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엄마와 산 지 4년, 서로 늙어감을 이해하게 된 엄마와 딸의 이야기. 그리고 비혼인 50대 여성의 노년 준비를 씁니다.[기자말] |
나의 하루는 아침 6시 10분쯤 시작된다. 전날 몇 시에 잤는지와 상관이 없다. 아침 6시 10분은 올해 83세인 엄마가 아침 운동을 나가는 시간이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오늘 하루가 시작됐구나 하며 기지개를 편다. 그리고 정확히 20분 후, 나는 반려견과 함께 엄마가 운동하는 작은 공원으로 향한다. 이게 엄마와 나, 반려견이 사는 집의 아침 루틴이다.
다행히 엄마는 자기 관리를 잘하시는 편이다.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규칙적으로 식사를 한다. 식사양도 과식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덕분에 엄마는 아직까지는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 편이다.
엄마와 비혼인 내가 같이 산 지는 4년 정도 됐다. 나름 자기 관리를 잘 하신다 해도 엄마의 몸과 마음은 가속도가 붙어서 약해진다. 일년이 다르다. 내가 말하는 소리를 예년보다 더 못 들으시고, 작년에는 같이 걸어갔던 올림픽공원을 올해는 힘들어서 가질 못하신다. TV에서 나오는 말이나 자막을 놓쳐서 혼자 다르게 이해하시는 건 기본이다. 몸과 마음이 점점 약해지신다는 걸 같이 사는 내가 실감할 정도니 얼마나 늙어가는 속도가 빠른 건가.
그래서 들어왔다. 더 이상 엄마 혼자 살게 하실 수 없어서. 그렇더라도 내가 엄마를 보살핀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엄마가 나를 보살피는 존재라는 구조가 워낙 단단했던 탓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견고했던 틀은 갈라지기 시작했고, 내가 해야 할 영역은 빠르게 늘어났다.
약탕기 사용법을 스무 번쯤 알려드리고
얼마 전 엄마가 상황버섯을 달여 마시겠다고 해서 약탕기와 상황버섯을 샀다. 내가 집에 있을 때는 달여드렸는데, 엄마가 직접 약탕기를 돌려보겠다고 하셔서 사용하는 방법을 설명해 드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이후로 설명의 블랙홀에 빠져버렸다. 지금까지 똑같은 설명을 적어도 스무 번은 한 것 같다. 본인도 무안하신지, "들어도 까먹네. 그래도 자꾸 해봐야 기억을 하지" 하는데, 어떤 때는 짜증 섞인 말이 입에서 제동장치 없이 튀어 나가 버린다.
"음마... 내가 몇 번을 설명했어."
말이 나가는 순간, 말이 곱지 않다는 걸 감지하고는 얼른 친절 모드로 설명해드리지만, 마음속에서는 또 다른 자아가 아우성이다.
'아니. 이 쉬운 걸 왜 몰라?'
답답함과 연민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마음을 다잡아 주는 소리가 치고 올라온다.
'이런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어. 있을 때 잘해.'
그나마 내가 오후에 출근하는 프리랜서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아침과 점심을 챙겨서 같이 먹을 수 있고,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할 때 여유 있게 갈 수 있으니 말이다.
엄마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드는데도, 엄마가 두려운 건 딱 하나다. 자식들한테 짐이 되는 것. 이제 충분히 나한테 기대도 되는데, 아직까지 엄마는 자식들을 보살피고 싶은 마음이 식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면 내가 엄마가 안심하고 기대도 될 만큼 미더운 자식이 아니던지.
어떻든 현실은 이제 내가 엄마의 보호자라는 사실이다. 내 할 일이 점점 많아지면서 갱년기를 지나고 있는 몸이 여기저기 아플 땐 힘에 부치다가도, 솔직히 말해서 엄마가 치매가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하곤 한다. 그렇게 되면 나 혼자 엄마를 돌보면서 사회 생활을 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지금의 상황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더 나아가 혼자 사는 나의 노후를 생각하면 더 그렇다.
늙는 것은 죄가 아니다
얼마 전 송파구에서 치매 노인센터가 무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나 상황에 대해 이해가 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는 의견에도 동의한다. 그러면서도 이런 시설들이 주민들의 반대에 종종 부딪혔던 사실이 기억나서 쓸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2주 전에는 송파구에서 80대 남편이 치매를 앓던 부인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가 있었다. 아픈 가족을 돌보면서 경제적 활동도 못하게 되고 심리적으로도 불안해지다 보니이런 간병 살인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간병을 하려면 경제활동을 그만두거나, 질 좋은 돌봄 서비스를 받으려면 그만큼 돈이 많이 들어서 경제적인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리고 뉴스는 남의 일처럼만 느껴지지 않는다. 그 현실은 점점 나에게도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다. 2025년에는 고령화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다고 하던데, 이제 돌봄은 남의 일만은 아니다. 곧 나의 미래이기도 하다.
우리 엄마의 노화 속도만큼은 아니지만 늙어가고 있음을 날마다 일깨워주는 몸과 기억력의 삐걱거림이 '너도 멀지 않았다'라는 경고음을 시시때때로 내보내고 있다. 그래서 엄마가 좀 더 젊을 때, 이런 미래를 미리 생각하지 못했던 점, 나의 젊음이 계속될 것처럼 오만했던 점, 엄마도 늙고 나도 나이 들어가는 현실을 이제야 마주하며 후회하고 반성한다.
그러면서 갖게 된 생각 하나. 늙는 것이 죄가 되고 짐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 문득 어느 가수의 노래 제목이 생각난다.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