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권위가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조사-발표한 '온라인 혐오표현 인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 이상이 '코로나19 이후 혐오와 차별이 증가했다'고 답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지 1년 8개월여, 오마이뉴스는 '일상의 혐오'를 통해 불과 몇 년 사이 우리 삶에 깊숙이 파고든 '혐오'의 맨얼굴을 시민기자들의 경험담을 통해 마주하고자 합니다. 다른 시민기자들의 글도 적극 환영합니다.[편집자말] |
"늙으면 죽어야지... 이렇게 눈치가 없었으니 말이야."
얼마 전 대중을 상대로 한 모임에 참석했던 김춘석(85·남·가명)씨는 그곳에서 경험한 일을 잊을 수 없다며 자조하듯 말을 이어갔다. 그날 춘석씨는 빈자리를 확인하고 그곳에 앉았다.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춘석씨는 누군가 자신이 앉은 자리를 맡아둔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여기 주인이 있어요?"라고 물었지만, 30대로 보이던 그 사람은 아무 대답 없이 자리를 떠났다.
이후 자신의 옆 자리가 비어 있는데도 젊은 사람들이 앉지 않고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춘석씨가 가까이 서 있는 사람을 보고 손짓으로 자리가 비었다고 했지만, 그는 인상을 구기며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한쪽에 다리가 아픈지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는 사람이 있기에 조심스럽게 "여기 자리 있으니 앉아요"라고 말했지만, 그 역시 아무런 대꾸 없이 자리를 떠났다.
춘석씨는 생각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내 몸에 무엇이 묻었나?' 그는 자신의 몸을 샅샅이 살폈지만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모임이 끝난 뒤 참석한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그때도 춘석씨는 알 수 없는 기류에 민망함을 느꼈다고 했다.
"커피를 마시러 몇몇 사람과 같이 갔는데, 카페에서도 내 옆자리에 앉질 않더라고. 말도 걸지 않고... 멀거니 있다가 나왔어."
춘석씨는 스스로 물었다. 왜 사람들이 나를 피하고, 말도 걸지 않는 것일까?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그가 모임에서 있었던 일을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옷차림이 깨끗하고 반듯해야 해. 그렇게 해도 사람들이 끼워 줄까 말까 하는데... 너의 행색을 보라고"라는 말이 돌아왔다. 군데군데 긁혀 가죽이 일어난 구두엔 뽀얀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고 윗옷으로 걸친 남방엔 주름살처럼 곳곳에 구김이 가 있었으며 바지는 색이 바래 있었다.
"그런 행색이니 사람들이 피하는 거야."
'노인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옷차림부터 바꿔야 한다는 말이었다. 춘석씨는 그제야 그날의 경험이 어떤 의미였는지 이해가 됐다. 반지하 단칸방에서 혼자 사는 춘석씨는 그 후로 밥은 굶어도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향수는 사서 뿌리고 다닌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여전히 춘석씨 옆에 오지 않는다.
'노인은 지저분하다', '위생관념이 없다'라는 편견
조운행(82·남·가명)씨는 자신에게 후원금을 전달하는 사람과 식사를 함께할 때마다 이상함을 느꼈다.
"내가 먹는 반찬에는 손도 안 대는 거야. 먹다가도 내 손이 가면 반찬을 일체 안 먹더라고. 식당에 가면 늘 반찬을 두 벌을 달라고 하고. 식당 주인이 둘이 와서 반찬을 두 벌 달라고 하면 어떡하냐고 하면, 어쩔 수 없이 한 벌 갖고 먹는데 밥과 국에만 손 대더라고. 앉아 있을 때도 꼭 마주보지 않고 대각선으로 앉아. 코로나19 전부터 그랬어. 그때 알았어. 나랑 같이 밥 먹는 걸 싫어하는구나. 더럽다고 전염시킨다고 생각하는구나. 내가 밥과 반찬을 흘리면서 먹는 것도 아닌데, 왜 멀리하는지 모르겠어."
