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에서 만난 한 70대 여성은 손바닥 살이 붙어 굽어진 채 몇 년을 살았다. 손바닥 수술 후 얼마 있다가 재발했는데 병원비가 아까워서 치료를 포기했다. 최근에야 복지 시스템과 연결되어 수술을 할 수 있었다. 비교적 가벼운 치료임에도 적은 돈이나마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이 아까워서 그대로 지냈던 것이다.
병원은 도시에 차고 넘친다는데, 정보가 부족하고 경제적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 쉽게 고칠 수 있는 병 치료를 포기한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병원은 비급여 진료를 하지 못하는 수급자 환자를 반기지 않고, 의사가 매출을 얼마나 올렸는지 노골적인 평가 지표로 삼는다.
아플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한국 병원 시스템의 문제. 코로나를 통해 이제 많은 국민들이 한국 공공의료 취약성을 몸으로 느끼게 됐다. 일반 병원은 위험한 치료를 감당하지 않는 상황에서 전국 10%의 공공병원이 코로나 환자의 80%를 감당하느라 병상수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일반 진료를 보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많은 시민들이 이제 이윤과 상관없이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국가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낼 의무가 있고, 시민을 위한 의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공공병원이 있는지, 없다면 어떻게 만들어 내야 하는지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경기도 부천시는 정부가 발표한 중진료권 70곳 중 공공병원이 없는 부천권에 속한다. 중진료권은 인구 규모와 접근성을 고려하여 필수의료 정책을 관리할 지역 단위이다. 부천은 광명, 부천을 포괄하는 부천권으로 분류되고, 부천권은 경기도 내 12개 권역에서 공공병원이 없는 4개 권역 중 한 곳이다.
공공병원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나로 모아내기 위해 '모두의 공공병원 설립을 위한 부천 시민행동 300'을 조직했다. 부천에서 건강과 의료 분야 공익적 활동을 펼치고 있는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먼저 나섰다. 공공병원의 필요성을 지역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홍보 활동에 참여할 300인을 모집했고 2주 동안 333명을 모았다.
공공병원을 위한 부천시민행동의 첫 시작을 열기 위해 지난 1일 온라인 발대식을 진행했다. 112명이 발대식에 참여하기 위해 줌에 접속했다.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에 정책실장인 서울시립대학교 도시보건대학원 나백주 교수의 기조강연을 통해 모두를 위한 공공병원 설립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참가자 모두 공감하고 호응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제 앞으로 한 달 여 기간 동안 공공병원을 향한 부천시민 3000명의 목소리를 모으는 온라인 설문을 진행하기로 했다.
지난 21일 공공병원 설립을 기원하는 건강걷기 행사에도 100여 명의 부천시민이 참여했다. 부천시민행동 300의 참가자 중 100여 명의 부천 시민들이 공공병원 설립을 염원하는 가두 행진을 평화롭게 진행했다.
"부천 주민들의 건강을 치료할 공공병원이 꼭 세워져서 질병관리에 앞장 설 수 있는 부천이 되길 소망하며 기대합니다." - 반남순 부천시민
"공공병원은 기어이 설립되어야 할 일입니다. 처음은 미약할 수 있으나 누가 시작하는가가 중요한 일이지요. 함께 부천지역에 공공성을 강화하고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바로 시작됨을 감사드립니다." - 정창수 부천시민
25일에는 '위드 코로나 시대, 부천공공병원 왜 필요한가?'를 주제로 공개 토론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영주 이사장 진행으로 시립대학교 나백주 교수가 기조 발제하고 경기도의료원 정일용 원장, 부천시립노인전문병원 이정권 원장, 사회적협동조합 공존 임성현 이사장, 고강종합사회복지관 최종복 관장, 부천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부천시민의원 조규석 원장이 토론을 진행한다.
공공병원 설립은 코로나를 겪은 시민이라면 누구나 동의하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모두를 위한 공공병원이 꼭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가도록, '모두의 공공병원 설립을 위한 부천시민행동 300'은 계속해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