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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불신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권력으로의 편향된 시각과 부당한 공권력으로부터 진실의 편에 서지 않은 언론의 과거가 큰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합니다. 국가폭력피해자들의 과거를 통해 우리 사회의 언론이 진실을 추구하고 공정한 보도를 위해 노력했는지 돌아보고자 합니다.[편집자말]
1983년 10월 13일 주요 일간지에는 4개망 간첩 16명을 검거했다는 국군보안사령부의 발표가 실렸다. 이들은 해외 실업가나 유학생 등을 포함하고 있다. 언론의 이 같은 발표는 마치 간첩 4개망이 함께 연계되어 암약, 활약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1983. 10. 19 경향신문 1면. '4개망 16명 검거'라는 간첩단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1983. 10. 19 경향신문 1면. '4개망 16명 검거'라는 간첩단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 경향신문
 
보안사 발표 간첩 4개망 16명 검거
12명 구속 4명 불구속 송치
재일동포 실업가 위장 침투
지하망 조직 사회 혼란획책
조총련을 남조선 혁명 공격부대로 활성화
국군보안사령부는 19일 재일동포 실업가를 가장, 국내에 침투해 지하망을 조직하고 사회혼란을 획책하던 서성수(32. 일본 고베시 거주) 등 4개 간첩망 16명을 검거, 이 가운데 12명을 구속하고 윤경생 등 방조자 4명을 불구속 송치했다.(중략)
국군보안사령부는 이날 "최근 북괴는 우리의 국제적 지위 신장에 초조한 나머지 해외동포를 가장한 대남공작원의 대량침투를 획책하고 있다"고 지적, 국민들이 대공경각심을 거듭 가다듬어줄 것을 당부했다.
- 경향신문 1983. 10. 19 1면
 
 1983. 10. 19 동아일보 1면
1983. 10. 19 동아일보 1면 ⓒ 동아일보
 
북괴간첩 4개망 16명 검거
보안사 발표 "재일실업가 등 위장" 12명 구속
- 동아일보 1983. 10. 19 1면

각 언론사는 이 사건의 내용을 전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 사건을 통해 한국사회가 확고한 대공안보 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식의 의미를 사설로 풀어놓았다. 이 사설에서는 '시멘트 전술', '갓끈 전술' 같은 말을 동원해 북한의 전략전술이 해외를 통한 폭력전술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1983. 10. 19 동아일보 6면. 이 사건에 대해 동아일보는 해외공작 구축에 혈안된 북한에 적극 대응해야한다는 안보 논리를 주장했다.
1983. 10. 19 동아일보 6면. 이 사건에 대해 동아일보는 해외공작 구축에 혈안된 북한에 적극 대응해야한다는 안보 논리를 주장했다. ⓒ 동아일보
 
해외공작 기지 구축에 혈안 – 4개 간첩망 검거를 계기로 본 북괴 동향
4개 간첩망 검거를 계기로 본 북괴동향
'시멘트 전술', '갓끈전술'로 대남 우회침투 강화
홍콩 등 동남아에 조직망
국군보안사령부는 19일 이번 간첩사건 발표와 관련, 북괴는 남한 내의 반정부 성향자를 규합, 통일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이른바 '시멘트전술'이란 것을 시행하고 있고, 해외공작기지의 신설을 확대, 북미 '캐나다' 등지에 제2의 조총련을 신설, 공작기지화하고 있으며 현 정권전복을 위해 제3국을 통한 침투를 강화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보안사는 또 북괴는 최근 '갓끈전술'이란 것을 시행, 해외공작활동을 강화, 제3국을 통한 우회침투공작을 적극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동아일보 1983. 10. 19 6면
 
 1983. 10. 20 조선일보 11면
1983. 10. 20 조선일보 11면 ⓒ 조선일보
 
대남 우회침투 기도 강화
 4개망 간첩단 검거로 본 '시멘트-갓끈' 전술
유학상담실 차려 마수뻗쳐
일본 발판...간부급 남파로 세력규합
군사기밀, 지하철 건설 등 정보 탐지
- 조선일보 1983. 10. 20 6면

일 유학·취업 미끼 포섭올가미
검거된 간첩망 재일 '공작원 학원'서 세뇌교육
- 경향신문 1983. 10. 19 11면

언론은 이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내용, 특히 간첩단 사건 직전 해외 등지에서 일어난 대통령 위해 사건 등을 거론하며 위 사건을 일련의 정권 위해사건과 연관지어 설명했다. 마치 이 사건의 피의자들이 위 사건과 같은 성질의 공작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처럼 연관지어 보도한 것이다.
 
