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년 8개월의 휴식 후에 학교 현장으로 나가게 되었다.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쉬게 되는 교사의 대체 자리였다. 몇 가지 까다로운 문제가 있었고 혹여 당황할까 싶어 모든 일을 투명하게 얘기해 준다는 말을 듣고는 지금이라도 그만두겠다고 해야 하나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하고 싶다는 마음이 그 말을 꾹 누르게 했다. 이전에 열정을 바친 곳이 지금은 어떤지도 궁금했고, 그 현장에서 내가 얼마만큼 잘할 수 있을지, 나는 여전한지 궁금했다.
코로나 이후 멀찍이서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막연하게 어려움이 있겠다 싶었는데, 가까이 보니 세밀하고 촘촘한 지도는 불가능했다. 두루뭉술 화면에 얼굴을 잠깐이라도 비추면 출결 확인은 된 것이었다. 주의를 집중하는 것도 어려웠고, 과제를 내고 모두의 답을 확인하거나 발표로 진행하는 수업은 한계가 있었다.
열흘 정도 아이들과 대면으로 만났고 수능을 앞두고 다시 원격 수업으로 전환이 됐다. 수능 1주 전부터 수험생 집단 감염을 예방하고 시험장 방역 조치를 시행하기 위해 전체 고등학교가 원격 수업으로 전환(2022 수능 시행 원활화 대책)되는 방침에 따른 조치였다.
원격 수업으로 돌아가기 전날, 수능 시험장을 꾸미기 위해 아이들의 짐을 모두 뺐다. 사물함도, 사물함 속의 물건들도. 정해진 수의 책걸상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교실에서 정리했다. 벽에 붙은 종이 한 장, 급훈이나 아이들 사진, 각종 알림과 시계도 모두 걷어 내는 대청소를 아이들과 같이 했다. 이전에도 해본 것이었지만 수능을 준비하는 것은 여전히 큰 일이었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비대면 수업
다음 날부터 진행된 온라인 수업은 얼굴을 맞대고 하는 것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어 보였다. 대면의 상황이래야 마스크로 가려져 눈만 겨우 보이는 얼굴뿐이었고 목소리도 마스크에 막혀 왕왕 울릴 뿐이었지만, 비대면의 상황은 그보다 훨씬 열악했다.
일주일을 함께하며 아이들의 얼굴을 겨우 익힐만했는데 다시 백지상태로 돌아가는 것 같아 우선 걱정이었다. 온라인 수업 경험도 처음이라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어찌 온라인 수업 2일 차까지 조종례와 시간표대로 이어지는 수업을 혼자서만 정신없이 진행했다. 모든 과정이 이미 익숙한 아이들은 편안했고 교사들의 대처는 유연하고 매끄러운 것 같았다. 처음인 내게만 모든 것이 낯설고 조심스러웠다.
매 시간마다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학생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참여를 독려해야 했다. 학생이 연락이 안 될 경우는 학생 부모에게까지 연락을 했고, 그렇게 해서라도 반드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학생이 무단 결과 처리가 되지 않도록 챙겨야 했고, 혹시라도 학생을 방치한다는 민원을 예방하기 위해서 출석 확인, 수업 영상 올리기, 전화 걸기가 한꺼번에 정신없이 이루어졌다.
온라인 클래스에 영상을 올리기 위해 영상을 만드는 작업도 쉽지 않았겠지만, 학생과 교사가 서로 호흡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영상 학습은 분명 꽉 찬 내용인데도 뭔가 부족해 보였다. 진도율 100%가 목표지만, 아이들이 단 한번 듣고 이해할 수 있을까는 의문이었다. 대면 교육에서는 몇 번을 강조하고 질문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았을 테지만 비대면은 그럴 수 없었다.
코로나 상황 이후로 학력의 격차가 중간층이 없이 양극단으로 벌어졌다는 것이 단박에 이해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 같아 보이기도 했다. 물 위에서 우아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물 밑에서 안간힘을 다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아이들 모두가 그럴 수는 없었고 저마다의 성취 욕구나 노력 여하에 따라 학습의 격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학생들의 학습 성취도를 끌어올리는 것이 교육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학습 방임이나 소외, 학력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위드코로나는 불가피해 보였다.
