿어주며 침묵해야 한다. 가족, 애인, 친구처럼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말이다.
전공, 취업, 직업, 결혼, 이혼, 출산, 육아, 노후 등 쉼 없이 타인의 삶에 선을 넘고 참견하면 반드시 원망을 듣게 되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그래서일까?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코로나 시대는 더욱더 건강한 인간관계의 거리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나는 타인이 자기 인생을 직접 플레이하며 스코어를 기록해 나갈 수 있도록 서로의 삶에 너무 깊숙이 관여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너무 가까우면 서로의 가시에 찔리고, 너무 멀어지면 온기를 느낄 수 없는 고슴도치의 딜레마처럼 안전한 거리를 찾아 유지하려고 성찰한다.
이쯤 되니 왠지 로프 밖 갤러리는 침묵하라는 푯말을 명예 마샬처럼 머리에 붙이고 다녀야 할 것만 같다. (웃음)
덧붙이는 글 | 이은영 기자 브런치에도 함께 올라갈 예정입니다. https://brunch.co.kr/@yoconiso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