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진료를 할 의사가 부족하다던데 돈을 많이 주면 하겠다고 하는 의사가 늘어나지 않을까요?"
11월 27일, 오랜만에 모인 저녁식사 모임에서 한 지인이 나에게 물었다. 진보정당에서 나름 전략가로 통하는 분이 이런 질문을 하신다. 텔레비전에서 어제 하루 코로나19로 사망하신 분이 52명, 입원대기자는 1300명을 넘었으며 위중증 환자수 역시 634명으로 모든 것이 역대 최고수치라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의사는 돈을 준다고 쉽게 동원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이렇게 말하면 마치 의사가 돈보다는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들인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의사마다 전문과목이 달라서 돈을 준다고 정형외과 의사, 산부인과 의사가 코로나 환자를 볼 수는 없어요."
이렇게 말하면 전문과목으로 세분화되어 분절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자기 전문분야밖에 모르는 것을 당당하게 여기는 의사들을 옹호하는 꼴이 된다. 코로나 팬데믹 2년이 되어가는데 코로나 치료는 감염내과, 호흡기내과, 소아과 감염전문의가 봐야 한다는 의사들이 아직도 있다.
백년에 한 번 올까 말까한 감염병 대유행 시대에 자기는 코로나는 잘 모르고 코로나 환자는 안 보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의사에게 우리는 과연 의사 자격을 계속 인정해줘야 할까? 좀더 확장해서 우리는 코로나 환자를 안 보겠다는 병원을 과연 병원으로 계속 대우해줘야 할까?
"이미 의사들에게 돈을 많이 주는데 그래도 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에서 모집한 의사들은 이미 상당히 높은 급여를 받으며 코로나전담병원, 생활치료센터, 선별진료소, 백신접종센터 등에서 일하고 있다. 단기 계약직이지만 기존 의사업무에 비해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높은 급여를 줘도 안정적이지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자리에 뛰어드는 의사는 제한적이다.
거의 모든 의사들은 의료기관에 속한 상태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급여를 조금 많이 준다고 해서 일하던 병원을 그만두거나 운영하던 의원을 휴폐업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동원될 수 있는 의사의 수는 제한적이다.
"정부가 그동안 의료계에 손실보상금 명목으로 준 돈이 3조 원이에요. 엄청난 타격을 입을 자영업자들에 준 손실보상금은 2조도 안 되는데 말입니다."
이 설명이 비의료인에게 복잡한 의료계 사정을 직관적으로 이해시키는데 가장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민간병원 94.6% - 공공병원 5.6% 구조
정부는 작년 4월부터 올해 10월까지 19차례에 걸쳐 총 3조 원이 넘는 돈을 손실보상금 명목으로 의료기관에 지급했지만 의료대응 여건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한국 의료는 근본적으로 시스템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우리는 확진자가 조금만 늘어나도 위중증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례를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병원은 94.6%가 민간소유이고 5.4%만이 공공병원이다. 평소에는 존재감이 없고 무시당하던 공공병원들이 코로나가 터지자 전체 확진자의 70% 이상을 치료했다. 다시 말하면 절대다수인 민간병원은 코로나 환자의 30% 미만을 진료한 것이다.
그럼 정부의 손실보상금은 어떻게 분배되었을까? 현재 공공병원인 지방의료원과 적십자병원에 약 15%, 중환자실을 운영한 대학병원에 약 60%가 지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대학병원에는 국립대학병원과 사립대학병원이 모두 포함된다. 거칠게 정리하면 80%의 코로나환자를 진료한 국립대병원을 포함한 공공병원에는 손실보상금의 20%가 지급되고 20%의 코로나환자를 진료한 민간병원에는 80%의 지원금이 지급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절대다수의 민간병원과 소수의 공공병원, 이것이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확진자가 4000명을 넘어가자 의료대응력이 포화가 된 이유이다. 민간병원은 감염병 위기 상황에도 전혀 책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돈벌이 의료'만 지속하고 싶어한다. 자기 병원에서 치료하던 암환자, 장기이식환자, 희귀질환자도 코로나 확진만 되면 가차없이 입원을 거부하고 공공병원으로 보내버린다.
확진자가 급증하자 정부의 행정명령과 여론의 압박에 못이겨 코로나환자의 일부를 치료하기는 하지만 대신 정부로부터 엄청난 손실보상금을 받아내고 있다. 민간병원은 그 규모만큼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력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도 의료인이 동원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민간병원들은 재난상황에도 철저히 영리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의료진들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차라리 3조 원으로 민간병원을 통째로 인수했다면?
현재의 민간병원 94.6%, 공공병원 5.6%의 구조로는 아무리 많은 손실보상금을 의료기관에 퍼부어도 의료대응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지난 2년이라는 시간과 3조 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의료기관에 퍼부었지만 아직도 정부는 민간병원에 병상과 의료인력을 구걸하고 있다. 차라리 이 돈으로 공공병원을 더 만들거나 손실보상금을 준 민간병원을 통째로 인수했다면, 지금보다는 의료대응 여건이 더 나았을 것이다.
공공병원 5.6%는 정말 부끄러운 수치이다. 왜 OECD 국가들이 평균 70%의 공공병원을 운영하고 있겠는가? 심지어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미국도 공공병원이 22%에 달한다. 한 나라의 공공병원 비중은 국가가 국민의 건강을 얼마나 직접 책임지고 개입하고 있는지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OECD 국가들은 많은 수의 공공병원을 운영하면서 국민을 직접 진료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의료를 민간에 거의 다 맡겨놓고 건강보험제도로 의료기관을 통제하려고 하는데, 이제 이 시스템은 한계에 달했다. 근본적 토대가 전문의 중심의 행위별 수가제도이며, 병원 운영주체마저 민간이고, 의료시장, 나아가 의료산업화 되고 있는 한계 때문에 의료인 특히 의사라는 직종에게는 소위 최소한의 직업윤리, 전문가주의, 사회적 책임성이라는 의식조차 희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수가 보상을 해주고 손실보상금을 줘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확진자들이 집에서, 요양병원에서 호흡곤란으로 숨을 헐떡거리며 병상 배정을 기다리고 있다. 얼마전까지 의료관광을 홍보하던 대한민국에서 코로나 환자는 입원할 병상이 없고 돌봐줄 의료진이 없다. 건국 이래 의료는 민간에게 다 내주고 국민건강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 한국 의료의 비참한 민낯이다.
언제까지 민간병원들에게 시설과 장비, 인력, 전문성까지 빼앗겨 코로나환자 치료를 부탁하고 국민의 세금을 보상 명목으로 민간병원에 퍼부어야 하는가? 답은 정해져 있다. 길거리에 보이는 병원 간판의 70%를 국가가 소유하고 직접 운영하면 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 국립중앙의료원 코로나진료의사, 내과전문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