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최고가 아파트 해운대구 엘시티(LCT). 이곳 총 800여 세대의 등기부등본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180여 세대 소유주는 다주택자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세대의 21%에 해당하는 비율이다. 또 이들 다주택자 상당수가 다른 지역에 주소지를 두고 있었다.
가장 젊은 엘시티 소유자는 1996년생
전용면적 144.25㎡(58평형)를 매입한 A씨(1982년생)는 엘시티 외에 서울 서초구 20억 원대 아파트를 추가로 보유했다. 엘시티의 같은 평형대를 가진 미국 국적의 B(1973년생)씨도 서울 종로구 20억 원대 고층 아파트 소유자였다. 이들이 가진 부동산의 규모만 50억 원 이상이다. 엘시티를 두 채 이상 보유한 경우도 5세대나 됐다. C씨(1965년생) 등은 분양 당시 75평형, 59평형을 사들여 엘시티 다주택자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 2015년 준공에 들어가 4년여 만인 2019년 입주가 시작된 엘시티 더 샵의 주거타워는 85층짜리 A동, B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롯데호텔이 들어와 있는 나머지 한 동(101층)은 국내 1위 초고층 건축물인 서울 송파구 롯데타워(123층)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비수도권에서는 유일한 100층짜리 건물로 기록되어 있다. 여러 비판에도 각종 규제를 피해간 엘시티는 랜드마크타워 411.6m, 주거타워 333~339m 높이로 지어졌다.
분양가는 부산의 역대 아파트 중 단연 선두다. 주거동 3.3㎡(1평)당 평균 2700만 원대로 전용면적 186㎡(75평), 161㎡(65평형) 등을 분양받기 위해선 20억 원 안팎의 비용이 필요했다. 올해 8월 3.3㎥당 평균 시세는 부산 최고인 5천만 원대에 달한다.
엘시티 전 세대를 살펴보면 다른 부동산을 보유한 경우는 전체 882세대 중 186세대(21%). 5세대 중 1곳이 다주택자인 셈이다.
엘시티 소유자들의 나이는 50대(68명), 40대(61명), 60대(60명)가 가장 많았다. 이외에 30대와 70대, 80대가 각각 6명, 14명, 3명이었다. 다주택자는 아니더라도 엘시티를 사들인 20대도 7명이나 됐다. 가장 젊은 엘시티 소유자는 1996년생(26세)이다.
엘시티 다주택자, 대구시 거주자가 가장 많아
엘시티를 다주택으로 소유한 이들의 42%는 타 시도 거주자다. 서울시(7.1%, 16명)보다 부산과 인접한 대구시(14.6%, 33명), 경상남도(9.3%, 21명)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어 경기도 3.1%(7명), 울산시 2.7%(6명), 제주도 1.3%(3명), 강원도 0.9%(2명), 경상북도 0.9%(2명), 전라남도 0.9%(2명), 광주시 0.4%(1명), 인천시 0.4%(1명), 충청남도 0.4%(1명) 순으로 분포됐다.
분양 당시보다 가격이 급등한 엘시티는 현재 부산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다. 부동산정보업체는 엘시티 입주 2년차 현 시세를 30억~45억원으로 추산한다. 실제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등록된 46층 75평형 지난 5월 기준 거래가는 43억 원이었다. 작년 시세에서 20억 원 가까이 매매가가 올랐다.
선출직 공직자에 출마한 후보가 이런 아파트에 거주한다는 것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은 엘시티 매매 과정을 놓고 특혜·불법 시비에 휩싸였다. 당시 '흑색선전'이라고 받아친 박 시장은 "법적 문제나 비리가 없는데도 비싼 집에 산다고 비난을 받는다면 그건 정상적 자유민주주의체제라 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 시장 또한 정치인으로서 고가 부동산에 대한 '국민 감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선 소감에서 박 시장은 "서민의 정서에 맞지 않는 집에 산다는 도덕적 비판을 일정하게 수긍한다. 머지않은 시점, 적기에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수익이 남는다면 공익을 위해 쓰겠다는 발언까지 했다.
실거래가 20억 가까이↑... "엄청난 시세차익"
지난 7월부터 한 달간 전수조사를 진행한 진보당은 불평등 문제를 지적했다. 882세대 등기부등본을 직접 대조한 노정현 진보당 부산시당 위원장은 "고가의 아파트를 두 채씩 보유한 사례를 보면 투기성이 짙다고 의심된다. 외지인들이 많아 이들이 부산의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는 것이 소문이 아니었음을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으로 수십억 원씩 이득을 보는 이 현실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불평등이 더 가속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제도적 정비를 강조했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수조사 결과에 대해 "서울의 강남에서나 생기는 현상이 부산에서도 발생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전 교수는 "20억 원의 시세차익은 엄청난 돈이다. 사태가 이런데 누가 열심히 땀을 흘리고 일하려 하겠느냐. 결국 사회의 자본이 투기로 몰리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같은 불로소득이 생기지 않도록 법을 보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성현 영산대 부동산학과 교수 역시 '보유세 강화'를 언급했다. 박 교수는 "왜 투기가 계속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보유세 강화가 필요하다"라면서 "엘시티의 공시가격과 실거래가는 괴리가 크다"라고 지적했다. 국토부 부동산공시가격알리미에 따르면 엘시티의 주택공시가격은 최상층을 제외하면 14억 원~23억 원 사이다. 종합부동산세 부과는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한다.
일부 법인의 엘시티 보유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 파악한 엘시티 소유 업체는 14곳. 이들 중소 규모의 회사가 고가의 엘시티를 왜 사들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전 교수는 "최근 서울시 한남더힐의 사례처럼 중과세를 피하기 위한 편법은 없는지 정확한 조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