운행씨는 후원자가 '노인은 지저분하다', '위생관념이 없다' 등의 편견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를 서운하게 하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데, 자기 생각과 다르면 괜히 짜증을 내. 내가 잘 몰라서 하는 말이라며 자신 이야길 따르라고만 하고 말야. '눈가에 눈물 닦아요', '입가에 침 고였어요'하면서 날카롭게 쏘아붙이는데 모멸감이 들었어. 나이 들면 눈가에 눈물이 고이고, 입가에 마른 침이 생기는 게 흉인가? 손수건 가지고 다니면서 늘 조심하려고 닦는데 말이야."
김복순(78·여·가명)씨 또한 노인이란 이유로 지하철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복순씨가 탄 지하철 객차 안에서 젊은 사람과 노인 사이에 시비가 붙었는데, 이내 언성이 높아지더니 욕설이 섞인 말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일이 커질 것을 우려한 김복순씨는 노인 팔을 붙잡은 뒤 "어르신이 참아요. 그냥 그러려니 해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젊은 사람이 복순씨에게 "뭐라고? 어르신이 참으라고 그냥 그러려니 하라고? 누가 잘못 했는데... 나이 먹었으면 나잇값 해야지. 그러니까 늙은이들을 싫어하는 거야 돈만 축내는..."이라며 소리를 치는 것이 아닌가. 복순씨는 단순히 상황을 정리하려고 한 것뿐인데 느닷없이 공격을 당했다. 당황스런 일을 겪은 그는 앞으론 어떤 일이 생겨도, 내 눈 앞에서 다툼이 일어나도 나서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복지관 이용을 못하게 된 이정례(75·여·가명)씨는 온라인으로 대체된 프로그램을 듣고 싶어 자녀에게 스마트폰 사용 방법을 물었다가 "어머니, 몇 번씩 알려줘야 해요. 되지도 않는 온라인 프로그램에 접속하려고 해요. 그냥 쥐 죽은 듯이 조용히 계세요. 코로나예요"라는 면박만 받았다.
춘석씨와 운행씨, 복순씨, 정례씨는 자신의 행동에 잘못이 있었다면 사람들이 피하는 걸 이해할 텐데, 어떤 이유도 없이 단지 노인이기 때문에 격리 대상이 된 것 같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온·오프라인 할 것 없이 만연한 '노인 혐오'
네 사람의 경험처럼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는 오프라인에서의 노인 혐오도 문제지만, 인터넷 등 온라인 속 노인 혐오는 그 수위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4월 정부청사에서 열린 '제4차 연령통합 세대연대 정책포럼'에 참석한 김주현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차별이 OECD 15개 나라 중 두 번째로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틀니를 끼는 노인들을 지칭한 틀X이나 크게 말하는 할머니들을 비하하는 의미로 쓰이는 할XX 등의 혐오 단어는 인터넷 상에서 공공연하게 쓰이고 있다. 당장 노인 관련 뉴스에 달리는 댓글만 봐도 온라인상 노인 혐오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알 수 있다.
최근 한 유튜브 채널에 86세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영상이 올라왔다. 운전자가 경찰 조사에서 급발진을 주장하는 등 사고 경위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관련 기사 댓글에는 "저게 노망이지 급발진이냐", "86세면 중앙선이 아니라 요단강을 건너도 안 이상할 나이인데...", "나이만 들어봐도 욕 나오네" 등의 노인 혐오·비하 댓글이 적지 않게 달렸다.
인터뷰 말미 춘석씨는 "젊은 사람들이 우리 때와는 달리 취업이 힘들고, 먹고사는 문제가 힘드니까 화가 날만도 하지"라고 이해하면서도 "그 화를 힘없는 노인에게 쏟아부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라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서 일어나는 노인 혐오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최근 우리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린 '60대 할머니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고 때린 10대' 사건 같은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질지도 모른다. 혐오는 혐오를 낳고, 반복될수록 그 강도 또한 세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