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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충무로 뉴스타파함께센터 1층 북카페 뉴스타파에서 최승호PD를 만났다.
서울 충무로 뉴스타파함께센터 1층 북카페 뉴스타파에서 최승호PD를 만났다. ⓒ 송연주
 
기자를 꿈꾸는 청년이 둘 있다. 이들은 기자가 된 첫날부터 누군가에게 '기레기' 소리를 들을 것이다. 동료들도 있다. 동료들과 함께 매일 수천 건이 넘는 기사를 쏟아낼 것이다. 기레기라는 말에 수치심을 느끼는 동료도 있겠지만 월급이라는 마약이 곧 치료해 줄 것이다. 결국 이들은 '기레기'가 되기 위해 바늘문 같은 언론사 취업문을 열고자 고군분투 중인 셈이다.

이들이 누구냐고? 바로 기사를 쓰는 우리다. 답답하다. 방법이 없을까? 있다.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전직 MBC 사장, 현직 <뉴스타파> PD 최승호를 찾았다. 그는 얼마 전까지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일했다. 지금은 생태계가 파괴된 4대강 복원을 위해 싸우고 있다. 그에게 묻고 싶었다.

'기자들은 왜 '기레기' 소리를 듣나요?', '왜 자본과 권력에서 자유로운 뉴스는 <뉴스타파>에서만 가능한가요?', '왜 수만 명의 기자 중 최승호 같은 언론인을 찾는 건 쉽지 않은가요?'

포털에 올라오는 기사에는 여전히 '베끼기 기사', '복붙 기사', '물어뜯기 기사'가 넘쳐난다. 그에 따라 기자들은 '기더기'로 진화했다. 기득권의 논리를 무한 재생산하고 광고주를 위해 글을 쓰는 기더기.

사회 비판적인 기사는 회자되지 않는다. 독자들은 취향과 욕망에 이끌려 진실 보도는 자극적인 보도에 묻힌다. 현실이 이렇다면 2030세대 언론인의 미래는 어떨까? 이 기자 중에 제2, 제3의 최승호가 나올 수 있을까? 언제나 취재로 바쁜 최승호에게 지난 11월 물었다. 아니, 최승호의 '근성'을 만났다.

시민의 분노를 활용하는 언론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주관으로 전세계 600여 명의 언론인과 함께 <판도라 페이퍼스: 조세도피처로 간 한국인들 2021> 프로젝트 결과물을 지난 10월 보도했다.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주관으로 전세계 600여 명의 언론인과 함께 <판도라 페이퍼스: 조세도피처로 간 한국인들 2021> 프로젝트 결과물을 지난 10월 보도했다. ⓒ 뉴스타파 홈페이지 갈무리
 
- 최근 뉴스타파에서는 '판도라 페이퍼스' 프로젝트를 통해 SM 이수만 대표, 삼성 이재용 부회장 등 부자들의 해외 조세 도피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반향이 크지는 않습니다. 2019년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의 투자 비리 의혹을 수사하면서 온나라가 들끓었던 것과 사뭇 다른 반응인데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이것은 언론이 가진 왜곡된 수익 구조 문제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시장 원리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질 좋은 상품을 삽니다. 상식이죠. 그렇다면 언론도 기사의 질이 좋을수록 더 많은 광고를 받을까요? 천만에요. 광고는 기사의 질과 아무 관련이 없어요.

심지어는 기사를 쓰지 않아야 광고를 더 받습니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조세도피처 이슈를 보도한 곳도 KBS,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시사IN> 등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아예 보도를 안 합니다. 언론사들은 가장 큰 광고주인 삼성과 불편한 관계를 갖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언론의 소비자는 독자가 아니라 광고주입니다. 먹고 사는 게 더 중요하다 보니 재벌의 심기를 거스르는 비리나 사회 구조적 이슈는 외면하고 독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이슈들을 퍼 나르고 제목 장사를 일삼습니다. 그 과정에서 오보가 생겨도 그냥 둡니다. 돈이 되니까요."

- 언론이 '돈' 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언론이 먹고 사는 것에만 집중한 결과, 우리 사회에 끼친 가장 부정적인 영향은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언론사에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은 '분노'입니다. 어떤 문제든 깊이 있게 다뤄 갈등을 해소하기보다 제목 한 줄로 분노와 갈등을 부추겨 조회수를 늘리는 경우가 많아요. 언론은 사회 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분노 기제로 활용하면서 그에 대한 책임은 개개인의 문제로 치환시킵니다. '기회의 공정'을 말하지만, 그 끝에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 거죠.

