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반려인의 세계'는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룹니다. 이번 주제는 '반려동물의 성격'입니다.[편집자말]
반려견 여름이와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대형견이 이용할 수 있는 넓은 놀이터가 있어서 주기적으로 가다 보니 여름이는 카페 주차장에 도착하기만 해도 벌써 들떠서 귀가 바짝 선다.

이중문을 열고 입구에 들어가는 순간 여름이는 나와 남편을 돌아보지도 않고 바로 카페 건물 내 카운터로 직행한다. '저 왔어요! 여름이 왔어요!' 평소 여름이를 예뻐해주시는 사장님과 직원 분들에게 달려가서 얼굴부터 꼬리까지 온몸으로 반가움의 인사를 건넨 여름이는 그러고도 자리를 떠나지 않다가 기어코 간식까지 얻어 먹는다.
 
단골 카페의 사장님과 친밀하게 인사를 건네면서 친해지는 사람과, 사장님이 아는 체를 하면서 서비스를 챙겨주기 시작하면 왠지 민망한 마음에 카페를 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단연 후자다. 세상 모든 사람을 불특정 다수와 아주 친한 몇몇으로 분류하는 나에게 여름이의 허물없는 사교성은 때로 당혹스러울 정도다. 여름이와 다니면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 사람인 나보다 사람을 더 좋아하는 리트리버의 성향은 봐도 봐도 놀랍다.
 
MBTI가 알려준 것
 
 사람을 좋아하는 반려견 여름이
사람을 좋아하는 반려견 여름이 ⓒ 박은지

친한 친구가 상담 선생님이라서 전문 검사지로 내 MBTI 검사를 해준 적이 있었다. 한창 인터넷으로 자신의 성격 유형을 검사하는 게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당시 나는 큰 관심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별로 관심이 없고, 나 자신에 대해서는 굳이 검사 같은 걸 하지 않아도 이미 나를 내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기회가 되어 검사를 해보니 내 MBTI 결과는 ISTP였다. 하나씩 따져보니 평소 내가 생각하던 내 모습과 꽤 부합하는 것 같았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에 충전이 되고, 눈에 보이는 걸 중요시하며, 논리를 좋아하지만, 무계획적이다. 그런데 그보다 내 흥미를 끌었던 건 친구의 결과였다. 친구는 ENFP가 나왔고, 재미로 보는 나와의 궁합 결과는 '파국'이었다. 오, 그럴 듯한데?

나와 친구는 가장 가깝고 친한 사이이면서도 성향은 정반대다. 학창 시절에 만나 벌써 17년을 친구로 지내고 있는데 서로의 성격과 취향이 이렇게 다르다는 데 아직도 놀란다. 고백하건대, 20대 초반에는 친구를 보면 너무 답답한 마음에 '도대체 그걸 왜 걱정해?'라든가 '실현 가능성 없는 미래 계획에 매달리지 말고 당장 눈앞의 일부터 생각하면 안 돼?' 하며 쌀쌀맞게 내 생각을 밀어붙인 일도 적지 않았다.
 
친구도 내가 답답한 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마 성인이 되어 만났으면 우리가 이렇게 가까워졌을 리 없다고 서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래도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서로의 속내를 가장 잘 아는 사이이니 서로의 사고방식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게 됐다.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언쟁하고 조언하고 포기하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우리 앞에 꽤나 상반된 MBTI 결과가 놓인 것이다.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우리는 원래 성향이 안 맞는구나! 서로의 다른 사고방식은 이상한 게 아니라 나름대로 각자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었구나.
 
다름을 넘어 가족이 되는 일

 
외향적이고, 사교적이며, 리액션이 좋고, 기본적으로 나의 세 배 정도는 텐션이 높은 사람. 흔히 말하는 '인싸'나 'ENFP' 유형의 밝고 활달한 성격은 함께 있으면 즐겁지만 애석하게도 나의 기를 쪽쪽 빨아먹는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우리 집에도 그런 생명체가 하나 있고, 여름이가 바로 그런 존재라는 걸.
 
내가 처음 여름이와 친해지는 과정은 정말이지 고양이와는 전혀 달랐다.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다가 점차 가까워지는 고양이에 비하면 여름이에게는 애초에 거리라는 게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생후 8개월차에 입양한 여름이는 금방 우리 부부를 기껍게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인 듯, 껌딱지처럼 따라다녔고 손만 닿으면 좋아서 팔짝팔짝 뛰었다(이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관심에 대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여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우리는 한 달 동안 훈련소에 다녔다).
 
내가 여름이의 집요한 눈빛과 격렬한 관심에 적응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집에는 나와 여름이와 고양이들만 남는다. 나에게 몸을 부비면서 애정 표현을 하다가도 이내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 혼자 시간을 보내는 고양이들과 나는 처음부터 잘 맞았다. 지나치지도, 서운하지도 않은 딱 적당한 거리감이 나를 편안하게 했다.
 
하지만 덩치부터 30kg의 존재감을 뽐내는 여름이는 내가 집에서 일하는 내내 뭔가를 원하는 눈빛으로 날 올려다봤다. 심심해 죽겠다는 그 눈빛에 못 이겨 산책을 나가면, 다른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또 친한 척을 하고 싶어 했다. 상황에 이끌려 나는 여름이를 반겨주는 사람들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고, 얼굴이 익으면 여름이 없이 지나가다 만나도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세상에는 나와 다른 존재가 있다

나와는 정말 다른 성격의 반려견을 키운다는 건 때로 나를 당혹스럽게, 혹은 피곤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여름이 덕분에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도 사실이다. 결국 세상에는 나랑 비슷한 사람보다 나와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이 훨씬 많고,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하니까. 

그래도 우리가 다름을 뛰어넘어 함께할 수 있는 건 서로를 이어주는 애정 때문일 것이다. 각자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표현한다는 걸, 각자에게 편안한 방식과 세계가 있다는 걸 우리는 상대방을 사랑하면서 저절로 받아들이게 되기도 한다. 내가 극과 극의 17년지기 친구와 지지고 볶으며 결국은 또 서로의 존재에 위안 받아온 것처럼 말이다. 
 
물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건 여전히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어쩌면 나는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여름이에게 '여름아, 제발 진정해', '일단 앉아, 앉아서 반가워 해'라는 구박을 덜 하는 가족이자 친구가 되어줘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기쁜 일이 있어도 티내어 기뻐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도 있지만, 조금만 행복해도 온몸으로 기쁨을 분출하는 여름이 같은 존재도 있기 마련이라는 걸 있는 그대로 배우려는 노력이 오히려 나에게 필요했던 것도 같다.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루는 콘텐츠.
#반려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 쓰는 개 고양이 집사입니다 :) sogon_about@naver.com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