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열 열사 동상의 설명판(부조, 돌벽)에 새겨진 '4·11 민주항쟁'이란 용어를 두고 3·15의거기념사업회와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가 논쟁을 계속 벌이고 있다.
창원시가 김주열 열사 시신인양지(경남도 문화재)에 세운 동상은 지난 7월 말 제막식을 열려다가 코로나19 등 사정으로 연기됐다. 동상은 현재 비닐과 테이프로 가려져 있다.
이 동상 설명판에는 '4·11민주항쟁'이라 새겨졌다. 1960년 3·15 때 가담했던 김주열 열사가 행방불명된 지 27일만인 그해 4월 11일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중앙부두에서 떠올랐고, 이에 시민들이 "김주열 살려내라"며 민주항쟁을 벌였다.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설명판에 새겨진 '4·11민주항쟁'에 대해, 3·15사업회는 지난 12일 "3·15의거 역사 왜곡 부분 지우고 김주열 열사 동상 즉시 제막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그러자 김주열사업회는 17일 "4·11민주항쟁, 3·15사업회는 무엇이 두려운가"라는 제목으로 반론을 낸다.
3.15사업회 "공인된 역사를 일방적으로 두 동강 낼 수 없다"
3·15사업회는 "부조에 새겨진 3·15의거를 일방적으로 왜곡 정리한 4·11민주항쟁 명명 부분은 전면 삭제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개인이나 특정단체가 3·15의거를 두고 임의대로 명칭을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공공의 구역에 설치된 공공재에 절차적 공인도 없이 새기는 것은 명백한 왜곡을 넘어 다른 합리적 의심을 가지게 할 뿐"이라고 했다.
또 3"3·15의거는 3월 15일 1차 항쟁과 4월 11~13일 사이의 2차 항쟁으로 정의된다"며 "<3·15의거사>, <마산시사>, 초중고 교과서, 법률, 학술논문 등에서 일관되게 공인된 민주역사"고 강조했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이들은 "윤상원 열사의 죽음이 5월 27일이라는 이유와 이웃인 담양을 비롯한 주변 지역에서의 항쟁을 별도의 민주항쟁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5·18이란 이름으로 통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3·15의거는 3월 15일 1차 항쟁과 4월 11~13일 2차 항쟁으로 분리해서 별개의 민주화운동으로 정의할 수 없다"며 "김주열 열사를 추모하고 기념하는 단체가 왜 굳이 역사를 두 동강을 내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3·15사업회는 "지난해 60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우리는 김주열사업회 측에 발표, 또는 토론자로 나와 주시기를 수차 요청하였지만 거부하여 제대로 된 논의를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3·15사업회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역사 논쟁이라면 기존에 정리된 대로 하면 될 것을 굳이 여기에 일방적으로 새겨 논란을 일어 키는지, 그 저의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3·15의거의 일관된 공인 역사를 일방적으로 두 동강을 낼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며 "즉시 문제되는 부분을 삭제하고 이 사안의 본질인 '김주열 열사의 동상'을 제막하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김주열사업회 "3.15사업회 언행이 '반3·15' '반민주적'"
김주열사업회는 반박문을 통해 "불행히도 역사명칭을 법으로 강제한 것은 독재정권뿐이었다"며 "3·15사업이 '4·11민주항쟁'이라는 명칭을 쓴다는 이유로 어처구니없는 비난과 비방을 쏟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3·15의거의 역사를 두 동강 냈다"를 주장에 대해 김주열사업회는 "3·15사업회는 우리가 3.15의거 역사를 어떻게 두 동강 냈는지 증거를 제시하라"고 되물었다.
"4·11민주항쟁이 역사왜곡"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2차 의거'라는 용어보다 좀 더 적극적인 역사해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4·11민주항쟁이라고 부르고 있다"며 "그렇게 했을 때 3·15의거의 역사적 위상과 가치가 몇 배로 높아진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 3·15의거를 그날 하루뿐인 줄 알던 대다수 시민과 학생들의 자긍심이 높아지는 걸 늘 확인하고 있다"며 "3·15사업회는 무조건 '역사왜곡'이라 외치지 말고 우리와 시민들이 납득할 만한 논리와 증거를 제시하라"고 했다.