그 결과 '기회가 공정하면 그 결과로서의 불평등은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지 않습니까? 100명 중 1명을 뽑는 시험을 '공정'하게 치르더라도 단 1명만이 사회의 모든 과실을 차지하고 나머지 99명은 패배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순순히 납득한다는 거예요. 이러한 사회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기회의 공정'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선 '연대'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언론은 사회적 연대를 해체하고 서로 간에 불신이 팽배해지게 하는 담론을 끊임없이 양산하고 있어요. 어쩌면 청년들은 이런 담론을 만드는데 이용당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 언론이 사회적 연대를 해체하고 사람들 간에 불신을 쌓고 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요?
"사회 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광범위한 '연대'가 이뤄져야 합니다. 대표적인 방법이 '노동조합'이죠. 하지만 한국 언론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조중동 같은 상업 언론들은 사회적 연대, 노동조합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아주 오랫동안 쌓아왔습니다. 그 때문에 시민들은 노동조합은 믿고 의지할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 청년들의 입장에선 임금, 복지 등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도 벅찬데 사회 구조적 불평등까지 얘기하기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념 위주의 노조 활동은 '낡은 것'이라는 인식도 있고요. 사회적 연대 구축을 위해선 이들까지 하나로 포용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재 노동조합이 많은 불신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매우 중요한 '연대의 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1987년 6월 항쟁 이후 각 언론사는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언론인들은 노조를 중심으로 '편집권 독립운동'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 결과 언론인 개개인의 자율성을 엄청나게 높아졌습니다. 이제 기업 비리를 취재했는데, (데스크에서) 보도를 못 하게 하면 노조를 통해 사측에 항의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언론탄압이 굉장했을 때에도 노조를 중심으로 저항 운동을 했죠. 당시 저는 해고 당했지만, 노조를 통해 소송을 벌인 끝에 무효 판결을 받았습니다. 임금, 복지 등 청년들이 말하는 문제들도 혼자선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함께 연대해야 하고 그 '연대의 틀'이 노동조합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공영언론을 키워야 하는 이유 
 
 뉴스타파 최승호PD
뉴스타파 최승호PD ⓒ 송연주
 
- 노조 활동이 활발했던 시기를 지나 다시 사주들이 지배력을 발휘하는 시기를 맞으면서 지금의 '괴물' 같은 언론이 된 것 같습니다. 자본과 결탁한 언론의 왜곡된 수익 구조 문제를 지적해 주셨습니다. 해결 방안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해결 방안이 있겠어요? 지금의 언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외부에서 언론을 고치려고 시도하는 이른바 '언론개혁'도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봅니다. 많은 문제점을 가진 언론들은 사영 언론들이고 그들을 개혁하려는 시도는 언론탄압으로 비치겠죠. 국민도 싫어할 겁니다."

- 그렇다고 언론 개혁을 포기할 수는 없는 거 아닐까요?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KBS, MBC, EBS, YTN, 연합뉴스 등 공영언론을 키워야 합니다. 과거의 공영언론은 국민을 통합시키고, 시대 정신을 한 단계 발전시켜주는 질 좋은 콘텐츠들을 많이 생산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지키고 키워주지 못했기에 언론의 공적 영역은 지속해서 줄어들었습니다. 그 결과 일부 공영언론들도 생존에 급급해 자본과 권력에 기생하게 된 거예요."

- 공영언론을 살리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믿음, 그리고 자본입니다."

- KBS는 직원의 57%가 '억대 연봉자'로 밝혀져 논란이 됐고 연합뉴스는 포털 뉴스 전송 관련 부정행위로 포털에서 퇴출당했습니다. 공연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상황에서 믿음과 자본을 요구한다면 시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지배구조를 바꿔 정권이 공영언론 사장을 결정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공영언론이 좋은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도록 수신료를 올려준다거나, 공영 콘텐츠 제작 지원금 등 재정 지원도 해줘야 합니다.

'먼저 개혁을 해라, 다음에 수신료를 올려줄게'라는 논리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순환 논리죠. 결국은 악순환만 계속될 겁니다. (불신의) 굴레를 한 번 끊어줘야 할 때예요. 자본 없이 어떻게 질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삼성 같은 재벌 대기업에 휘둘리지 않도록 재정을 튼튼히 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사회를 위한 공영 콘텐츠를 지속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 공영언론을 제대로 키운다면 어떤 점이 가장 달라질까요?
"시민들에게 뉴스 보는 '눈'을 키울 수 있습니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표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0'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독자들은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에 대한 선호도는 상당히 높지만 '나와 반대되는 관점의 뉴스' 선호도는 최하위 수준이었습니다. 관점이 다른 뉴스에 대한 수용성이 낮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민들은 자기 신념만 강화하고 사회를 균형 있게 보는 눈을 발전시켜 나갈 기회를 잃는 셈이죠.

공영언론의 영향력이 높은 나라들의 독자들은 관점이 다른 뉴스에 대한 수용성도 높더군요. 우리도 공영언론을 잘 키운다면 시민들이 가짜 뉴스에 휘둘리는 문제도 대부분 해결될 거라고 봅니다. 결국 잘 육성된 공영영론은 시민의 의식 수준을 함양하는 동시에 우리 사회에 '좋은 언론'이 있다는 믿음을 싹틔울 것입니다. 이 믿음은 자본과 정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인의 영역을 보장해 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언론은 어쩌면 녹조라떼가 된 4대강? 

