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얼굴 한 번 보아요."
언젠가 카카오톡으로 지인과 메시지를 주고받다 이렇게 말을 건넸는데 상대방의 조심스러운 답변이 돌아왔다.
"네, 그런데 제가 이런 걸 참지 못해서요……. '오랫만'이 아니라 '오랜만'이 맞는 표현이랍니다."
순간 여기저기에 '오랫만'이라고 써 놓았을 종이가 눈앞에서 우르르 쏟아지는 것 같았다. 틀린 표현이라는 걸 모르고 쓰고 있었다. 지인의 지적에 당혹스러웠지만 무척 고마웠다. 부끄러운 만큼 절대 잊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그녀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오랫만'이라고 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쉽게 써먹을 수 있는 맞춤법 책
블로그와 브런치, 온라인 서점 등 다수의 플랫폼에 공개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도 맞춤법을 확인하고 바른 표현을 찾아 쓰는 일에 신경을 쓰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읽고 쓰는 일이 많아지면서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는 단어 중에 잘못된 표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사전을 찾아보는 빈도가 늘었다. 그럴수록 국어에 대한 허술함과 빈약함이 보였고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리송하다 싶으면 사전을 찾아 확인하고 반복되는 단어는 유의어를 찾아 고치는 등 맞춤법이나 언어 사용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글을 완성하면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확인해주는 교정 프로그램의 도움도 받는다. 그런데도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자신 없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 번에 고쳐지지 않거니와 매번 사전을 찾아볼 수도 없으니 일상적으로 빠르게 주고받거나 게시하는 글-문자 메시지나 SNS 등-에는 어딘가 잘못된 표현을 남겼을 것 같고. 이런 고민을 해결해줄 속 시원한 방법은 없을까. 쓸 때마다 애매한 단어, 찾아보면 알겠는데 돌아서면 헷갈리는 단어만 모아 바로 들춰볼 수 있게 만든 책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런 내게 반가운 책을 만났다. 저자가 어학 도서를 만들어 온 경력을 활용하여 사람들이 많이 헷갈려하는 단어부터 다시 정리한 <다정한 맞춤법>(김주절 지음, 리듬앤북스)이다. 바닷가 근처 풀밭에서 한낮의 소풍을 즐기는 여인과 아이를 그린 인상파 화가의 그림을 표지에 실은 이 책은 딱딱한 어학 서적이라기보단 다정한 에세이 책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어렵다고 느끼는 맞춤법은 피하고 싶은 성가신 영역인데 표지 덕에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펼쳐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첫 장부터 눈길을 사로잡았다. '바라/바래', 오랫동안 잘못 알고 써왔던 표현 중 하나다. 딱 걸렸구나 싶으면서 족집게 선생님을 만난 기분. 금세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책은 세 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다. 첫 장 '비슷해 보여도 달라요'에는 '연애/연예', '비치다/비추다', '부딪치다/부딪히다', '애먼/엄한'과 같이 닮았지만 뜻이 다른데 사람들이 자주 혼동하여 쓰는 단어가 실려 있다.
두 번째 장 '이런 단어는 없어요'에서는 설레임, 몇일, 눈꼽, 여지껏 등 국어사전에 존재하지 않거나 어원을 알 수 없는 말, 표준어가 아닌 단어를 알려준다. 이 단어들이 왜 잘못된 표현인지 아리송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바른 표현은 설렘, 며칠, 눈곱, 여태껏이다.
마지막 '검사기가 필요 없는 띄어쓰기'에는 매번 찾아보지 않더라도 적용할 수 있는 띄어쓰기의 기본적인 규칙이 정리되어 있다.
'조사는 그 앞말에 붙여 쓴다'(예 : 지구마저, 지구밖에), '의존 명사(다른 말에 기대어 쓰이는 명사)는 띄어 쓴다(예 : 아는 게 병이다)', '보조 용언은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때에 따라 붙여 씀도 허용한다'와 같이 예시와 함께 굵직한 기준을 제시해주어 염두에 두고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맞춤법은 '이 말은 이렇게 쓰자'는 약속
책의 장점은 쉬운데 재미있다는 거다. 생활 속에서 많이 접했던 상황과 예문을 사용해 이해를 돕는다. '빌어/빌려'를 설명할 때 연말 시상식에서 흔히 듣는 "이 자리를 빌어 누구누구께 감사드린다"를 예로 든다. 자주 들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말이지만 '빌어'는 '기도하다'라는 뜻이라 '빌려'라고 해야 맞다.
때론 품사와 용법을 따져가며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어떡해/어떻게' 파트에서 '어떻게'는 '어떻다'에 '-게'가 결합한 말로 부사이며 '어떡해'는 '어떻게 해'가 줄어든 말로 단어가 아니라 구라는 식의 설명이 그렇다. '어떻게'는 부사, '어떡해'는 구, 그 차이가 확연히 보인다.
이 책을 쓰면서 저자는 '어떻게 하면 독자가 더 빨리 이해하고, 더 오래 기억하고, 더 많이 써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고 하는데 고민에 충실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쉽게 설명해 이해가 빨리 되고 실생활에 많이 쓰이는 예문을 제시해 기억하기 좋다. 재미와 교훈을 오가는 에세이식 문장이 친근하게 국어 문법에 다가가게 해 주고.
다시 보아도 헷갈리는 단어, 새롭게 익힌 단어가 많지만 배운 내용을 앞으로 잘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좋다. 몇 시간 바짝 책상에 앉아 읽었는데 죽이 잘 맞는 다정한 선생님과 우스갯소리도 하며 재미나게 공부한 느낌이다.
'맞춤법은 '이 말은 이렇게 쓰자'는 약속'이라고 저자는 서문에 썼다. 맞춤법은 따라야 하는 귀찮은 규칙 같은 거였지 사람들과 같이 지키기로 한 약속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약속을 잘 지키는 건 사회생활에서 신뢰를 쌓기 위한 기본이다. 약속을 하고 잊어버리거나 매번 핑계를 대며 깨는 사람, 약속 시간에 늘 늦게 나오는 사람은 아무래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언어 사용에 있어 내가 그런 사람이었던 건 아닐까.
글쓰기와 언어생활에서 맞춤법이라는 약속을 더 잘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지. <다정한 맞춤법>이 실천의 길잡이가 되어 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