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말은 아름다운 오류다.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겪은 우리는 알고 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부모와 자식이든, 연인이든, 동료든 간에 정확한 의사표현이 없으면 모든 관계는 꼬인다. 정치인과 유권자라고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도대체 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제대로 말하지 않는가.
달파멸콩? 문파멸공?
윤 후보는 지난 7일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단 7글자의 메시지를 남겼다. 이 글은 9일 오전 11시 기준으로 댓글이 1만 개 달리고, 1200회 공유될 정도로 큰 화제였다. 하지만 경선 기간만 해도 윤 후보는 "(여가부) 폐지 문제는 조금 더 검토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7월 8일)"며 '신중론'을 펼쳤고, 10월에는 여가부 폐지가 아닌 양성평등가족부로의 개편을 약속했다.
입장 자체가 달라졌고, '젠더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까지 나올 수 있는 사안인데도 후보 본인의 상세한 설명이 없다.
그는 다음날 서울시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린 한국 발달장애 아티스트 특별전시회 관람 후 취재진의 질문에 "현재 입장은 여가부 폐지 방침이고, 더는 생각을 좀 해보겠다", "뭐든지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주길 바란다"고만 답했다.
윤 후보는 전시회 관람 전 이마트 이수점을 찾기도 했다. 한 기자는 그에게 최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인스타그램에 중국 관련 기사를 공유하며 '멸공'이란 해시태그를 썼다가 삭제된 일 등과 연관 있는 행보냐고 물었다. 윤 후보는 이번에도 "저희 집 강아지들 간식이 떨어졌고 저도 라면하고 이런 것 좀 사서 먹으려고 (집에서) 가까운 데 다녀왔다"고만 답했다.
이후 AI윤석열과 김진태 전 국민의힘 의원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 AI윤석열 : "오늘은 달걀, 파, 멸치, 콩을 샀습니다. 달파멸콩."
- 김진태 전 의원(국민의힘 이재명비리국민검증특위 위원장) : "윤석열 후보는 이마트에서 달걀+파+멸치+콩을 구입했군요.(문파멸공) 저도 오랜만에 한번 외쳐보고 싶습니다. 다함께 멸공캠페인 어떨까요?"
'달파멸콩, 문파멸공'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달은 문재인, 파는 깨뜨릴 파(破). 즉 문재인을 깨뜨리고 멸공하자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현재로선 제일 그럴 듯한 해석이지만, 정확한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윤석열 후보 본인이나 선거대책위원회가 직접 설명하지 않으니 넘겨짚을 뿐이다.
그런데, 이게 바람직한 선거 캠페인인가.
황당과 분노
선거는 유권자들이 정당별 국정운영 철학과 이를 대표하는 인물의 면모를 비교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자리다. 정치인은 그 한 표를 얻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설명은커녕 '알아서 생각하라'는 식의 메시지라니. 어쩌면 대통령으로 향후 5년간 국민의 삶을 좌우할 인물의 대국민 소통이 이런 식이라니. 기자이기 전에 유권자로서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윤 후보와 국민의힘 본래 생각이 '반문재인'이라지만 '달파멸콩, 문파멸공'에서 드러난 인식도 무례하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든,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든 대한민국 국민이지 산산이 부셔버릴 대상이 아니다. '멸공'이란 표현에 담긴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은 굳이 지적해야 하나 싶을 정도다. 지금은 2022년인데.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 달라. 정말 절반의 국민을 부셔버리길 원하고, '빨갱이'란 말을 다시 꺼내고 싶고, 북한만이 아니라 중국·베트남처럼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중요한 사회주의 국가들과 교류할 뜻이 없다면. 정말 '이대남'만 보고, '밈(meme)'으로 희화화했을 뿐 본질은 극단적인 대립주의와 능력주의인 철학과 가치관을 토대로 나라를 이끌어갈 계획이라면.
이 모든 게 오해라면 말해 달라.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대선까지 남은 두 달 동안 유권자들은 윤석열 후보의 '진짜 생각'을 듣고 결정할 권리가 있다. 그게 유권자에 대한 의무요,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