3·15사업회에서 펴낸 <3·15의거 학술논문 총서>에서 장동표 교수는 "많은 희생자를 낸 3월과 4월의 마산항쟁을 단순히 3·15의거로만 부르는 것은 역사적 의미를 축소시킬 가능성이 있다"거나 "'3·15'라는 이름만 붙일 경우 그것으로 시민들의 격렬했던 항쟁의 규모를 3월의 것으로만 한정시킬 가능성이 또한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또 서중석 교수가 3·15사업회에서 펴낸 <3·15의거 12호>에서 "중·고등학생이건 대학생이건 마산에서는 3월 15일 한 차례만 의거가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면, 그것은반 쪽밖에 모르는 것이 될 것이다", "더구나 4·19가 제2차 마산의거 때문에 일어난 것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면 그것은 4분의 1밖에 모르는 것이 아닐까?"라고 했다고 김주열사업회 측은 전했다.
"이한열 열사와 윤상원 열사의 희생을 거론하며 그 열사들의 희생된 날을 따로 역사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 것에 대해 김주열사업회는 "이런 비유는 역사를 모독하고 민주열사들을 모욕하는 일이다"라며 "우리가 '4.11민주항쟁'이라고 칭하는 것은 김주열 열사의 끔찍한 시신 발견이 동기가 되어 그날 마산시민들이 벌인 항쟁에 혁명적인 의미를 담아내기 위한 명칭이었다"고 했다.
"4·11민주항쟁은 공인된 명칭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꼭 국가나 공공단체가 인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 받아온 것도 공인이라는 말이다"며 "우리는 17년 전부터 4·11항쟁이라는 명칭을 써왔다. 행사 때마다 현수막, 배너, 광고탑, 신문광고, 초대장 등을 통해 창원시내 일원에 대대적인 홍보를 해왔다"고 반박했다.
이어 "지역의 기초단체장들이 적어도 10년 이상 이 명칭의 행사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왔고, 3·15사업회 회장들도 참석했다"며 "뿐만 아니라 현재 친일청산, 독재청산, 인권, 통일, 노동운동 등 민주화운동정신을 계승, 실천하고 있는 수십개의 시민단체들이 늘 함께하고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3·15사업회는 "절차적 공인과 협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주열사업회는 "이 공간은 공공구역 이전에 김주열 시신이 인양된 역사 현장이자 문화재 구역이다. 공공재는 다른 것도 아닌 김주열 열사의 동상이다"라고 맞섰다.
이어 "자칫 사라질뻔한 이 공간을 김주열사업회가 20년 동안 악전고투하며 지켜낸 역사현장이다. 이곳에서 50년만에 김주열 열사의 범국민장을 거행했고. 이 역사현장에서 10년 이상 4.11민주항쟁기념식이 아무 탈 없이 진행되어 왔다"면서 "김주열 열사의 동상은 다른 곳도 아닌 바로 이곳에 세워졌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들은 "만일 동상의 돌벽에 새겨진 4.11문구를 다 삭제하게 되면 그 흔적은 남을 것이고 그 흔적은 역사의 상처로 남아 스토리텔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이들은 "동상이 세워지리라는 것은 올해 1월 중순부터 공중파TV 방송과 각종 신문, 인터넷 기사 등 언론 보도를 통해 전국에 다 알려진 사실이다"라며 "평소 4·11민주항쟁이이 그렇게 걱정이 되됐다면 시, 도에 미리 진정서를 내든지 확인 공문을 보내든지 했어야 했다"고 했다.
지난해 열린 국제학술심포지엄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김주열사업회는 "만일 우리가 참석한다고 약속했다가 갑자기 불참했다면 어떤 비난을 받아도 감수하겠다. 그러나 그 심포지엄은 우리가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하고 개최된 토론회였다"며 "이와 관련해 두 단체가 각각 3차례 공문을 주고받았다. 두 번은 각자의 안을 제시했고 한번은 상대의 안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어 "3·15사업회는 우리가 빠진 매우 유리한 입장이었음에도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아무도 '4·11민주항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나 주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토론회 결과를 우리가 책임질 이유는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생소한 이름으로 학습현장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제2차의거나 4.11항쟁이나 그 역사 내용에 대한 설명은 꼭 같다. 생소할 것도 없다"며 "다만 한마디 '4·11민주항쟁을 제2차의거라고도 한다'고 하면 된다. 초등학생들이라도 쉽게 이해할 이 말을 혼란이 있을 거라며 미리 호들갑을 떨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김주열사업회는 "'2차 의거'를 '4·11항쟁'이라 한다고 해서 온갖 이유를 들이대며 이처럼 격렬하게 거부 반응을 보이는 3·15사업회는 지금 자신들의 언행이 '반3·15', '반민주적'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며 "머지않아 지금 3·15사업회의 언행은 역사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