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이 큰일 해냈습니다. 영양 제2풍력 공사중지 조치 내려졌다는 대구환경청 공문입니다. 공사중지 기간은 대책 마련될 때까지 무기한입니다. 앞으로 주의 깊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25일 오후 반가운 문자가 날아들었다. 영양 제2풍력저지 공동대책위 송재웅 사무국장으로부터의 문자 메시지였다. 이로써 지난 9월 말 공사가 착공된 영양제2풍력발전단지 조성사업의 공사가 전면 멈춰서게 된 것이다.
대구지방환경청이 영양군에 내린 공사중지 조치 공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시됐다.
"귀 기관이 승인한 '영양제2풍력발전단지 조성사업 환경영향평가 협의사업장 주변에 법정보호종(산양) 개체 및 분변이 발견되었다는 민원 사항을 기 통보한바 있으며 이에 따라 영양군, 검토기관(국립생태원, 한국환경공단)과 21.11.17(수)에 현장 합동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이에, 현장조사 및 전문기관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를 추가로 통보하오니 환경영향평가 협의반영 결과 통보내용에 따라 사업자가 협의내용을 이행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 주시고, 아울러 동법 제39조 제1항 및 시행령 제56조에 따라 조사계획을 2021.11.30.(화)까지 우리청으로 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승인기관에서는 사업자의 협의내용 이행여부를 철저히 관리·감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첨부된 조치 사항은 다음과 같다.
"사업자는 협의의견에 따라 작업중지 후 6호기 서쪽 분변 발생지점 주변 추가 조사계획을 수립하여 21.11.30까지 제출하고, 신속히 저감대책을 추가로 강구시행하여함"
영양 주민들의 값진 승리였다. 사업 시행자인 GS풍력과의 한판 싸움에서 영양 주민들이 완벽히 승리한 것이다. 승리의 일등공신은 다름 아닌 산양이었다. 공사 현장 인근에 설치한 무인센서 카메라에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1급 야생동물로 법정보호종인 산양이 뚜렷이 찍힌 것이다.
영양 주민들은 풍력발전기 10호기 예정지 인근에 주민이 직접 설치한 무인센서 카메라 3대에 각각 7월, 10월, 11월에 산양이 촬영되었음을 11월 7일 확인하였고, 풍력발전기 6호기 인근에서는 산양 배설물을 확인한 것이다.
이를 근거로 영양 주민들은 공사중지를 위한 싸움에 돌입한 것이다. 산양의 서식처를 기필코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결의에 찬 싸움이다.
증거를 가지고 대구지방환경청장 찾아간 영양 주민들
영양 주민들의 싸움은 지난 11월 15일부터 시작됐다. 15일 오전 9시 영양 주민들은 영양에서 대구지방환경청이 있는 대구까지 그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왔다. 대구지방환경청장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사전에 약속도 잡지 않았다. 무작정 달려와 출근 전인 청장을 기다리기 시작한 것이다.
민원인이 한두 사람도 아닌 16명의 민원인이 좁은 청장실 입구에 진을 치고 서 있으니 대구지방환경청은 '난리'가 났다. 서둘러 그 인원이 다 들어갈 수 있는 회의실을 마련해 민원인들을 그곳으로 안내해 청장과의 대화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주민들은 "공사 현장 인근에서 산양이 발견되었다. 그 증거를 여기 들고 왔다. 그러니 즉각 공사중지 명령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그 근거는 대구지방환경청이 2020년 12월 30일 영양 제2풍력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에서 조건부 동의 협의의견을 낸 데 따른 것이다. 협의의견에는 "사업지 주변지역은 산양·담비·삵·하늘다람쥐 등 법정보호종이 출현하는 지역이므로 공사과정에서 법정보호종의 서식지 등이 발견될 경우, 즉시 공사를 중지하고 관련 대책을 마련하여야 함" 이라고 되어 있다.
따라서 주민들은 대구청의 협의의견에 따라서 산양이 찍힌 사진 자료를 들고 왔으니 당장 공사중지 명령을 내려달란 것이었다. 그러나 행정기관의 행정 집행에는 절차가 있는 법이라며 대구청장은 "당장 공사중지 조치를 내릴 수는 없으니 빠른 시일 안에 공동현장 확인을 하자"고 합의를 본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17일 대구지방환경청, 국립생태원, 한국환경공단, 영양군, GS풍력이 함께 참여하는 현장조사가 있었다. 이날 주민들의 현장 안내로 산양이 찍힌 장소와 배설물을 함께 확인했다. 그렇다면 주민들의 바람대로 바로 현장에서 공사중지 명령이 내려져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하질 못했다. 현장 동행을 한 대구지방환경청 평가과 과장의 입장은 산양 배설물이 정말 산양의 그것이 맞는지 유전자 분석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분통이 터졌다. 현장에서 당장 공사중지 명령이 내려질 것을 기대했는데, 유전자 분석이라니. 영양 주민들이 지난 22일 대구청장을 만나러 다시 대구로 달려온 이유다. 평가과 과장의 말은 못 믿겠으니 청장을 만나 담판을 짓겠다며 22일 오전 10시에 대구청사 앞에 집결한 주민들은 곧장 청사 안으로 들어가 청장실로 향했다.
14명의 주민은 또다시 청장실 앞으로 향했다. 주민들은 청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접견실에 앉아서 또다시 청장이 나타나길 무작정 기다리기 시작한 것이다. 침묵 시위가 시작된 것이다. 두 시간을 꼬박 기다렸다. 드디어 청장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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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움의 기술, 영양주민들은 이렇게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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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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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은 주민들을 외면한 채 빠른 걸음으로 청장실을 나갔다. 나가는 청장을 따라 주민들이 따라붙었다. 송재웅 사무국장은 청장과 함께 걸으며 오늘 자신들이 이곳에 다시 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다 듣고 난 청장은 유전자분석은 "국립생태원의 의견이라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를 보고 공사중지 명령을 내릴지를 판단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다시 확인해주었고, 25일 오전에 10시 30분 정식으로 주민들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청장은 자리를 떴다.
송재웅 사무국장은 다시 주민들을 모아 긴급회의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나온 의견은 25일 청장과의 공식적인 면담 이전에 주민들의 항의의 뜻을 담은 기자회견을 연 후에 청장과의 면담을 가지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25일 오전 10시에 "공사 중지시키지 않고 불법을 눈감아주는 대구환경청은 GS풍력의 하수인가?" 제하의 대구지방환경청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4계절 정밀 조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기자회견 직후 대구지방환경청이 공사중지 조치를 내린 것을 확인한 것이다. 영양 주민들의 끈질긴 싸움의 결과이다. 대구까지 그 먼 길을 한걸음에 달려와 주민들의 목소리를 높인 결과이다.
이 싸움을 이끌고 있는 송재웅 사무국장에게 이번 싸움의 의의와 향후 계획에 대해 물었다.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주민들과 여러 환경단체에서 뜻을 모은 결과이다. 감사드린다. 이제 주민이 참여하는 공동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4계절 정밀환경조사가 필요하다. 그것을 이루어 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기자회견에 함께 참여한 백재호 대구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의 말이다.
"영양 주민들은 일찍이 영양댐을 막아낸 저력이 있는 주민들이다. 그 주민들이 풍력단지로부터 영양의 산과 산양을 비롯한 자연의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이들의 저력이라면 풍력단지를 반드시 막아낼 것이다. 사업자는 지금이라도 이 사업을 철수하고 떠나는 것이 이득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