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야외전시장에서는 대전역 물자 수송에 투입된 6.25참전 증기기관차가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당시 증기기관차 '미카3-219호'와는 다르게 ‘미카-129호’를 전시해 놓고 있다.
야외전시장에서는 대전역 물자 수송에 투입된 6.25참전 증기기관차가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당시 증기기관차 '미카3-219호'와는 다르게 ‘미카-129호’를 전시해 놓고 있다. ⓒ 우희철
 

국립대전현충원에는 호국철도기념관이 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철도 종사자로서 당시 교통부의 비상 동원령에 따라 피란민, 병력·군수물자 수송이라는 임무로 6.25 전쟁에 참전한 분들은 약 1만9300명이며, 이 중 287명이 전사했다. 1899년 철도 개통 이래 지금까지 공무수행 중 순직한 사람만 2500여 명이다. 호국철도기념관은 철도인 영령의 넋을 추모하고 국민의 발이 되어 달려온 철도 역사를 알리기 위해 건립됐다.

야외전시장에는 6.25 참전 증기관차가 전시돼 있다. 또 분단되기 전 신의주와 부산을 오가던 3등 객차도 볼 수 있다. 신의주-부산 푯말을 보면 하루빨리 완행열차라도 타고 신의주까지 가보고 싶어진다. 호국관은 기관차 바로 뒤에 있는 객차다. 왼편에는 한국전쟁 757일간의 기록이 있고 오른편에는 대표적인 참전 영웅을 소개하고 있다. 참전 영웅의 중심은 6.25전쟁 당시 순직한 김재현 기관사다.

'명예로운 철도인'에는 박기종, 이봉창, 장철희가 소개돼 있다. 박기종은 구한말 우리 손으로 직접 철도를 건설할 것을 주장하며 한국 최초 민간철도회사인 '부하철도회사'를 창설했다. 또 '대한철도회사'도 설립했다. 삼랑진과 마산을 연결하는 삼마철도 부설권을 얻어 공사를 시도했지만 일제의 방해로 실패했다.

이봉창 열사는 용산역 철도회사에 견습생으로 시작해 시용부-역부-전철수-연결수까지 역임했다. 하지만 사직하고 상해로 건너가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나 일왕 히로히토를 겨냥해 수류탄을 투척하는 거사를 실행했다. 그는 비공개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순국했다. 장철희 이병은 철도 동호인으로 활동하다 입대 6개월 만에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숨졌다.

전시실에서는 증기기관차에서 KTX까지 시대별 열차의 속도도 볼 수 있다. 증기기관차인 해방자호는 시속 70km(1946년), 통일호는 80km, 무궁화호 85km, 새마을호 135km, KTX는 300km라고 한다. 70여 년 동안 5배 가까운 속도의 변이가 느껴진다. 단, 2021년 8월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내부 전시실은 운영되지 않는다.

참전 영웅 중심에 있는 김재현 기관사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해 북한군이 대전을 점령하자 철도원 신분으로 작전에 투입됐다. 그는 1950년 7월 20일 황남호, 현재영 기관 보조와 함께 미군을 도와 '군수 물자 후송 작전'에 참여했다.

대전의 충남도청에서 윌리엄 F. 딘 소장은 대전역에 남아 있던 보급품을 실은 화차 10량을 영동역으로 운송할 기관차를 보내라고 명령하였다. 영동역에 있던 대전운전사무소 소속 김재현 기관사, 현재영 기관보조, 황남호 부기관사가 명령에 따라 이원역에서 열차를 몰고 군수물자를 싣고자 미군과 함께 대전역으로 달렸고 다시 옥천으로 되돌아오다 세천 터널 부근에서 북한군 총탄에 피격됐다.
 
