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4년 전에 주민센터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색연필화 수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보타니컬 아트 컬러링북>이라는 제목의 책을 가지고 수업을 했다. 선 연습과 면 연습을 하고 인쇄된 꽃 그림을 보고 비슷한 색연필 색깔을 골라서 그림을 완성하는 거였다.
연한 색부터 진한 색까지 겹겹이 칠하면 다채로운 색의 향연이 펼쳐지는 게 신기했다. 꽃잎 하나하나에 섬세하게 색연필 칠을 하면 명암이 드러나고 질감이 느껴졌다. 꽃을 다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은 뿌듯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코로나가 우리 일상을 지배한 지 3년째 들어서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면서 혼자 있는 시간도 늘어가고 있다. 사회적 관계가 소원해지면 외로움과 고독이 찾아오기 마련인데 혼자서도 외롭지 않고 충만하게 시간을 보낼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인 거 같다.
교육의 현장에서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것은 정서 함양에 도움이 되기 때문일 것인데, 그것은 성인에게도 마찬가지다. 혼자 있는 시간에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일상 생활에서 힐링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엄마의 투병 과정을 지켜본 그림
나는 엄마가 췌장암으로 투병할 때 슬픔과 안타까움, 걱정스러움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그림 그리기 DIY세트가 판매되고 있었다. 정물화, 풍경화, 인물화, 명화 등 그리고 싶은 대상을 선택할 수 있고 캔버스 크기도 다양해서 취사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었다.
나는 벽에 걸어 둘 만한 크기를 살펴봤는데 가로 50cm, 세로 40cm 정도가 적당해 보였다. 그림 그리기 세트에는 캔버스와 붓, 아크릴 물감, 스케치 도안 등이 들어있는데 물감 뚜껑에 써 있는 번호의 색을 캔버스에 인쇄된 번호의 면에 칠하면 되는 거였다.
엄마 집에서 돌아와 혼자만의 공간에서 나는 극한의 감정에 휩쓸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색과 면에 집중했다. 물감을 캔버스에 칠하며 슬픔을 다독였다. 빨간색과 흰색을 다 칠하니 꽃이 되고 노란색과 파란색을 칠하니 배경이 되었다. 그렇게 정물화 한 점을 완성했다. 비록 색만 입힌 거지만 캔버스에 액자화되어 있는 그림은 성취감을 안겨 주었다.
그림의 밝은 기운을 아픈 엄마에게 전해 주고 싶어 첫 번째 그린 정물화를 엄마에게 선물했다. 평소에 꽃과 식물 가꾸기를 좋아해서 베란다에 화초를 키우는 엄마에게 꽃 그림이 위로가 되길 바랐다. 엄마는 거실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그림을 걸어두고는 집 안이 훤해졌다며 좋아하셨다.
그 정물화는 엄마 집 벽에 걸려 아픈 엄마를 위로하고 힘들어 하는 엄마를 지켜봤을 것이다. 엄마 집에서 밥 해 먹고 얘기 나누고 엄마가 좋아하는 석류도 먹고 꼬막도 먹으면서 함께 했던 기억들...
추석에 자식과 손녀들 모였을 때 유언으로 하시던 말씀들...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는 밥 한 술 넘기기도 힘들어 하시던 기억들... 이를 악물며 통증을 참아내려 애쓰시던 모습들... 마지막까지 삶의 끈을 놓고 싶어 하지 않으셨던 모습까지도...
엄마는 돌아가시고 다시 내게로 온 그림은 11개월 동안 암 투병 생활을 했던 엄마의 모습을 고스란히 생각나게 한다. 그래서 어느 때는 고통스럽지만 엄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켜켜이 쌓인 추억으로 기억될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한 점의 그림은 내게 아프지만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암 투병하는 엄마를 돌보면서 마음이 힘들거나 슬플 때 나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나 <밤의 카페 테라스>를 색칠했다. 클림트의 <해바라기>와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칠했다. 그림을 그릴 때는 슬픔도 잊고 걱정도 잊고 불안도 잊을 수 있었다. 물감과 캔버스만 바라보면서 하나하나 붓을 움직여 색을 칠해 갔다. 그 당시에는 그림 그리는 동안이 내가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거 같다.
요즘에는 동네 도서관에 갈 때마다 그림 그리는 법에 관한 책을 몇 권씩 빌려 온다. 수채화 그리는 법, 색연필로 그리는 법, 아크릴화 그리는 법, 오일 파스텔화 그리는 법, 드로잉 하는 방법 등 도서관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그리는 방법을 설명한 책들이 많다. 나는 도서관 분류표 회화 쪽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을 살펴보고 내가 따라 그릴 만한 책들을 빌려 온다.
펜 드로잉은 오로지 연필만 가지고 모양을 그리고 명암을 통해 질감을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다. 검정은 하나의 검정이 아니었다. 진하고 연함에 따라 다양한 검정의 스펙트럼을 맛보는 재미가 있다.
코로나 시대, 영혼을 건강하게 살피는 방법
오일 파스텔은 초등학교 때 쓰던 크레용과 질감이 비슷해서 편안하게 다가오는 소재다. 이 색과 저 색을 섞으면서 손이나 도구를 이용해 문지르면서 나오는 색감을 느끼는 재미가 있다.
수채화 그리기 책은 종류가 가장 많다고 볼 수 있는데 처음에는 단순한 그림을 따라하는 책으로 시작해서 점점 단계를 높여가는 편이 지속적으로 그릴 수 있는 방법이다.
색연필도 접근성이 쉬운 재료인데 색연필화는 도서관에서 빌려서 책에 있는 그림을 따라해 보는 것도 좋고 스케치가 어렵다면 색연필 컬러링북을 구입해서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마음이 어지럽거나 많은 생각들이 찾아올 때, 그림 그리기는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비워서 고요함을 가져다 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외로움이나 고독감이 찾아올 때 그림 그리기는 마음을 충만하게 해 주는 효과가 있다.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영혼을 건강하게 살필 수 있도록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