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열대 식물로 우거진 케이프 트리블 레이션(Cape Tribulation)을 떠나 케언즈(Cairns)로 돌아왔다.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게 지냈던 몸을 쉬면서 다음 목적지를 알아본다. 그런데 희소식이 있다. 이곳에서 쿡타운(Cooktown)까지 도로가 포장되었다는 것이다. 케이프 트리불 레이션에서 쿡 타운까지는 가까운 거리다. 그러나 보통 캐러밴을 가지고는 갈 수 없는 험한 비포장도로다. 따라서 포기했었다. 그러나 케언즈에서는 포장된 도로를 타고 갈 수 있는 것이다.
쿡타운을 가보기로 했다. 특별한 계획이 없는 여행이라 상황에 따라 목적지를 바꿀 수 있어 좋다. 내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4시간 정도 운전해야 한다. 새로 포장한 도로를 달린다. 도로에는 캐러밴을 끌고 가는 자동차가 대부분이다. 가끔 트럭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승용차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쿡타운을 찾는 사람 대부분은 관광객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오래 운전했다. 잠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즈음 작은 동네를 만났다. 집 몇 채만 보이는 동네(Lakeland)다. 천천히 운전하며 쉴 곳을 찾는데 술집(pub)이 보인다. 동네와 걸맞지 않은 큼지막한 술집이다. 캐러밴을 끌고 다니는 여행객을 위해 주차장이 넓다. 맥주 한 잔과 스테이크 햄버거를 주문했다. 손님은 여행객이 대부분이다.
푸짐하게 주는 점심을 먹으며 충분히 쉬었다. 갈 길이 멀다. 자동차에 오른다. 얼마 운전하지 않았는데 도로변에 과일 가게가 보인다. 바나나 가격이 싸다. 수박도 팔고 있다. 동네에서 재배한 꿀도 있다. 뜻밖에도 손님을 받는 사람은 동양 여자다. 수박, 바나나 그리고 꿀까지 사들고 차에 오른다. 나중에 바나나는 맛있게 먹었으나 수박은 단맛이 전혀 없다. 오이가 더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산을 만나 경사진 도로를 올라가는데 도로변에 전망대가 있다. 차를 세운다. 멀리 작은 산들이 줄지어 있다. 발 아래에는 천박한 환경에서 어렵게 자라고 있는 작은 나무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나름대로 자신만의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는 호주 특유의 못생긴 나무들이다. 옆에는 오토바이 5대가 주차해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하는 것도 이색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쿡타운에 도착했다. 야영장 시설이 좋다. 도로가 포장되어 관광객이 많아지기 때문에 새로 조성한 야영장일 것이다. 짐을 풀고 바닷가에 있는 동네 중심가를 찾아 나선다.
동네 주변을 서성이는데 카페 난간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가까이 가보니 엄청나게 큰 물고기(Grouper) 세 마리가 주위를 맴돌고 있다. 이렇게 큰 물고기를 본 적이 없다. 카페 안내판에는 물고기에게 먹이 주는 시간이 적혀 있다. 관광객을 위해 카페에서 정기적으로 먹이를 주기 때문에 이곳에서 서성이는 물고기들이다.
동네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공원에서는 낚시하는 사람으로 붐빈다. 낚시할 장소도 특별히 만들어 놓았다. 낚시꾼들이 좋아할 만한 장소다. 살아 있는 미끼로 대어를 기다리는 강태공 바로 앞에는 대어 두 마리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양동이에 들어가지도 않을 정도로 크다.
하루 날을 잡아 낚싯대 들고 바다를 찾았다. 도미가 많이 올라온다. 그러나 크기가 작은 편이다. 바늘을 큰 것으로 바꾸고 미끼도 큰 것을 끼어 대어를 기다려 본다. 한참 뜸을 들이더니 제법 큰 물고기가 올라온다. 튜리벨리(Trevally)라는 생선이다.
야영장에 돌아와 생선들을 손질한다. 낚시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생선 다듬는 시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서투른 솜씨로 적당히 회를 뜨고 매운탕을 끓인다. 싱싱한 생선이어서일까, 음식 솜씨가 없어도 맛이 좋다. 낚시 배를 타고 나가면 큰 생선을 많이 잡을 것이다. 그러나 많이 잡아도 처치 곤란이다.
