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그 일(황교익 친일 논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어요. 그저 저를 돕는 동지들 가운데 한 분이 친일을 연상하는 듯한 문제제기를 한 것은 과도했다는 정도의 인식을 말한 것이 전부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 20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20대 대통령 선거 본경선 후보, CBS 라디오 인터뷰
특유의 화법은 여전했다. 지난 한주 민주당 대선 경선을 달군 경기관광공사 사장 내정자 황교익씨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전날(19일) "우리 캠프 인사의 언사가 지나쳤다"는 식으로 유감을 표명했던 이 후보. 엄중하게 말을 아끼는 화법 그대로 논란을 일단락시키려던 그는 친일 거론이 캠프 차원의 전략인지 후보 본인 생각인지 묻는 질문에 이런 답을 내놨다.
"대부분의 후보들이 캠프는 거의 안 갑니다. 갈 시간도 없고요."
맥락 상 캠프 차원의 선거 운동과 일정 정도 선을 긋는 뜻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이 후보 본인도 거두절미하고 재차 삼차 "친일 언급은 과했다", "친일 거론은 지나쳤다"를 강조했다.
앞서 황씨는 이 후보의 유감 표명 이후 본인의 막말 또한 공식 사과했다. 그러고는 이튿날 "중앙의 정치인들이 만든 소란 때문"이라고 논란의 책임을 분명히 한 뒤 "대권 주자 여러분은 정책 토론에 집중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제 발언의 주체가 이 후보 본인이 아닌 것은 맞다. 하지만 유감을 표명해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것도, 이를 통해 이날 오전 황씨의 자진 사퇴 의사를 이끌어낸 것도 이 후보였다. 그런 이 후보가 캠프 차원의 네거티브 공세와 선을 긋는 순간 앞선 '유감 표명'의 의미마저 퇴색하는 것처럼 비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정리되는 듯했던 19일 밤 이낙연 캠프는 배재정 대변인 명의로 논평을 내놨다.
과녁을 벗어나는 화살
"경기도 재난재해 총책임자인 이재명 후보가 경기도 이천시 쿠팡 물류센터 화재사건 당일, 최근 경기관광공사 사장 내정으로 논란이 된 황교익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황교익TV' 촬영을 강행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와 국민들을 경악하게 하고 있다."
- 배재정 대변인 논평 중
19일 기호일보의 <이재명 경기지사, 이천 쿠팡화재 당일 '황교익 TV' 녹화> 보도를 인용한 이낙연 캠프 측 문제제기는 이랬다. 이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 사건 당일인 지난 6월 17일 이 지사가 예정된 일정 즉,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 상생협약 등을 위한 경남 창원 방문 및 유튜브 채널 '황교익TV' 촬영 등으로 인해 화재 현장에 뒤늦게(6월 18일 오전 1시 32분)에 도착했다는 것.
반면 이 지사 측은 20일 ▲ 화재 당시 남은 경남 방문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복귀했고 ▲ 화재 현장에 행정1부지사를 파견하고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 받으며 행정지원 조치사항을 챙겼으며 ▲ 당일 저녁 급거 화재현장으로 출발, 18일 새벽에 현장에 도착해 재난 총책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취지의 반박을 내놨다.
이런 해명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낙연 캠프의 주장대로 "무책임하고 무모한 행보"라 몰아붙일 사안일까?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등 법제처 법령에 따르면, 쿠팡 물류센터와 같은 다중밀집시설대형화재 진압의 경우 실제 최상위 주관기관은 행정안전부다. 행정안전부 지휘 아래 화재 진압을 주관한다.
따라서 이 지사가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는 것은 분명하지만(이 지사는 21일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며 사과했다) 화재가 진압됐다 재점화되기를 반복했던 이천 화재 당일 오전부터 현장에서 지휘하지 않은 것을 무책임하다 문제 삼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논란은 '이재명 떡볶이 먹방' 같이 본질에서 벗어나는 양상이다. 즉각 보수경제지를 중심으로 <이천 쿠팡 화재 때.. 이재명, 황교익과 '떡볶이 먹방'> 같은 기사가 쏟아졌다. '황교익 논란'과 엇비슷한 양상이다. 그때도 이낙연 후보 측 '보은 인사' 의혹 제기가 '황교익 친일 논란'에 이어 '황교익 떡볶이 발언 논란' 등으로 번졌다. 이 지사를 향한 이 후보 측 검증 공세가 본질을 꿰뚫기보다 논란만 키우는 형국이다.
네거티브와 검증의 줄타기
본질에서 벗어난 공세의 반복이 후보에게 도움이 될까?
최근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는 이 후보의 추격세가 주춤하는 상황임을 보여준다. 특히 20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지도자 호감도‧비호감도 조사(17일부터 19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 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는 시사하는 바가 있어 보인다.
호감도는 이재명 40% - 윤석열 29% - 이낙연 24% 순이었고, 비호감도는 이낙연 62% - 윤석열 58% - 이재명 50% 순이었다. '황교익 논란'이 한창이던 시점에 실시된 이 조사에서 이낙연 후보의 비호감도 1위는 무엇을 의미할까.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네거티브와 검증은 종이 한 장 차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한 장 차이에 따라 경선 과정 자체가 피로감을 주기도 하고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그 줄타기를 얼마나 잘 하는가, 시민들은 그것도 같이 지켜보고 평가한다. 자꾸 과녁을 벗어나는 화살은 부메랑으로 바뀔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