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명.
25일 오전 최종문 외교부 제2차관의 발표를 보고 기자들은 귀를 의심했다. 분명 전날까지만 해도 외교부는 이송 가능한 아프간 현지인들의 숫자가 두 자리수라고 확인해줬기 때문이다.
외신을 통해 잘 알려졌지만, 카불공항까지 이르는 도중에 있을 수 있는 탈레반의 삼엄한 검문과 아프간을 탈출하기 위한 비행기를 타려는 군중들의 아비규환을 볼 때 정부의 이송 작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됐다.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이송 성공률이 거의 100%에 가깝다며 감격스러워 했다.
당초 외교부가 국내로 이송해야 할 현지인 목록으로 올린 것은 모두 427명. 부모의 만류 및 본인 사정으로 국내 잔류를 결정한 36명을 제외한 전원이 들어오는 것이다. 이들중에는 이달에 태어난 신생아 3명을 비롯해 5세 이하 영유아 100여명이 포함돼있다.
자력으로 공항에 진입해있던 26명은 이미 지난 23일 인근국인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공항으로 이송됐고, 나머지도 오늘 중으로 카불 공항을 떠날 것으로 보인다.
시내 두 곳에 모두 집결시킨 뒤 버스로 공항까지
이들은 어떻게 무사히 아프가니스탄을 빠져나올 수 있었을까. 미국 측이 고안한 '버스모델'이 결정적이었다고 외교부 당국자는 설명했다.
탈레반의 갑작스런 카불 점령으로 혼란에 빠진 가운데,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18일부터 이틀 간격으로 20개국 외교차관 회의를 열어 현지인 이송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먼저 군용기를 이용해 이송작전에 나섰던 독일이 10명 미만의 현지인만 데려올 수 있었고 벨기에는 아예 한 명도 성공하지 못한 사실이 알려지자 회의 참석자들의 분위기는 절망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력으로 탈레반의 삼엄한 검문과 게이트의 1~2만 군중들을 뚫고 공항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 측이 제의한 것이 '버스모델'이었다. 즉, 미군이 거래하는 버스 회사들과 협상해서 한국과 영국 등 우방국들이 사용하도록 연락처를 나눠줬다. 수요가 많아 힘들었지만 작전을 위해 카불 공항에 다시 들어가 있었던 주아프간 대사관 선발대가 6대의 버스를 확보했다.
선발대들은 이송 대상자들에게 이메일 등으로 연락했고, 25일 새벽 카불 시내 두 군데에 집결하도록 한 다음, 버스를 이용해 공항에 진입하는 데 극적으로 성공했다.
물론 미군 측과 탈레반이 벌였던 모종의 사전 협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또한 이 당국자는 우리와 함께 일했던 현지인들의 연락망이 탄탄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대사관 직원이 정점이 돼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직업훈련소, 차리카기지 등 직원들이 정확히 정해진 장소에 집결해 무사히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측이 제안한 버스모델을 이용해서 현지인 이송에 성공한 것은 아마 한국이 처음일 것"이라며 "내일 있을 20개국 차관회의에서 보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결코 친구들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인식 확산 계기"
한편 이번 이송작전에 동원된 군용기는 KC330 공중급유기와 C130J 수송기 등 모두 3대로, 지난 23일 현지 도착 후 카불공항과 이슬라마바드공항을 오가며 현지인들을 실어날랐다. 국방부 관계자는 승무원, 의료진 등 약 60~70명의 인력이 동승했다고 말했다.
현지인들을 태운 마지막 수송기는 오늘 저녁 카불공항을 떠나 이슬라마바드공항에 도착, 미리 와있던 26명과 합류한 뒤 다시 2대의 수송기에 나눠타고 26일 오전과 오후 각각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손문준 전 바그람 한국병원 원장은 "오랫동안 병원일을 같이 했던 현지인들이 우리 방식에 익숙해져 이송작전도 잘 이뤄진 것 같다"며 기뻐했다.
공덕수 전 바그람 직업훈련원 원장도 "근래 바그람의 한국병원과 직업훈련원 건물이 탈레반에 의해 폭파된 것을 볼 때, 우리와 같이 일했던 현지인들을 그냥 두면 처형되는 게 거의 확실하다"며 "이번 이송작전이 한국은 결코 친구들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신의와 의지를 국제사회에 인식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난민은 스스로 우리 땅에 들어와 신청해야 하는데, 이번 경우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찾아가 난민들을 데려온 것"이라며 "대한민국 외교에서 이런 사례는 처음이며 그 정도로 인도적 측면을 고려하는 나라로 성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인터넷 댓글을 보니 아직 외국 난민을 받는데 저항이 꽤 있더라"며 "그래도 많은 국민들이 우리가 도움을 받았지만 지금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동료'를 데려오는 것은 당연하다는 의견도 많아 우리나라가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음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입국 후 방역절차를 마친 뒤 충북 진천의 인재개발원에 수용돼 14일의 격리생활에 들어간다. 이 당국자는 이들이 난민이 아니라 아프간 재건에 기여한 자라는 의미의 '특별공로자' 신분으로 들어온다고 말했다. 국내 정착여부, 취업, 교육 등 앞으로의 문제는 법무부, 교육부, 고용노동부 등이 참가하는 범정부TF가 논의해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