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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얼굴을 밝히며 제가 겪은 일을 국회까지 가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어요. 업계에 소문이 나 이직이 어려워지는 건 물론이고 회사에 있어도 저를 부담스러워 할 테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말해야겠더라고요. 제가 겪은 일은 회사 내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IT업계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지난 6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는 게임업체 스마일게이트 자회사 '스마일게이트 스토브'의 직원 A(40대)씨가 일반증인으로 참석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회사에선 업무 성과 평가를 빙자해 부당한 퇴사 압박이 횡행하고 있다"라며 "이런 방식의 직장 내 괴롭힘은 여러 사람에게 수년간 지속된 수법이고, IT업계 전체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당초 이날 스마일게이트 스토브와 관련한 일반증인에는 B(40대)씨도 있었다. 그 역시 회사의 부당한 업무평가와 직장 내 괴롭힘을 폭로할 예정이었지만 국회가 코로나를 이유로 1명만 참석할 것을 권고했고, 결국 B씨의 증언은 불발됐다. 

A씨와 B씨는 국감 다음 날인 7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스마일게이트 스토브를 비롯해 IT 업계의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D등급 받았는데, 객관적 근거가 없었다"
 
 게임업체 스마일게이트 스토브
게임업체 스마일게이트 스토브 ⓒ 스마일게이트 스토브 홈페이지 갈무리
 
"IT 업계는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바로 다른 프로젝트가 이어지며 쉴 새 없이 일이 진행되는 곳이에요. 또 프로젝트마다 분명한 성과를 내야 합니다. 문제는 업무 성과나 평가 근거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A씨)

B씨는 "스마일게이트 스토브도 그랬다. 올해 초 업무평가에서 최하위인 D등급을 받았는데, 평가의 객관적인 근거가 없었다"라면서 "평가 결과서에는 '연차·직급 대비 (결과의) 품질이 낮다'는 문구만 적혀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D를 받으면 불이익이 상당한데, 연봉이 동결되고 승진이 미뤄지며 성과급도 없다"라며 "올해 스마일게이트의 몇몇 게임이 흥행해 직원 임금을 800만 원 일괄 인상했지만, D를 받은 사람은 제외됐다"라고 덧붙였다. 

D등급은 스마일게이트 그룹 2300여 명 중 한 해 10명 미만의 인원이 받는 드문 점수지만, 10여 명이 일하는 A·B씨 팀에서는 두 명이 한꺼번에 D등급을 받았다. B씨는 이를 퇴사 권고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지난 6일 국감장에서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B씨가 담당 임원에게 평가의 의미를 묻자 해당임원은 "(퇴사) 권고의 의미도 있고, 사람들(평가자들)이 너를 싫어한다는 의미도 있다"라고 답했다. 

A씨 역시 "10여 년째 스마일게이트 스토브에서 일했지만, D등급은 처음이었다"라면서 "면담을 요청해 임원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평가자들이 나를 싫어하니 말을 예쁘게 잘하라고 했다. 내 실력이 아닌 말투와 태도를 문제 삼은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A·B씨는 3월 회사에 재평가를 요구했다. A씨는 "회사는 공정하게 재평가를 하겠다고 했지만, 이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재평가 과정에서 회사에서 제 작업물이라고 평가대상에 넣은 것 중에 제가 하지 않은 작업이 있었어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2020년 결과물에 대해 평가해야 하는데, 2019년에 제가 작업한 걸 끼워 넣었더라고요. 이를 발견하고 항의했더니 회사는 단순 실수라고 설명하는데, 어떻게 그 말을 믿겠습니까."

A씨가 문제제기를 하자 스마일게이트 스토브는 회사외부의 직무전문가 자문위원회에 업무평가를 맡겼고, 지난 9월 8일 'D등급 부여에 부적합한 요인이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라면서 'C등급으로 조정됐다'고 A·B씨에게 최종 통보했다. 

"동료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주요 업무에서 배제"

A씨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라면서 "재평가와 별개로 직장 내 괴롭힘도 있었다. 야근을 하고 있었더니 한 상사가 삿대질을 하며, 일을 못하니 야근을 한다고 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지적과 괴롭힘이 지속됐다. 해당 상사는 동료들 사이를 이간질 하고 나를 주요 업무에서 배제했다"라고 토로했다. 결국 A· B씨는 이와 관련한 내용을 지난 9월 28일 스마일게이트 내 윤리경영실에 신고했다. 

A·B씨의 폭로 후 IT업계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업계 전반의 업무 평가기준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판교 IT사업장의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에 "IT기업이 성과 평가 근거·기준을 피평가자에 공개하고 평가와 연동되지 않는 복지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IT업계 전반에서 벌어지는 ▲합리적 이유 없이 과도한 실적을 요구하며 업무를 압박하는 행위 ▲객관적 평가 기준 없이 평가, 인센티브, 스톡옵션을 차별적으로 지급하는 행위 ▲합리적 기준 없이 정규직화를 조건으로 경쟁을 종용하는 행위 등을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유형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도 IT업계의 심각한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며 7일 근로자 300인 이상을 두고 있는 200여 곳을 대상으로 11월 중 노동관계법 위반을 비롯해 직장 내 괴롭힘 등 기획형 근로감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한편 스마일게이트 관계자는 A·B씨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와 관련해 "보다 엄정하고 객관적으로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재평가 과정에서 A·B씨의 작업물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올해 처음 직무전문가 자문위원회를 실시하다 보니 다소 절차상 실수가 있었다"라고 해명했다.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녹취록을 비롯해 해당 임원의 문제 발언에 대해서 이 관계자는 "앞뒤 맥락 없이 녹취록이 공개돼 일부 오해가 있다"라면서 "해당 임원은 앞으로 잘해보자는 말도 했다"라고 부연했다.

#스마일게이트 스토브#IT업계#직장 내 괴롭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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