다음날에는 폭포(Isabella falls)를 찾아 나섰다. 폭포까지는 오래 운전해야 한다. 동네를 벗어나 산으로 둘러싸인 풍경을 즐기며 운전한다. 폭포에 도착했다. 외진 곳이다. 그러나 캠핑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큼지막한 사륜구동차가 있다. 화장실도 없는 열악한 장소다. 호주 오지를 돌아다니며 여행의 참맛을 즐기는 캠핑족들이다.
폭포는 크지 않다. 그러나 수량이 많은 아름다운 폭포다. 잠시 폭포 아래에 앉아 몸과 마음을 쉰다. 물이 떨어지는 바위 틈바구니에 자리를 잡고 싱그럽게 자라는 식물에 잠시 시선을 빼앗긴다. 생명력의 아름다운 모습에 매료된다.
쿡타운을 찾은 관광객이 빠짐없이 들리는 장소가 있다. 등대가 있는 작은 동산(Grassy Hill)다. 동네 한복판에 있는 이정표를 따라 조금 올라가니 관광안내책자에 소개되는 등대가 보인다. 높지 않은 동산이지만 360도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강줄기(Endeavour River)가 바다와 마주치고 있다. 산호섬(Great Barrier Reef)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은 구름이 끼어 보이지 않는다. 전망대에서 다른 관광객들과 하나가 되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쿡타운에는 배를 타고 일몰을 보는 관광상품이 있다. 전화했더니 오늘은 단체 손님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테이블 하나가 비었으니 오라고 한다. 시간에 맞추어 선착장에 도착했다.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여있다. 단체로 이곳저곳 다니며 노년을 보내는 사람들이다.
배는 해안을 따라 운항하면서 이런저런 정보를 제공한다. 영국 여왕이 오래전 쿡타운에 왔었다고 한다. 여왕이 바다를 구경했다는 해안에는 양탄자 모양과 계단을 시멘트로 만들어 기념하고 있다. 호주 사람들의 여왕 사랑은 대단하다. 여왕이 임명한 총독이 호주 수상과 장관들을 임명한다. 그래도 거부감이 없는 나라다.
배는 맹그로브 나무가 울창한 좁은 수로를 능숙하게 비집고 들어간다. 맹고 나무가 빼곡하다. 큼지막한 게(mud crab)가 많이 서식하고 있을 것이다. 맹고 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바다에서 촛불을 켜놓고 식사를 한다. 구름이 끼어 기대했던 일몰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평소에 경험하기 어려운 특이한 저녁 시간을 가졌다.
오늘은 지나가는 길에 식품점에 들러보았다. 무엇을 파는지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은 식품점이다. 파는 물건도 많지 않다. 원하는 신선한 야채 혹은 과일은 없다. 그런데 뜻밖에 눈에 익은 상표가 보인다. 한글로 불고기 양념이라고 쓰인 병 두 개가 진열대에 놓여있다. 이렇게 외진 곳에서 한국 제품을 찾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하다.
쿡타운을 떠나 다시 케인즈로 돌아간다. 가는 길에 블랙 마운틴(Black Mountain) 전망대에 잠깐 주차했다. 까만 돌로 뒤덮인 산이다. 흘러나온 용암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돌덩이가 된 것이다. 집채만큼 큰 돌도 있다고 한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지만 등산로도 없는 황량한 산이다.
시커먼 돌로 뒤덮인 산을 카메라에 담고 차에 오른다. 평소와 다름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고속도를 달리는데 바로 앞에서 캥거루가 뛰어든다. 피할 시간도 여유도 없이 정면으로 캥거루를 치었다. 백미러를 보니 도로 한복판에 움직이지도 않고 누워있다. 죽었을 것이다.
호주를 여행하면서 도로에 죽어있는 캥거루를 수없이 보았다. 그러나 캥거루를 내가 죽이기는 처음이다. 운전하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다. 죽음과 삶에 대한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살아있는 모든 생물은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삶의 죽음을 필요로 한다. '먹이사슬'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의미한 질문이다. 인간으로서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좋으나 싫으나 주어진 삶이다. 질문을 바꾸어 본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가. 지금 나만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가. 삶을 곱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