"현재 우리나라가 가진 많은 문제들 언론이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같은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을 느낍니다. 언론이 문제를 악화시키기만 하지 해결의 주체가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언론인들조차 이 직업을 그저 월급을 많이 받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면 더더욱 문제지요. 그렇기 때문에 생존에 급급하지 않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더할 수 있는 좋은 공영언론 육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어쩌면 언론은 '녹조라떼가 된 4대강'일지도 모른다. 삼성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합병 찬성' 여론 조성을 위해 약 36억 원에 달하는 언론 광고비를 집행했다. 기업의 광고비와 협찬비가 언론으로 흘러 들어가 언론 생태계를 오염시키고 있다. <머니투데이> 법조팀장 출신 김만배 기자의 대장동 투기 사건만 봐도 무엇이 언론 생태계를 오염시키는지 확인할 수 있다. 언론 생태계의 오염원은 자본과 권력이 제공하는 '돈'과 '힘'이다.

4대강 오염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오염원을 막고 보문을 열어 강물이 흐르도록 하는 것이다. 금강은 막혔던 3개 보의 수문을 열자 생태계가 되살아나고 건강한 하천 생태계를 상징하는 수달도 되돌아왔다. 언론도 비슷하다. 물의 흐름이 멈춰 녹조라떼가 생긴 언론을 살리기 위해 보를 열 사람은 누구일까?

시민이다. 시민들은 오염된 기사를 거부하고, 세금으로 공영언론을 강하게 만들고, 자신이 낸 후원금으로 더 많은 독립언론을 만들어야 한다. 언론 환경을 바꾸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은 수달 같은 기자가 진실 보도를 위해 뛰어다니는 것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기더기나 기레기가 되지 않을 언론 생태계 복원, 최승호가 걸어온 길을 보며 다시금 생각해 본다.
 
 최승호PD
최승호PD ⓒ 송연주

최승호는 누구?

1986년, PD로 MBC에 입사한 최승호는 <PD수첩>을 통해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를 자임해왔다. '황우석 난자 의혹과 줄기세포의 진실(2005)', '4대강 수심 6m의 비밀(2010)', '검찰과 스폰서(2010)'. 그는 시민들이 의심 없이 믿고 있던 진실에 거침없이 의문을 제기했다. 의문이 들면 그 누구라도 찾아갔다.

재벌, 정치인, 검사, 학자 등 기득권 계층이라 불리는 그들을 상대하는 무기는 카메라와 마이크뿐이었다. 언론인 최승호의 인생은 '성역 없는 보도' 그 자체다. 하지만 대가는 가혹했다. 이명박 정부는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그를 짓눌렀다. <PD수첩> 제작진 사찰, 사무실 압수수색, 정부 부처와의 소송,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재. 그는 계속된 언론탄압에도 도망가지 않았다. 되려 그에 맞서 KBS·MBC 양대 공영방송사 총파업에 핵심 역할을 했다. 그리고 해고됐다. 

해직 후 상업 광고와 협찬을 받지 않는 독립언론, <뉴스타파>로 자리를 옮겼다. 자본에 좌우되지 않고, 권력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는 '성역 없는 보도'라는 언론의 '본질'을 계속해나가기 위해서였다. 그는 해직 기간 국가정보원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자백>(2016), KBS·MBC 등 공영방송을 탄압하고 망친 주범과 공동정범을 다룬 <공범자들>(2017) 등 다큐멘터리 영화를 연출한다.

해직 5년 만인 2017년 오랜 싸움이 끝난다. 대법원에서 MBC "파업의 목적이 정당하므로 해고는 무효"라는 판결을 받은 것. 하지만 공영언론 MBC는 이미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진실 보도보다 '진실 보도를 할 수 있는 공영방송'을 만들기 위해 사장이 되었다. 그즈음 MBC는 전사적으로 "그동안 진실을 감추고 왜곡 보도를 일삼았던 보도 행태를 반성한다"는 대국민 사과방송을 내보냈다. 그는 '공영방송 정상화'와 '국민 신뢰 회복'이라는 기치를 내건 MBC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연임은 없었다. 후배들에게 모든 것을 넘기고 2017년 12월 취임 당시 "MBC 사장을 마치면 저널리스트로 돌아가겠다"던 약속대로 최승호는 다시 뉴스타파로 돌아갔다.

약속을 지킨 이유는 간단하다. '4대강 복원'이다. 4대강 사업은 정치 권력에 의해 한국에서 가장 큰 강 네 곳의 환경 생태계를 파괴된 엄청난 사태다. 그는 MBC 피디수첩과 함께 '4대강 10년의 기록, 예고된 죽음'과 '녹조 라떼로 키운 채소에서 발암물질 독소 검출'편 등을 잇달아 제작했다. 최소한 앞으로 어떤 정치인도 떳떳하게 환경 파괴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일은 없어야 했다. 딱 한 번의 집권과 잘못된 정책이 죽인 생명들. 아직 강의 생명들은 전문가와 공무원의 손에 맡겨져 다음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10년에 걸쳐 4대강의 죽음을 보도하는 최승호. 그는 지금도 다음에 올 죽음을 막기 위해 4대 강변에 서 있다.

#최승호PD#뉴스타파#저널리즘#언론개혁#공영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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