 1983. 10. 19 경향신문 2면 기사.
1983. 10. 19 경향신문 2면 기사. ⓒ 경향신문
 
4개 간첩단 일망타진과 대공경각심
간첩의 침투수법도 종래 무장간첩의 직접 남파방식에서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 제3국을 거점으로 한 우회침투의 혼용방식을 쓰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북괴 집단은 제5공화국의 국력신장과 국제적 영향력 증대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대남 폭력 혁명의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캐나다경찰에 의해 적발된 전두환 대통령 위해음모사건과 아웅산테러사건, 그리고 지난달 대구 미문화원폭파기도 사건 등이 이를 실증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사실은 북괴가 대한민국의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적화야욕을 앞당길 목적 아래 국제사회의 지탄을 무릅쓰면서까지 여하한 비인도적 만행도 서슴지않는 폭력방식으로 기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들의 복잡한 내부사정과 대한민국의 상대적인 안정 및 국력신장에 초조한 나머지 북괴정권이 폭력전술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정황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 경향신문 1983. 10. 19(사설) 2면

그러나 이 사건에 연루된 피해자들은 모두 평범한 사업가이거나 교포, 유학생들이었다.

먼저 당시 이 사건 4개망 중 하나의 망 간첩 혐의를 받았던 서성수씨의 경우를 보자. 2017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을 받은 서성수씨는 일본 효고현에 거주하던 재일교포였다. 그는 친인척 방문 등을 위해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특히 모국방문단에 참가하여 제주도에 방문했을 당시 제주도 감귤 묘목 등에 질문했던 것이 국가기밀탐지라는 범죄사항으로 조작 변질되었다. 또한 그는 재일교포 유학생들을 찾아다니며 포섭한 김병진 등을 통해 10.26 이후 혼란한 사회상황을 틈타 제적학생, 문제학생, 노동자들을 상대로 선전선동하려 했다는 죄명을 뒤집어썼다.

그는 공판과정에서 통역도 없는 재판을 받았다. 한국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검사의 질문에 보안사 수사관들이 시킨 대로 그저 '예, 예'라는 답변만을 하였다.

언론에서 또다른 간첩망이라고 발표했던 김상순의 경우 취업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대북공작원으로 의심되는 친인척을 접촉, 그에게 포섭되었다는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김상순 역시 2011년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되었다.

2012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박박은 재일교포학생으로 한국에 거주하며 해외유학상담실에 취업하여 근무하던 중 체포됐다. 그는 유학생을 상대로 간첩수행을 하려했다는 혐의를 받았고 이로 인해 수년간의 감옥생활을 해야 했다. 특히 재일교포 유학생들이 한국에 위장취업을 통해 간첩행위를 했다는 당시의 보도는 재일유학생들을 곱지않은 시선으로 보게하는 계기가 되기 충분했다.
 
 2017. 8. 27 한겨레신문. '서성수' 씨등에 대한 무죄기사
2017. 8. 27 한겨레신문. '서성수' 씨등에 대한 무죄기사 ⓒ 한겨레신문
 
서성수씨 등 1983. 10. 13 언론에 발표되었던 사건의 관련자들은 대부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언론들이 '안보공포감'을 조성하며 '해외공작간첩'이라고 보도했지만 실체는 없었던 것이다. '시멘트 공작', '갓끈공작'은 적어도 1983. 10. 13 사건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무죄 판결 이후 서성수는 2018년 12월 <한겨레> 인터뷰에서 "그동안 일부러 모든 것을 망각하려고 노력해왔지만, 단 하나만은 잊지 않으려 애썼다. 서울구치소의 죄수번호 126번이다. 늘 상기하려고 '서대문 126'을 제 이메일 아이디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발표한 재일동포 간첩 사건 피해자는 약 130여 명이다. 이들 중 현재까지 재심을 통해 무죄가 된 사람들은 37명 이상이다. 그러나 이 숫자는 전체 피해자의 30%에 지나지 않는다.

서성수 등을 체포했을 당시에는 대대적으로 대서특필했던 언론이 정작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았을 때는 소극적 보도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재일양심수 동호회를 이끌고 있는 이철씨는 2018년 한겨레 인터뷰에서 "재심 무죄가 잇따르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제대로 보도되지 않아 아직도 우리를 간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물론,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던 당시의 보도로 인해 안보공포감에 떨어야했던 국민들의 사회적 피해에 대해 언론은 어떻게 답할 건가.

#평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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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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