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 유물인 '미국인의 북한 여행금지' 조치를 바이든 정부 국무부가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2022년 8월 31일까지 북한여행이 금지되자 재미동포들과 미국내 대북 인도주의 지원단체, 비영리 단체들은 정부에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해제를 촉구하고 나섰다(관련 기사:
"심각한 위험" 미 바이든 행정부도 북한 여행금지).
북한 여행금지조치를 해제하기 위한 미 전국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리프트(Let Individuals Freely Travel, LIFT)' 관계자들은 미국 행정부의 북한 여행금지 조치는 기본적으로 미국인과 민간단체들이 추진하는 이산가족 상봉, 인도적 지원, 민간인 교류 및 평화 구축 노력을 계속 가로막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17년 9월 1일 부터 트럼프 미 행정부가 시행한 북한 여행금지조치는 미국 시민이 북한을 방문하거나 통과 혹은 경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리프트 관계자에 따르면 "자국민의 북한 여행을 금지하는 나라는 한국 외 미국 뿐"이며 "북한 외 다른 어떤 나라도 미국의 유사한 여행금지 대상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최근 미 국무부 발표에 따르면 미국인이 북한을 방문하거나 경유하는 경우, 미국 여권의 효력이 상실된다. 그 결과, 북한에 가족이 있는 재미동포들의 북한 가족 방문은 모두 차단됐고, 인도적 지원 단체들의 활동이 상당히 제한됐으며, 미국내 시민사회 단체들의 평화와 이해를 증진하는 민간인 교류도 모두 차단돼 있는 상태이다.
"바이든 정부의 결정, 북한에 가족 있는 재미동포들에겐 비극"
노스웨스턴대학의 역사학교수이자 리프트(LIFT) 캠페인의 공동 코디네이터인 여지연 박사는 여행금지 유지 결정에 "매우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의 결정은 재미동포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고, 긴급한 인도적 지원이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되지 않으며, 평화 구축 노력과 민간 교류가 차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필요할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크게 해가 되는 트럼프시대 정책을 유지하기로 바이든 행정부가 선택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시카고 거주 이산가족 임춘성씨는 2017년 여행금지 조치가 발효된 이후 북한에 있는 가족을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는 이번 조치 뒤 "나의 형제, 자매, 사촌들과 이모가 모두 북한에 있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만 방문할 수 없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는 폐암에 걸린 사촌과 결핵에 걸린 사촌에 대해 늘 걱정이 되고 살아있는지 궁금하다며 "올해 내 나이가 75세이다. 이 생이 몇 년 더 남았는지 모른다. 하루빨리 그들을 다시 보고 싶다"라고 호소했다.
리프트 캠페인과 여성평화단체인 '위민크로스DMZ(Women Cross DMZ)'의 정책 담당자인 이현정씨는 "바이든 행정부는 재미동포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외면했다"고 지적하며 "6. 25 전쟁으로 인해 70년 동안 헤어져 있던 수많은 재미동포들과 북한에 있는 그들의 가족들이 서로 만날 수 없는 것은 비극이다"라고 말했다.
북한 아동의 건강을 위해 활동하는 국제 인도주의 단체 '이그니스 커뮤니티(Ignis Community)' 설립자인 조이 윤씨는 "정부가 여행 금지를 해제해야, 북한 주민들에게 미국인들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인도주의 사업을 수행할 수 있다" 고 주장했다.
현재 여행금지 조치는 인도적 지원 활동가와 미국의 "국익"을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이 특별승인여권(Special Validation Passport)을 신청할 수 있게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윤씨는 이 절차가 힘들고 시간 소모적이며, 잦은 신청 거부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청하는 것조차 포기하고는 한다고 지적했다.
하버드 의대 교수이자 재미한인의사협회(KAMA) 북한담당국장인 박기범 박사는 "외부로부터 긴급한 의료지원이 필요한 북한 주민들에게는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상황이기에 여행금지 해제 문제는 시급하다"고 밝혔다.
