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위성정당 사태로 얼룩진 미완의 선거제도 개혁. 선거제도개혁연대의 진단과 처방을 들어본다.[기자말] |
진정한 사과와 반성은 어때야 할 것인가
지난 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위성정당 창당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 데 대해 당의 후보로서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리며 "꼼수 위성정당 창당 행렬에 가담해 국민의 다양한 정치 의사 반영을 방해하고 소수정당의 정치적 기회를 박탈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위성정당 방지법을 시작으로 정치개혁의 고삐를 조이겠다"고도 했다. 과연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알바니아도 레소토도 하지 못한 '위성정당 창당 후 폭파' 전술로 일그러졌던 한국의 선거제도는 개혁될 수 있을 것인가?
2016년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정당 득표율 25.54%로 41%의 의석을, 새누리당은 정당 득표율 33.5%로 40.7% 의석을 가져간 것에 반해, 국민의당은 26.74%의 정당 지지율을 얻고도 12.7%, 정의당은 7.23%의 정당 지지율을 얻고도 2%의 의석밖에 얻지 못했다. 비례성을 구현하지 못하는 이러한 선거제도를 바꾸기 위해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패스트트랙에 올라타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와 육탄 봉쇄를 뚫고 질서유지권까지 발동한 상태에서 가까스로 가결됐다.
그래서 2020년 21대 총선은 어떻게 됐던가. 더불어민주당은 33.35%를 득표하고 60%의 의석을 가져간 반면, 정의당은 9.67% 지지율로 2%, 국민의당은 6.79%의 지지율로 1%, 그리고 열린민주당은 5.42%의 지지율로 역시 1%의 의석을 점하게 됐다. 20대 총선이 비례성의 '파괴'였다면 21대 총선은 비례성의 '유린'이라 해야 할 것인가?
공직선거법을 통과시킨 당사자가 그 공직선거법에 침을 뱉었다. 따라서 위성정당 사태는 말뿐인 '사과'와 '반성'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 자신의 민주적 권리를 짓밟힌 국민과 소수정당들의 목소리를 아무 조건 없이 수용할 때, 그 반성이 비로소 진정성이 있다고 받아들여질 것이다.
선거제도개혁연대가 출범하다
대의제민주주의는 대표를 뽑는 '과정의 민주주의'가 '결과의 민주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민의를 제대로 수렴하는 선거제도를 만드는 것이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이다. 2016년 3월 11일 출범한 비례민주주의연대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실현을 위해 불철주야 힘썼지만 현실적 역량 상 준연동형 30석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고, 뒤이어 위성정당이라는 편법이 판치는 가운데 그 성과조차 유실할 수밖에 없었다.
비례민주주의연대는 4년 동안의 성과와 실패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후 2021년 8월 26일 발전적으로 해소했고, 새로운 선거제도 개혁 운동의 전개를 위해 '선거제도개혁연대'가 새로이 출범했다.
선거제도개혁연대는 정당 간의 상층 합의보다는 시민의 역량을 모아 시민의 힘에 의거하여 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최종의 답을 정해 놓지 않고 시민과의 소통을 통해서 바람직한 선거법 개정의 방향을 세워나갈 것이다. 또한 선거권·피선거권 연령 하락 이후 더욱 분출될 청년들의 참여 의지를 받아 안아 청년들이 선거제도 개혁 운동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비례민주주의연대가 선거제도개혁연대로 명칭을 바꾼 것은 우리의 과업과도 관련이 있다. 선거제도 개혁은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로의 이행만이 아니라 대통령·지자체장의 결선투표제, 정당법의 소위 '이중 당적 금지' 폐지와 선거 정당연합의 허용, 총선 3% 지방선거 5%의 진입장벽 폐지, 거대정당만 지원하는 정당기탁금 제도의 개혁, 일정 소득 이상의 유권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기부금 세액공제 제도의 폐지 등 다양한 내용을 포괄한다. 즉 "비례민주주의"라는 표현은 선거제도 개혁의 범위를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다. 선거제도개혁연대라는 명칭은 모든 국민들에게 단체의 목적을 뚜렷하고 포괄적으로 드러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다.
선거제도개혁연대의 3대 의제와 연재 기고
선거제도개혁연대는 총회와 운영위를 열어 단체의 3대 의제를 정했다.
첫째, 사표 없는 비례대표제다. 개방형·폐쇄형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아일랜드식 선호투표제 등 일체의 비례대표제를 원점부터 다시 검토하고 시민들과 소통해 그 이해의 간극을 좁혀나갈 것이다. 국민이 일일이 몰라도 되는 선거제도는 없다. 국민들이 이해하고 인정하는 완전한 비례대표제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
둘째, 결선투표제다. 대통령과 지자체장, 국회의원 총선과 광역의회 선거 등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행 '다수대표제'에서는 최악의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 차선 혹은 차악의 후보에게 투표하는 '전략투표'가 습관화되어 있다. 그 결과 거대 정당의 후보가 실제 지지보다 많은 표를 받게 되고 합리적 견제의 가능성이 봉쇄된다. 의회 선거는 비례대표제로 가야하고 대통령과 지자체장 선거는 결선투표제로 가야 한다.
셋째, 정치기본소득이다. 현행 기부금 세액공제 제도는 정당, 후원회 및 선관위에 기부한 정치자금 중 10만 원까지는 전액 세액에서 빼주고, 10만 원을 초과하는 금액은 16.5%를 세액 공제해 준다. 이것은 세금을 내지 않는 가사노동자, 취업준비생, 실업자나, 과세소득이 면세점 이하인 저소득층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없는 제도이다. 마땅히 이 프로세스를 거꾸로 해 선거가 있는 해에 모든 유권자에게 정치기본소득을 10만 원씩 선 지급하고 유권자로 하여금 정치자금을 마음껏 기부하게 해야 할 것이다.
이 세 가지 대표 의제를 포함해 모든 선거제도 개혁의 내용에 대해서 선거제도개혁연대의 운영위원들이 모두 참여하는 릴레이 기고를 이제 시작하려고 한다. 이 연재 기고는 국민들과 올바른 선거제도에 대해 대화를 해 가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다.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린다.
무엇보다 위성정당으로 국민에게 상처를 준 여야의 정치세력들은 특히 '사과'와 '반성'의 자세로 이 연재 기고를 정독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