위드코로나를 대비하는 학교의 자세
위드코로나로 가는 준비는 학교에서도 한창이다. 10월 중순부터는 10대 고등학생들의 백신 접종도 시작되고 있다. 우리 학급의 경우는 32명 중 60% 정도는 백신 1차 접종을 마친 상태다. 이미 2차 접종에 들어가는 아이도 있어서 저들끼리는 자신들의 언어로 얘기를 나눴다.
"너 곧 '투명인간' 되겠네!"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친 아이들을 저들끼리는 '투명인간'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아마도 아무런 제지 없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의미로 쓰는 것 같았다. 백신에서 자유로운 세상을 '투명인간'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자유에 대한 갈망이 큰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했다. 투명 망토를 입은 것처럼 마음껏 다닐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아이들이었다.
원격 수업으로 들어가기 직전까지 학기말 수행평가가 몰아치는 기간이었지만 학급마다 7~8명은 빈자리였다. 접종일을 포함 3일간 출석 인정을 해 주기 때문에 아이들은 무리해서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되었다. 빡빡한 학사 일정을 진행하는 학교의 입장이나 정해진 기한 내에 수행평가를 치러야 하는 교사들의 걱정까지는 아이들의 관심 밖이었고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되는 달콤한 휴식과 편안한 쉼을 마음껏 누렸다. 물론 실제로 증상이 무거운 경우도 있었겠지만.
원격 수업 기간인 현재도 백신 접종으로 인한 인정 결석은 비슷한 숫자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학원을 통해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말이라도 나오면, 같은 학원을 다니는 인근 학교의 학생들은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어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했다. 타학교에 1명의 확진자가 생기면 인근 학교마다 밀접 접촉자와 그들의 형제자매까지 자가 격리의 범위는 확대되었고 출결 처리는 한층 복잡해졌다. 방송에서만 듣던 뉴스의 현장이 바로 이곳이었다.
근무를 결정하고 난 후 10대 확진자 급증 보도에 걱정이 컸었다. 혹시라도 감염이라도 된다면 중환자가 있는 집에 미칠 여파가 클 것이 분명했으므로. 그러나 막상 학교 현장에서 본 아이들은 감염 걱정으로 경직되어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유로워 보였다. 교실에 칸막이는 제거되었지만 기본 수칙은 철저히 지켜졌다. 거리두기는 충분하지 않았지만 마스크는 단단히 착용했고 손 소독이나 교실 환기, 체온 측정도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한 일상을 2년 넘게 보내고 있으니 아이들은 이미 코로나와 함께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환기 시간엔 담당 학생이 일어나 창문을 열었고, 체온 측정 담당, 손소독제를 나누어 주는 담당이 잘 계획된 시스템처럼 움직였다. 백신 접종을 모두 마치고 나면 한층 더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고 아이들은 기대했다. 10대 접종률이 낮다고 하지만 내가 본 학교의 아이들은 백신 접종에 대해서도 거부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비대면 상황이라 모든 활동이 제한적이지만 가능한 학생 활동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3층 넓은 복도 중간에 마련된 갤러리에는 매월 정해진 주제에 따라 아이들의 미술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지역 신문에도 보도가 될 만큼 작품은 근사했고 내 눈에는 이미 작가님들의 작품이었다. 자서전을 쓰는 친구들도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의 삶을 계획하는 것까지 차곡차곡 글을 써내려 갔고 곧 책으로 엮어진다고 했다.
대면과 비대면을 번갈아가며 학습을 이어왔지만 평가는 여전했다. 아이들의 성적이나 활동은 생활기록부에 그대로 적힐 것이다.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활동한 결과는 대학 입학을 위한 자료로 반영이 될 것이고,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말은 어쩌면 위드코로나를 향한 지금의 상황에 적합했다.
비록 단기간이지만 50대의 취업 일기는 시작되었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학교 현장에서 나는 또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아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왔으니 내 꿈도 잠시 수정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위드코로나 시대에 아이들과 같이 꾸는 꿈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