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 외세에 의해 인천항이 개항된 순간부터 이 일대는 천지가 놀랄만한 큰 변화를 맞게 된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서구의 신기한 재화들, 조계지에는 서양식 건물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일대에 살던 조선의 서민들은 어떤 생활을 이어갔을까?
원래 개항지 주변에서 살던 조선인들은 그곳에서 쫓겨나 동인천역 너머 지금의 동구 금곡동, 창영동 일대에 옹기종기 모여 살게 되었다. 지금은 이 지역이 육지였지만 과거에는 갯골이 있었고, 배가 닿는 배다리가 놓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일컬어 배다리 마을이라 부르기 시작했고, 인천에 살던 조선인들의 구심점으로 존재했었다.
조선인들의 터전인 배다리는 1899년 경인철도가 개통되면서 큰 전환점을 맞게 되었는데 조선인을 위한 학교와 시장은 물론 간장과 술, 고무들을 만드는 곳들과 전국에서 가장 큰 성냥공장이 존재했었다. 그 공장의 이름은 조선 인촌 주식회사로서 신의주와 평양에 지점을 내고 전국으로 판로를 개척한 일제강점기 시기의 대표적인 성냥공장으로 자리했다.
지금 그 자리에는 배다리 성냥 박물관이 들어서 있어 그 시기의 생활을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게 구성해 놓았다. 이젠 라이터가 그 자리를 차지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났기에 성냥을 좀처럼 보기 힘들게 되었지만 한때는 엽서처럼 주요 관광명소와 상업광고까지 새겨졌을 정도로 서민들의 생활 속에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성냥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곳
박물관 자리에 있던 조선 인촌은 일제강점기 시기 전국 성냥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등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냥 공장이었다. 광복 이후 적산기업이었던 조선 인촌이 폐업했고, 거기서 일했던 노동자들은 인천 곳곳에 성냥공장을 세워 명맥을 이어갔었다.
전시를 둘러보며 흥미로웠던 점은 성냥불에는 '불처럼 일어나라'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양초와 더불어 집들이 선물로 많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부터 일회용 라이터를 만들기 시작했고, 성냥에 비해 저렴하고 간편하다는 점이 크게 부각이 돼 점차 우리의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가게 되었다. 규모가 큰 박물관은 아니었지만 그 시절 이 장소를 기억할만한 소중한 장소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
이제 마을 곳곳에 자리 잡은 성냥공장은 박물관을 빼놓곤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지만 배다리 마을의 골목과 거리는 서민들의 활력이 그대로 살아있는 듯하다. 이 일대는 헌책방 거리로도 명성이 있어 거리를 둘러보며 책방을 도는 재미도 쏠쏠하다.
현재 판데믹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됨은 물론이고, 출판업 시장 자체가 크게 축소됨에 따라 헌책방의 절반 이상이 문을 닫은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거리 자체도 매력이 있고, 특히 헌책방 중 하나인 한미서점은 노란색의 외형을 지니고 있어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 거리가 다시 살아나려면 거리두기 상황이 우선 개선되어야 하겠지만 주변의 문화거리와 연계해서 서점 안에 강연이라든가 작가와의 대담, 조그마한 공연을 수시로 하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배다리 마을을 주변으로 해서 특색 있는 거리가 많다. 우선 책방골목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혼수와 예단을 파는 전통 혼수 거리가 있고 그 거리를 지나게 되면 순대 냄새가 풀풀 풍기는 송현동 순대골목이 나온다. 여기서 식사를 해결해도 되지만 요즘 같은 더운 날씨에는 냉면이 딱이다. 그럴 땐 순대골목에서 동인천역을 지나 조금만 가면 푸짐한 양의 세숫대야 냉면으로 유명한 화평동 냉면골목으로 가면 된다.
대학 재학 시절 인천에 놀러 갈 때마다 가격도 저렴하고 양도 많은 화평동 냉면집을 종종 찾곤 했다. 지금이야 워낙 맛있는 냉면집이 많기에 굳이 찾아가진 않지만 이왕 근처를 지나가는 김에 추억의 맛을 찾아 한번 방문해 봤었다. 그 밖에도 동인천역 반대편으로 넘어가면 삼치골목의 푸짐한 한상도 즐겨볼 만하니 이 일대는 그저 걷기만 해도 흥미로운 포인트가 많다.
낡은 병원을 개조해 만든 카페, 라이트하우스
다시 배다리 골목으로 돌아와 이번에는 경인선 철로 너머로 이동해보도록 하자. 이곳에는 건물의 외벽을 조명으로 장식한 독특한 콘셉트의 카페가 있다. 일광 전구에서 운영하는 라이트하우스라는 카페로 예전에 폐업된 낡은 병원을 개조해 만든 곳이라 한다.
요즘 레트로 풍의 카페들처럼 예전의 병원이었던 흔적들을 그대로 살렸다. 또, 전구 회사에서 운영하는 곳답게 전구가 만들어지는 기계와 전구를 이용한 인테리어가 인상 깊었다. 여기서 파는 메뉴들도 독창적인 부분이 많았다. 전기 모양이 꽂혀있는 전기 빙수, 파워에이드를 이용해 만든 파도 에이드 등 신기한 콘셉의 메뉴들에 눈이 가서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시켜볼 수밖에 없었다.
라이트하우스를 나오면 이 길을 따라서 오래된 건물들을 이용한 카페 또는 식당들이 속속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 개항로 거리가 점점 뉴트로의 성지로 새롭게 확산되어 가는 듯한데 중구와 동구 일대의 명소를 한데 아우룰 수 있는 동네로 자리 잡길 바란다.
아차! 인천 동구에서 이곳을 빠뜨린다면 섭섭할 수 있다. 김포, 강화도뿐만 아니라 인천 도심에서도 관방유적을 살필 수 있는 장소가 있으니 바로 화도진이다.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1878년에 인천을 개항지로 요구할 것을 대비하여 진영을 만든 관아지다. 하지만 이양선으로부터 수도를 방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운 진지에서 조미수호통상, 조독수호통상을 잇달아 체결했다는 장소로 오랫동안 알려졌다.
화도진은 갑오개혁을 거치면서 진지와 건물을 파괴하게 되었고, 한동안 이 일대는 그 흔적만 남아있었다. 그러나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단 상징성이 부각이 되어 공원과 비석이 세워지고 나아가 관아도 새롭게 복원했다. 관아 내부에는 그때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밀랍 인형이 배치되어 있고, 조미수호통상조약 당시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었다.
다만 여기가 조약을 체결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이곳을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본다. 많은 회차에 걸쳐 인천 중, 동구 일대를 열심히 소개했다. 물론 영종도 일대도 행정구역상으로 중구지만 사실상 독자적인 구역이므로 다음 기회를 빌리기로 한다. 다음 소개할 곳도 얼마나 흥미로운 이야기와 역사적 스토리가 넘칠지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9월초 <우리가 모르는 경기도 : 경기별곡 1권>이 출판됩니다. 많은 사랑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