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후밀 흐라발의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주인공 한탸의 인상적인 1인칭 독백으로 시작한다.
"나는 삼십오 년째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한탸는 매일 아침 작업장이 있는 건물의 지하실로 들어가 "폐지를 압축기로 눌러서 파쇄하는 일"을 한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맥주를 마시며 고단했던 하루를 마무리한다. 한탸는 퇴직 후에도 압축기를 사들여 집에서 일을 계속할 계획을 세울 정도로 이 일을 좋아한다. 그는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한탸가 온종일 종이를 압축하고 파쇄하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일하는 도중에도 압축기 옆에서 책을 읽는다. 그러니까 한탸는 한 손으로는 책의 종말을 고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책을 살려내는 일을 한다. 그 결과 한탸는 뜻하지 않게 많은 지식과 교양을 쌓게 되었다. 한탸는 자신의 "뇌가 압축기가 만들어 놓은 수많은 사고로 형성돼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런 자신을 가리켜 한탸는 "나는 상냥한 도살자다"라고 말한다.
한탸의 작업실에 들어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종이 뭉치들은 이미 폐기 처분이 내려진 책들이다. 그 책들은 부르주아 저택이나 성(成)에서 소장했던 장서를 포함한 오랜 기간 이어져 내려오던 인류 지성(知性)의 집적물들이다. 그 안에는 에라스뮈스가 쓴 <우신예찬>, 실러의 <돈 카를로스>, 임마누엘 칸트의 <도덕 형이상학>, 노자의 <도덕경>과 같은 책들도 포함되어 있다. 작업이 끝난 책들은 화물열차로 옮겨져 제지 공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새 종이로 탄생한다.
이렇듯,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책의 죽음과 종말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새로운 책의 탄생과 미래를 예견한다. 그리고 그 책과 운명을 함께하는 인간의 모습을 한탸라는 폐지 압축공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한탸의 작업실로 들어온 세상의 온갖 지혜가 담긴 책들은 시대의 조류와 이데올로기에 따라 그 운명이 갈린다. 195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한탸의 손에 의해 파쇄된 책들은 나치와 관련된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한때 추앙받던 책들이 그 시대의 권력의 종말과 함께 그 힘을 잃고 폐기되는 것을 목격한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 중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부처님이 설파했듯이, "생성된 모든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럼에도 책은 끊임없이 생산된다. 주목할 점은, 지금 시대의 책들은 책으로써 단 한 번의 가치도 인정받지 못한 채 생산되자마자 폐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한 번도 읽히지 않은 책들이 그대로 압축기로 들어간다. 한탸는 새 책들이 "어느 누구의 눈이나 마음, 머리도 오염시키지 못한 채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모습을 쓸쓸하게 바라본다. 이것은 보흐밀 흐라발이 내다보는 책의 미래에 대한 암울한 모습이다.
흥미로운 것은, 책의 운명과 인간의 삶이 닮았다는 점이다. 압축기로 들어가는 책의 운명과 한타의 삶은 비슷한 점이 있다. 한탸는 "삼십오 년간 활자에 찌든 나는, 그동안 내 손으로 족히 3톤은 압축했을 책들과 흡사한 모습이 되어버렸다"라고 고백한다. 한탸의 얼굴은 폐지처럼 눌리고 찌그러진 채 생기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 시대의 힘의 우위를 점하지 못한 책들이 폐기처분 되듯이, 한탸 또한 폐지를 압축하는 새로운 기계의 등장으로 존재의 위기를 맞는다.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자동으로 책을 압축하는 거대한 크기의 기계는 한탸가 하는 일의 스무 배가 넘는 분량의 일을 해낸다. 이 가공할 만한 기계 앞에서 한탸는 할 말을 잃는다. 그리고 곧 일자리도 잃게 된다.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하게 된 한탸는 차라리 거대한 압축기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선택을 한다. 그것이 기계화 앞에선 한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그렇게 한탸는 죽음을 예고한다.
한탸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길 원했지만 새로운 기계의 등장으로 그 바람은 실현되지 못했다. 고독하게 내면으로 침잠(沈潛)하는 삶을 원했으나 세상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것이 한탸의 바깥은 너무 시끄럽고 내면은 고독한 이유다.
한탸는 이런 세상이 "인간적이지 않다"라고 한탄한다. 이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탸는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고, 사고하는 인간 역시 인간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고라는 행위 자체가 상식과 충돌하기 때문이다"라고 중얼거린다. 인간의 사고(思考)에 의해 만들어진 책들도 인간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어느 하나 인간적일 수 없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탸는 역설적으로 바로 그렇기에 이 세상이 "아름답다!"라고 외친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서 인간적이지 않은 것들을 인간적인 것으로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다. 폐지압축공 한탸가 시끄러운 바깥세상과 상관없이 자신만의 작업과 독서로 하루를 채우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일이 또 있을까.
인간은 어떻게 해서든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낼 줄 아는 존재이다. 그것이 이 세상이 끝나버리지 않고 미래로 연결되는 증거일 것이다. 삶은 시시때때로 우리를 시험하고 배반하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은 늘 인간적인 삶을 꿈꾸고 희망한다. 이것이 흐라발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고통과 절망에 대한 냉혹한 인식이요, 동시에 기쁨과 희망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이다.
덧붙임: 체코의 국민 작가로 알려진 보후밀 흐라발(1914~1997)은 공산주의의 감시체제 아래서 창고 노동자, 철도원, 보험사 직원 등 수많은 일을 전전하면서 글을 썼다. 소련 침공 시절에는 그가 쓴 책들이 금서로 분류되기도 했다. 흐라발은 자신의 책 중에서 <너무 시끄러운 고독>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보였는데, 이 책은 "자신의 삶과 작품 전체를 상징하는 책이며, 내가 세상에 온 건 이 책을 쓰기 위해서"였다는 말을 남겼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작가의 브런치에도 올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