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과 여당이 협의할 사안이 아니다."
김종인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자신의 '100조 원 손실보상' 제안에 대해 '나중에'를 말하면서 한 발 물러섰다.
앞서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조선일보>와의 8일 치 인터뷰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자영업자·소상공인의 피해 보상을 위해 "윤석열 대통령 후보가 50조 원 투입을 공약했는데 그것으로는 부족할 것"이라며 "집권하면 100조 원대 투입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신속한 대폭 지원'을 주장해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이를 두고 "진심이라면 환영"이라고 호응했다.
제1야당의 총괄선대위원장의 제안에 여당 대선후보가 긍정적으로 반응하며, 논의의 물꼬가 트이는 듯했다. 하지만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하루 만에 "민주당과의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거리를 두며 진척은 쉽지 않게 됐다.
김종인 "우리가 집권할 때의 대책 방안... 민주당 협상 대상 아냐"
김종인 위원장은 9일 오전 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 모두발언에서 "이미 우리 윤석열 후보께서 50조 원이라고 하는 기금을 형성해서 (코로나19 손실보상) 대책을 갖다가 수립하겠다 이야기를 하는데, 최근 코로나 사태의 진행상황을 놓고 봤을 적에 소위 경제적인 결과가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보다 많은 재원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기에 50조 원을 넘어서 100조 원의 기금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라면서도 "이건 사실 우리 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돼 집권할 적에 바로 코로나 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다가 선거대책으로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민주당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자기네들 하고 협상을 하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아무튼 민주당의 생각과 대처방안이 우리의 생각·대처방안과 같을 수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가 집권했을 적에 우리가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거를 지금 선대위에서 준비하는 과정에 있다는 걸 이해를 해주시길 바란다"라고 관련 발언을 마쳤다. 대선 이후 집권했을 때의 공약 사안이지, 지금 당장 원내에서 협의해서 추진할 사안은 아니라는 뜻이다.
김종인 위원장은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100조 원 건은 야당과 여당이 협의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예를 들어, 우리가 후보가 50조 원 이야기를 했다. 코로나 상황이 지금 굉장히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는데, 추가적으로 자금이 필요하다 하면은 100조 원까지도 할 수 있다는 이런 취지에서 할 이야기를 했다"라고 재차 못을 박았다.
그는 "그건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바로 집권을 할 적에, 코로나로 발생한 제반 문제를 처리하는 내용을 갖다가 거기에 설명해야 한다"라며 "그건 각 당이 같을 수가 없다. 서로 지금 상황에서 협의할 성격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윤 후보가 50조 원 제안은 대선 전 추진도 가능하다고 시사한 상황에서, 선대위의 수장은 '집권 이후'를 말하며 시점이 엇나간 셈이다.
시점 뿐 아니라 방법도 엇박자
손실보상과 관련한 국민의힘의 엇박자는 '시점'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해서도 당의 메시지가 충돌하고 있다.
윤석열 후보는 50조 원 규모의 손실보상과 관련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데 찬성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전날(8일)에도 윤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제가 50조 원 지원 부분에 대해서는 벌써 몇 달 전에 주장을 했고, 그때는 (민주당이) 포퓰리즘이라고 비판을 했다"라며 "지금이라도 필요성을 인식해서 그걸 받아드리고 했다면 참 다행인데, 말만 그렇게 하지 이번에도 예산 반영 안 됐다. 말만 하지 말고 실천을 하라"라고 꼬집었다.
추경에 동의하는 것인지 현장의 기자들이 묻자 "우리 당은 그런 입장"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후보가 자리에서 떠난 뒤 전주혜 대변인은 황급하게 "100% 원내 사안이라, 후보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협의해서 50조 마련해보겠다는 취지이지, 그거(추경 동의)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김 위원장 역시 이날 관련 질문이 나오자 "지금 사실은 예산이 확정이 되지 않았다"라며 "확정이 되고, 내년에 현 정권이 5월 9일에 끝나는 정권 아닌가. 그 사이 '추경을 어떻게 할 거냐' 하는 건 정부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수행할 적에 예산상 필요한 게 있으면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그때 가서 이야기할 상황"이라며 "추경을 미리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민의힘은 여러 채널을 통해 50조 원 규모의 손실보상 기금을 '기존 예산 절감'으로 가능하다는 지적도 해왔다. 내년 예산이 600조 원이 넘게 편성된 만큼, 10%만 절감해도 충분히 예산 마련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이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창수 나라살림센터 소장은 "기본적으로 과도한 예산을 조정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사업의 어떤 예산을 얼마만큼 절감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라며 "단순히 '낭비성 사업'을 줄이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 줄일 수 있다'라고 큰소리쳤지만, 선심성 남발이었다"라며 "예산 낭비는 당연히 안 되는 것이지만, 현실성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