 대전역 동광장에 세워져 있는 조형물 ‘기적을 울리는 사람들’은 김재현 기관사, 황남호, 현재형 기관 보조의 6.25 당시 작전 모습을 형상화 했다.
대전역 동광장에 세워져 있는 조형물 ‘기적을 울리는 사람들’은 김재현 기관사, 황남호, 현재형 기관 보조의 6.25 당시 작전 모습을 형상화 했다. ⓒ 우희철
 
김 기관사는 전신에 여덟 발의 총탄 세례를 받고 전사했으며 현재영도 팔에 관통상을 입었다. 황남호는 기관차를 겨우 겨우 옥천역까지 끌고와 야전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았고 한 시간 뒤 도착한 병원열차로 영동으로 복귀하였다. 전사한 김재현은 영동에서 장례가 치러졌으며, 현재영은 부산 후방에 있는 병원으로 보내졌다.

1983년 김 기관사는 철도인 최초로 국립서울현충원 장교묘역에 안장됐고, 위패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다. 현 기관보조는 2010년 국립대전현충원에, 황 부기관사는 2011년 국립임실호국원에 각각 안장됐다.

하지만 수정할 부분이 있다. 호국철도기념관에는 김 기관사가 '북한군의 포로가 된 미 24사단장 딘 소장 구출 작전'에 참여한 것으로 잘못 설명돼 있다. 사망일을 하루 앞당긴 7월 19일로도 잘못 기재했다. 또 있다. 당시 작전에 투입된 증기기관차는 '미카3-219호'다. 하지만 설명문에는 '미카-129호 열차를 몰고'로 사실과 다르게 쓰여져 있다.
 
 등록문화재 제415호로 지정된 미카3-129호는 6.25가 끝나고도 1980년대까지 운행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등록문화재 제415호로 지정된 미카3-129호는 6.25가 끝나고도 1980년대까지 운행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 우희철
 
지난 2008년 등록문화재 제415호로 지정된 미카3-129호는 1940년 일본에서 제작을 시작해 조선총독부 철도국 경성공장에서 조립한 텐더식 증기 기관차로, 피격 후 김천운전사무소에서 수리를 했으며 다시 전선으로 출격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경부선 등 주요 간선에서 운행되다 1967년 8월 디젤 기관차의 등장으로 운행이 중단되었다. 1981년 10월부터 2년간 동해남부선(부산~경주) 관광열차로도 운행되었다. 배은선(2019)의 <기차가 온다>에 따르면 미카3-219호가 미카-129호로 잘못 알려진 이유는 신문 기사의 오기(誤記)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야외전시관에 전시된 미카3형 129호 기관차에 대한 설명을 '북한군의 포로로 잡혀 있던 윌리엄 딘 소장 구출 작전에 투여된 기관차'라는 설명도 사실과 다르다. 김재현 기관사의 사망일을 19일에서 20일로, 작전 목적은 '딘 소장 구출'에서 '화물열차 후송'으로, 투입된 기관차는 '미카3-219호'로 정정이 필요하다.
 
 미카형 증기기관차 129호 앞에 있는 설명문에서는 딘 소장 구출을 위해 적진으로 돌진했다고 쓰여져 있다. 하지만 ‘딘 소장 구출’을 위해서가 아니라 ‘화물열차 후송’을 위해 적진으로 돌진했고, 그 열차의 기종도 ‘미카3-129호’가 아니라 ‘미카3-219’다.
미카형 증기기관차 129호 앞에 있는 설명문에서는 딘 소장 구출을 위해 적진으로 돌진했다고 쓰여져 있다. 하지만 ‘딘 소장 구출’을 위해서가 아니라 ‘화물열차 후송’을 위해 적진으로 돌진했고, 그 열차의 기종도 ‘미카3-129호’가 아니라 ‘미카3-219’다. ⓒ 우희철
 
김 기관사 순직과 미카3-129호 관련 조형물로는 기관사 김재현 순직비(1962년)가 세천터널 인근에 있고, 대전현충원 호국철도기념관(2013년)이 세워져 있다. 대전역 동광장에는 '기적을 울리는 사람들' 동상(2015년)이 있으며, 서울현충원 유품전시관(2015년)에는 김 기관사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대전 역전지하상가 앞(목척교 인근) 열차 모형(2018년)과 대전시 동구청 1층 로비 '카페 천사의 손길' 미카-3형 기관차(2019)를 형상화해 놓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미디어마당 사회적협동조합 누리집에도 실렸습니다.


대전에서 활동하는 시민미디어마당 협동조합입니다.
#국립대전현충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