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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노 3김 제13대 대선 벽보(1987.).
1노 3김 제13대 대선 벽보(1987.). ⓒ 자료사진
 
노태우가 집권한 제6공화국은 외신이 표현한대로 '황금분할'의 구도였다.

6월항쟁으로 5공 군부세력이 형식적으로는 몰락한 듯 했지만,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가 정권을 장악하고, 대선의 경쟁자였던 3김이 야당의 1, 2, 3당 총재가 되어 국회에서 '여소야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야당 총재 3김은 상호 견제와 협력 구도를 이루면서 치열한 경쟁관계를 갖게 되었다. 제6공화국의 당면 과제는△ 5공 청산 △ 서울올림픽 성공적 개최 △ 새헌법에서 회복된 국회의 국정감사 △ 노태우의 중간 평가 △ 지방자치 실시 등 난제가 산적해 있었다. 경제는 3저호황(三抵好況)의 상태이어서 당장 큰 문제는 아니었다.  

다행히 해외원유ㆍ외자ㆍ수출에 크게 의존하여 경제발전을 계속해 온 한국은 1986년부터 저달러ㆍ저유가ㆍ저금리의 이른바 '3저현상'으로 1988년까지 3년 동안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이 기간 연 10% 이상의 고도성장이 지속되고 사상최초로 무역수지 흑자를 달성하게 되었다.
 
 1노 3김의 유세 현장
1노 3김의 유세 현장 ⓒ 자료사진
 
6공의 '1노 3김체제'의 정계는 당장 5공청산이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전두환 문제를 비롯하여 광주학살 등 민주화운동 희생자 진상조사, 악법개폐 등이 정치현안으로 떠올랐다.

평민당이 이같은 정치현안을 주도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위치에 있었다.

5공청산을 둘러싸고 노태우 대통령과, 3김 총재끼리의 대립과 갈등ㆍ경계와 연합이 종횡으로 전개되었다. 평민당은 제1야당으로서 6공화국 전반기, 그러니까 1990년 1월 22일 노태우ㆍ김영삼ㆍ김종필의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이 합당할 때까지 2년여 동안 정국을 주도하는 강력한 중심축이었다.

김대중 총재는 1988년 6월 29일 열린 제13대 국회의 첫 대표연설에 나섰다.

"저는 1972년 유신쿠데타로 의사당을 물러난지 16년만에 다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수 차례에 걸친 죽음의 고비와 감옥생활, 해외망명, 연금 등의 수난 속에서 헤매던 이 사람을 다시 일으켜서 제1야당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서게 한 것은 역사의 정의와 우리 국민의 위대한 힘의 덕택이라고 믿습니다."라는 서두 발언으로 자신의 '감회'를 밝혔다.
 13대 총선 결과 제1야당이 된 평민당 당사에서 김대중이 축하인사를받고 있다.
13대 총선 결과 제1야당이 된 평민당 당사에서 김대중이 축하인사를받고 있다. ⓒ 민청련동지회
 
다음은 대표연설의 몇 대목이다.

우리 국민이 할 일은 자유와 정의의 실현이라는 오늘의 세계정신을 받들고 대화해를 이룩하는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저는 여러분에게 이러한 대화해를 여는데 적극 동참하기를 제안합니다.

지금 우리 내부의 대화해를 위해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양심수의 석방입니다. 민주화로 나간다면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애국자들을 아직도 600명 이상이나 감옥에 두고 어찌 우리가 화해와 정치발전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6ㆍ29선언을 한 지 한 돌이 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행했던 공약은 대부분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태우씨가 국민적 화해를 위해서 꼭 실천하겠다고 약속했던 공명정대한 선거의 실시, 국민적 화해와 단결,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시국사범 관련사범의 석방, 기본적 인권의 최대한 신장, 지방의회의 구성, 대학의 자율화와 교육의 자치, 지역감정의 종식 등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대통령과 민정당의 반성과 새로운 결심이 있기를 촉구합니다.

지금 우리가 수행해야할 과제는 광주의거 진상규명, 전두환씨 일가 부정축재 등 제5공화국 아래서 권력형 비리척결, 양대선거의 부정조사, 제반 반민주 악법개폐, 망국적인 지방색 일소 등입니다.

저는 당의 정강정책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 어떠한 정치보복도 이를 확고히 반대할 것입니다. 그리고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반성과 사과를 요구할 뿐 그들에 대한 형사처벌을 막는데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이 일을 저의 모든 것을 걸고 관철하겠다는 것을 오늘 이 자리에서 여당의원 여러분과 국민 앞에 엄숙히 약속합니다. 

저는 5개 특별위원회의 활동을 통하여 부정과 죄악의 진실을 밝히고 잘못을 시정하는 데는 일보도 후퇴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처벌이나 정치보복은 저의 신앙심과 민주적 관용의 신념에서 끝까지 반대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국민과 군 모두에게 해악을 끼쳐온 군의 정치개입을 종식시켜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군은 가칭 '민주국군헌장'을 작성하여 발표하도록 노태우 대통령에게 강력히 권고합니다.

저는 자유경제를 지지합니다. 그러나 정의 있는 자유경제만을 지지합니다. 정의 있는 자유 경제는 성장ㆍ안정과 더불어 분배의 공정이 보장되는 3자 균형의 경제를 말합니다.

제13대 국회는 우리 의정사상 처음으로 입법부가 노동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정당한 권익을 보장해 줄 수 있도록 노동관계법을 서구 선진사회의 수준에 버금가게 개정해 줍시다. 그리하여 2천만이나 되는 노동자와 그 가족이 정치에 대한 지지와 이 땅에 대한 애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협력해 줍시다.

우리는 북한에 비해서 인구가 2배입니다. GNP가 6배입니다. 교육수준은 세계 최고입니다. 국민 절대다수는 공산주의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자신이 없습니까? 왜 서독도 하고 대만도 하는 공존이나 교류를 우리는 자신을 가지고 추진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저는 국회가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실현시키기 위한 대표단을 각당의 고위 간부급으로 구성하여 평양에 보낼 것을 결정하고, 정부를 통하여 북한 정권과 교섭할 것을 제안합니다.

남북간의 화해와 교류의 촉진을 위한 상징적이면서 실질적인 조처로서 비무장지대에 남북 양쪽의 국민과 학생들이 모여서 어울릴 수 있는 가칭 '민족공원'과 '통일운동장'같은 것을 남북의 정부가 협력해서 건설하고 관리하는 계획을 정부가 추진하도록 제안합니다.

진정한 화해와 성취를 위하여 우리 국민과 13대 국회는 세 가지의 과제, 즉 자유의 실현, 정의의 구현, 그리고 통일지향적인 남북관계의 추진을 적극적으로 밀고나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제가 16년만에 이 국회에 들어온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저를 핍박하고 미워하던 이들과 화해하기 위해서 들어왔습니다. 그들과 협력해서 자유와 정의, 그리고 통일로 전진하는 역사의 수래를 같이 밀고 나아가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안고 이 의사당에 들어 온 것입니다. (주석 6)


주석
6> 『국회본회의 속기록』, 1988년 6월 29일.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평화민주당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평화민주당연구#평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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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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