북한, 긴급 의료지원 필요... "시민사회의 평화 구축 노력 중단돼"
위민크로스DMZ(Women Cross DMZ)의 크리스틴 안 사무총장은 "북한 여행금지의 가장 불행한 결과 중 하나는 시민사회의 평화 구축 노력이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2015년에 여행금지조치가 내려졌었다면 비무장지대를 넘어 남북한 여성들과 만났던 2015년 5월 우리의 역사적 행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장벽을 허물고 신뢰를 구축하고, 이해를 증진하는 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리프트(LIFT)캠페인 관계자들은 지난 8월 2일 블링컨 미 국무부장관에게
서한(링크)을 보냈고, 8월 중순에는 바이든 미 행정부 관리들과 만나 여행금지 해제를 요구했다. 리프트(LIFT) 측은 이번 미 국무부의 연장 결정이 큰 실망감을 가져다 주었다며, 계속해서 바이든 미 행정부에게 즉각적인 전면 해제를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리프트(LIFT)캠페인은 한반도평화네트워크(Korea Peace Network, KPN), 코리아피스나우 풀뿌리네트워크 (Korea Peace Now Grassroots Network, KPNGN),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해외동포연대(Peace Treaty Now, PTN) 등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미 전국 연대체들(코리아 피스 파트너십)이 벌이는 공동 캠페인이다.
한반도 평화법안 초당적 지지 얻어
한편, 한국전쟁 종식과 평화협정을 촉구하는 '한반도 평화법안'(H.R.3446)이 초당적 지지를 얻었다.
한반도 평화를 지지하는 미국의 전국연합운동단체들과 풀뿌리 활동가들로 구성된 대규모 네트워크인 코리아 피스나우(Korea Peace Now Grassroots Network)에 따르면 애리조나 앤디 빅스(Andy Biggs, 공화) 연방하원의원이 H.R.3446 법안 공동발의자에 이름을 올렸다.
H.R.3446은 브래드 셔먼(Brad Sherman), 로 칸나, 앤디 김, 그레이스 맹 의원이 지난 5월 20일에 공동발의한 법안으로 한반도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 이산가족들을 위해 방북 금지 검토, 북미연락사무소 설치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압박과 긴장이 아닌 강한 외교와 평화를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하원의 촉구가 담겨있는 법안으로 풀이된다.
앤디 빅스 의원 외에도 그 외에도 최근 추이 가르시아(일리노이, 민주), 드와이트 에반스(펜실베이니아, 민주), 바바라 리(캘리포니아, 민주), 앨런 로웬탈(캘리포니아, 민주), 제임스 멕거번(매사추세츠, 민주) 의원이 추가됐다. 이는 지난 7월 12일부터 16일 동안 진행된 유권자들의 로비주간 이후 유권자들의 꾸준한 후속조치의 성과이다. 풀뿌리 운동과 한반도 평화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행동이 하원 공동지지자들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맥거번 의원 지역구 유권자인 이정희씨는 "한인유권자들의 참여가 지속돼야 한다. 이번 법안은 바이든 정권이 북미 싱가포르 합의를 지지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있고, 북한과 군사적 대결을 피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이루기 위해 이렇게 구체적인 법안이 나온 적은 없다. 유권자들의 행동으로 공동지지자를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추이 가르시아 의원 지역구 유권자인 더그 애스버리(Doug Asbury)씨는 "아프간이 미국의 가장 오래된 전쟁이 아니라 한반도 전쟁이 가장 오래된 전쟁이다. 일반 미국인들도 한반도 전쟁이 다시 일어나길 원하지 않는다. 71년 전쟁을 평화협정으로 끝내야 전쟁의 위협이 사라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해당 주간 총 31개 주 167개의 하원, 상원 의원실과 온라인 면담이 이루어졌다.
성 김 대북특별대사의 방한에도 북한의 반응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그에 더해 미 국무부의 북한여행금지 조치가 연장된 현실에서 북미관계 진전은 불확실하지만, 미국 의회와 시민들의 전쟁종식과 평화협정 법안에 대한 지지는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