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의원이 지난 27일 '외교 대전환 공약'을 발표했다. "대통령이 되면 국익 우선(Korea First)의 대원칙 아래 한미·한중·한일 등 무너진 대외관계를 정상화함으로써 나라의 자긍심을 회복하고 G7 선진국 도약의 기초를 마련할 것"이라면서 외교·안보 공약을 발표했다.
그런데 공약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문제점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는 피할 수 없다. 그의 공약이 문제가 많은 것은 "과거는 묻고 미래로 나아간다"는 관점에서 위안부·강제징용의 '조기 해결'을 약속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또 미중 패권경쟁 앞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지나치게 미국에 경도됐기 때문만도 아니다. 그는 중국에 대해서는 강경 노선을 표방하는 한편, 미국과 관련해서는 "쿼드 등 다자안보협력체, 미국 주도의 민주주의 연합체, 파이브 아이즈 등 정보 공동체 등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천명했다.
위와 같은 이유들만으로 그의 외교·안보 공약이 문제점이 많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위안부·강제징용이나 미중 패권경쟁에 관한 부분 못지않게 우리의 안보에 관한 부분들에도 '지뢰'들이 묻혀 있다. 특히 이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질적 핵무장 구상
"대통령에 당선되는 즉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갖고 한미 양자 또는 다자(한·미·일·호주) 형태의 '아시아판 핵기획 그룹'을 설치해 전술핵 재배치를 비롯한 나토식 핵 공유 체제 구축 약속을 받아내겠습니다."
집권 후반기에 독자적 핵개발 추진으로 미국과 마찰을 빚은 박정희 정권 방식으로 핵무장을 하지 않고, 미국과의 핵 공유를 통해 실질적 핵무장을 구현하겠다는 공약이다. 독자 핵무장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지금의 상황을 반영한 공약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자국 핵무기도 아닌 미국 핵무기를 내 것처럼 활용하는 게 과연 가능할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카 셰어'에서처럼 남의 자동차일지라도 운전대를 잡고 있는 동안만큼은 내 차처럼 쓸 수 있는 일이 핵 공유에서도 가능한지를 검토해야 한다.
홍준표가 추천한 나토식 핵공유에서도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1966년 12월 14일 핵계획그룹(핵기획그룹)이 창설된 이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은 미국과 핵무기를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개별 회원국들은 그 사용에 관한 결정권을 갖고 있지 않다.
나토 홈페이지(www.nato.int)에서 제공되는 설명 자료인 '핵계획그룹(Nuclear Planning Group, NPG)' 항목은 "NPG는 핵 전력과 보다 광범위한 쟁점들, 이를테면 핵무기 통제 및 핵 확산 등과 관련된 구체적인 정책적 쟁점들을 토의한다"며 "핵무기를 갖고 있든 않든, 불참을 결정한 프랑스를 제외한 모든 동맹국들은 NPG의 구성원"이라고 한 뒤 이렇게 말한다.
"따라서 합의된 정책들은 참여 국가들의 공통된 입장을 반영한다. NPG 내에서의 결정은 모든 나토 위원회와 마찬가지로 합의에 의해 이뤄진다(Decisions within the NPG are taken by consensus, as is the case for all NATO committees.)"
컨센서스(consensus)에 의해 핵계획그룹의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미국 핵무기가 나토 내에서 사용되려면 해당 국가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나토 전체가 만장일치가 있어야 한다. 개별 회원국들이 자주적으로 결정할 권한은 없다.
공유된 핵무기를 나토 내에서 어떻게 쓸 것인가는 핵계획그룹을 통해 나토 자체에 위임돼 있다. 하지만 그 핵무기의 주인은 미국이므로 이 그룹은 미국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수 없다. 그래서 형식적으로는 나토 핵계획그룹이 위임을 받았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이 권한을 거의 독점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홍 후보가 추천한 '핵공유'의 실상
그런 구조 하에서 미국은 절대적 권한을 행사해왔다. 핵무기 배치 장소를 변경하는 것까지도 미국의 단독 결정에 맡겨져 왔다. 2017년에 <국가전략> 제23권 제1호에 실린 황일도 북한대학원대학교 연구원의 논문 '동맹과 핵공유 - NATO 사례와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시사점'은 이렇게 설명한다.
