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민당의 줄기찬 투쟁으로 쟁취한 지방자치제 광역의원 선거가 1991년 6월 20일 실시되었다. 재야와 통합으로 신민당 간판으로 치룬 첫 선거였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3당야합으로 지역주의가 철벽을 이루었고 야권이 분열되었기 때문이다.
민자당은 광주시ㆍ전남북ㆍ제주도를 제외한 11개 시도의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으며 특히 부산의 경우 의석 51개 중 50석을 휩쓸었다. 서울에서도 민자당은 의석 132개 중 110석을 차지해 21석을 얻은 신민당, 1석을 얻은 꼬마민주당을 압도했다.
선거결과 민자당은 41% 득표에 65% 의석을 차지하고, 신민당은 22% 득표에 19% 의석, 민주당은 14% 득표에 2% 의석을 얻는데 그쳤다. 야권이 참패한 것은 분열에도 책임이 적지 않았다. 3당야합 당시 합류하지 않은 민주당(꼬마) 간판으로 선거를 치룬 이기택 총재의 민주당 후보와 서울 등 도시에서 겹치면서 함께 패배하고 차점자가 많았다.
신민당 후보는 서울 132개 선거구 중 98개 지역에서 차점으로 낙선(74%)하고, 경기지역은 117개 중 41개 선거구에서 차점 낙선(35%)하였다. 민주당은 서울에서 차점지역이 10개에 그쳐 대부분 신민당 후보가 야권분열로 패배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신민당의 고민은 야권통합의 의지로 모아졌다. 구 민주당인 '꼬마 민주당'의 고민도 마찬가지였다. 구 민주당은 5월의 광역선거 참패 뒤 극심한 내분에 휩싸였다. 광역선거에서 14% 득표에 의석 2%밖에 얻지 못한 것이 당내 분란의 원인이었다.
거대여당에 맞서려면 야권통합밖에 달리 길이 없었다. 국민과 재야의 통합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거세어졌다. 1991년 9월 10일 김총재는 민주당 이기택 총재와 만나 두 당을 통합해 새 정당을 창당하기로 합의했다. 두 총재는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화와 개혁을 지향하는 시대적 소명과 범민주세력의 통합을 요망하는 국민의 여망을 받들어 통합수권 야당의 결성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양당은 순조롭게 통합 작업을 추진했다. 통합당의 당명은 민주당으로 할 것, 김대중ㆍ이기택이 공동대표로 합의해 당무를 처리하되 공동대표 중 연장자인 김대중이 당을 대표해 중앙선관위에 등록할 것, 신당의 지도체제는 최고위원 10명의 집단지도체제로 하되 양측 5명씩 동수로 할 것, 중앙당의 당직 배분은 신민 6, 민주 4의 비율로 하며 재야인사는 각기 지분 내에서 영입할 것 등의 통합 원칙에 합의했다.
9월 16일 두 당의 통합전당대회가 열렸다. 1987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이 분열된 뒤 4년여 만이었다. 이로써 다당체제는 다시 양당체제로 정비되었다. 전당대회에서 김대중은 이기택과 함께 민주당의 공동대표로 선출되었다.
전당대회는 최고위원으로 이우정ㆍ박영숙ㆍ박영록ㆍ허경만ㆍ김현규ㆍ조순형ㆍ이부영ㆍ목요상을 선출하고, 당9역에 김원기 사무총장, 김정길 원내총무, 유준상 정책위원회의장, 조순승 통일국제위원장, 유종근 홍보위원장, 대변인에 노무현을 임명했다.
평민당이 재야그룹 신민주연합당을 흡수ㆍ통합한데 이어 민주당과 당 대 당의 통합을 이룸으로써 야권통합이 성사되었다. 원내 71석과 8석의 두 정당이 1대 1로 통합한 것은 정당사에 일찍이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노태우 정권의 독선독주에 견제 세력이 취약한 데다 6ㆍ20 광역의원 선거결과 타격이 심했던 것이다.「통합선언문」(요지)은 다음과 같다.
통합선언문(요지)
우리는 신민ㆍ민주 양당 그리고 모든 민주세력이 참여하는 범민주 통합수권정당을 결성함으로써 민자당 정권의 장기집권을 저지하고 명년에 기필코 민간 민주정부로의 정권교체를 이룩하고야 말 것이다. 3당야합 이후 수구세력이 자행해 온 역사역행의 통치를 저지시키고야 말 것이며, 어떠한 반민주적 움직임도 국민과의 굳건한 유대를 통해 저지시킬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내각책임제 개헌을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우리는 새로이 창당하는 (가칭)민주당은 조국의 통일과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이다. 망국적인 지역대결 구도를 무너뜨리고 모든 국민의 지지를 받는 국민정당을 건설할 것이다. 그리고 국민의 불신을 받는 낡은 정치가 아니라 새로운 개혁정치를 실현하는 건전야당으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폭력을 반대하고 어떠한 과격주의도 반대한다. 우리 (가칭) 민주당은 언제나 정책과 대안을 가지고 활동하는 정책정당,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과학정당, 당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민주정당을 구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우리는 금융실명제와 토지공개념 그리고 세제개혁 등을 실현시켜 부의 소수집중을 저지하고 경제민주화를 반드시 이룩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든 국민의 지지와 성원 속에서 명년에 있을 국회의원 총선거, 두 개의 지방자치단체장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 성공함으로써, 정권교체를 반드시 이루어내는 명실상부한 수권정당으로 발돋움할 것이다.
그동안의 분열을 딛고 통합수권야당 결성에 합의한 우리는, 상호존중과 호양의 정신위에서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통합작업을 마무리할 것이다. 우리 양당뿐 아니라 참신하고 양심적인 모든 인사와 세력의 동참을 요망하며 망국적인 지역분열을 배격하고 탄탄한 국민기반 위에 서는 수권정당이 될 것을 기약한다. 우리는 민주당의 새 깃발아래 집결하여 이 나라 정치를 소생시키기 위한 책임있고 창의력 있는 활동과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다. 이 시대적 발걸음에 맞추어 모든 민주인사와 지식인, 전문인, 소외계층, 지역인이 다 함께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합심하여 나라 소생의 새 길에 동참하기를 요망해 마지 않는다.
이제 우리에게는 야권의 분열도, 지역의 차별도 없다.
우리는 용기와 희망 그리고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전진해 나갈 것이다.
다시 한 번, 오늘의 통합은 국민 여러분의 위대한 승리라는 것을 말씀드리며, 오늘 통합수권야당 결성을 향해 우리가 내딛는 이 역사적 걸음에 국민 여러분의 뜨거운 격려와 성원이 있기를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평화민주당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