"배치장소 변경 결정은 미국 측 판단에 따라 이뤄졌고, 해당 국가나 나토 차원의 동의를 거치는 절차는 따로 없었다. 이들 핵무기는 해당 기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탄약지원대대의 전적인 관리와 통제 하에 놓여 있으며 현지 해당국 정부나 군 당국은 접근 권한이 없다고 관련 문헌들은 일관되게 설명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기적으로 이뤄지는 전투대비태세 점검이나 정비·교체 등의 일상 임무 역시 미군이 수행한다."
이렇게 미국이 다 알아서 하므로, 실제로는 핵공유가 아니라 그냥 '핵 배치'와 같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주한 핵무기 철수를 선언한 1991년 9월 27일 이전에 한국에서 전개됐던 상황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굳이 핵공유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결정적 순간에 개별 국가들이 해야 할 임무가 있기 때문이다. 위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다만 이들 탄두를 실어 적군에게 떨어뜨리는 임무는 기지를 나눠 쓰고 있는 해당 국가 공군이 담당한다. 유럽의 미군 전술핵 탄두를 핵공유 메커니즘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홍준표 후보는 아시아판 핵기획그룹을 창설해 나토식 핵공유를 실현시키겠다고 공약했다. 그가 말한 대로 실현된다면, 한미 핵공유 체제 하에서 한국군이 맡을 역할은 미국의 결정에 따라 핵무기를 운반하는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핵무기 사용이 미국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되면, 한국이 아무리 요청해도 미국은 사용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승인하는 경우는 미국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때뿐일 것이다. 그렇게 미국의 국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국 공군이 '운반책'이 돼 주는 것이 홍 후보가 추천한 핵공유의 실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홍 후보가 바이든을 상대로 한국에 대한 특별대우를 요청한다 해도 상황이 달라질 확률은 높지 않다. 이제까지 미국이 그런 요구에 귀를 기울인 적은 거의 없었다. 위 논문은 "주요 나토 동맹국은 이러한 메커니즘의 실효성에 상당한 회의를 품어온 반면, 그러한 문제제기로 인해 미국이 독점적 결정권을 양보하거나 핵 사용의 시기·방법·목표물 선정 등의 핵심 사항을 구체적으로 상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수용한 경우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위 논문은 말한다.
설령 실현된다 해도 한미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가 말한 핵공유는 그런 의미에서 실익이 없을 뿐 아니라 상당히 위험한 요소까지 내포하고 있다. "한미 양자 또는 다자(한·미·일·호주) 형태의 아시아판 핵기획그룹을 설치"하겠다는 그 구상이 실현되면, 한국과 관련된 미국의 핵무기 사용 결정에 일본 내각의 의사가 투영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미국의 동북아 정책에서 일본의 역할이 점증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홍준표가 다자 핵계획그룹이 아닌 양자 핵계획그룹을 제안한다 해도 미국 입장에서는 일본을 끼워 넣는 다자 핵계획그룹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나토 핵계획그룹이 만장일치제로 운영돼온 점을 감안하면, 한미일 등이 포함된 핵계획그룹의 의사결정에서 일본의 한 표 행사가 결정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핵정책에서 일본의 발언권이 높아지게 됨을 의미한다. 이것이 과연 코리아 퍼스트 외교라고 할 수 있을까. 아메리카 퍼스트 혹은 재팬 퍼스트로 변질될 가능성은 없는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홍준표가 제안한 핵공유 계획은 이처럼 무익하고 위험할 뿐 아니라 동시에 퇴행적인 악수가 될 수도 있다. 이는 한반도 핵문제를 노태우 시대로 회귀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노태우 재임 중인 1991년 9월 27일(주한핵무기 철수 선언) 및 1991년 12월 31일(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체결) 이전의 상태로 퇴행시켜 한반도를 한층 불안하게 만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처럼 홍준표 후보의 '외교 대전환 공약'은 한국의 안보와 외교를 엉뚱한 방향으로 대전환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것을 과연 국익우선주의, 코리아 퍼스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