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울림을 준다. 나 같은 음치도 노래는 좋다. 들으며 흥얼거리거나 어깨를 들썩이기도 한다. 남 앞에서 부르기가 싫을 뿐이다. 스스로를 대중음악 '의견'가라고 부르는 대중음악 평론가 서정민갑씨를 지난달 은평구 연신내역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그가 쓴 책 <음악열애>에서는 그를 이렇게 소개한다.
"대중음악 의견가. 맛있는 빵과 디저트를 사랑한다. 음악의 아름다움이 구현되는 방식과 사회적 역할에 특히 관심이 많다.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고, 스스로 놀라는 글을 쓰고 싶어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한다. 페이스북에 가면 어떤 음악을 들으며 사는지 엿볼 수 있다."
처음부터 평론한다고 말하기 부끄러워서
짐작이 가긴 했지만 왜 스스로를 '대중음악 의견가'라고 했는지부터 묻고 싶었다.
"사실, 대부분 칼럼니스트 아니면 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가 가장 많은데요. 처음부터 평론을 한다고 말하기 부끄러웠어요. 음악을 잘 알고 그래야 되는데, 그러지 않은 것 같고. 또 평론가들마다 생각이 다르잖아요. 작품에 대해 어떤 평론가는 좋다고 하고 어떤 분은 별로라고 하고. 결국 그게 자기 의견을 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론가라는 말도 좋지만 '의견이다'라고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죠. 정답을 말하기보다는 그냥 저의 생각을 솔직하게 꺼내 놓는 사람이지 않을까라는. 평론이라는 게 답이 없는 거잖아요."
권위가 묻어나고 전문가 느낌이 강한 '평론가'보다는 '의견가'라는 표현이 어쩌면 적확한 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한 직업 이름으로 받아들여졌다.
음악 평론가는 어떤 일을 하며 보낼까. 줄곧 음악만 들으며, 좋다 별로다 평가하는 사람일까? 서정민갑씨는, 요즘에는 여기에 더해서 음악계가 어떻게 흘러가고 어떻게 구현되는지 살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사실 음악계는 작품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음악계도 생태계와 같은 셈이다. 제작사가 있고 공연장이 있고 음반이 있고 음악인이 있고 페스티벌이 있고 방송이 있고 유튜브가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돌아가면서 음악계의 모습을 만들어 낸다.
"제가 생각할 때 평론가는 이 전체적인 상황을 조망하면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파악하고 그 변화가 어떤 연관 속에서 일어나는지, 그리고 어떻게 연계를 맺고 이어지는지 관찰하고 분석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 같아요. 일단 받아쓰고 기록하면서 자기만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사람이랄까."
음악 평론가가 하는 일이 조금 더 풍성하게 그려지는 듯하다. 보통 사람들은 음악을 듣거나 고르는 기준이 한두 가지에서 서너 가지라면, 음악 평론가는 그 기준이 더 많고 다양하다는 그의 얘기도 기억에 남는다.
"음악 리뷰는 문학이나 영화처럼 정해진 대상을 콕 집어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어떤 컷을 얘기할 수도 없고, 몇 쪽 몇 째 줄의 어떤 구절을 얘기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감상평의 운명을 벗어나기가 어려운 영역이다 싶죠. 그렇더라도 음악을 이루는 요소들을 될수록 이야기하려고 해요. 음색이나 사운드, 멜로디, 리듬. 아니면 어떤 악기의 등퇴장 이런 부분을 함께 이야기하려고 하죠. 어쨌든 음악은 소리의 집합체이고 소리의 구성물이기 때문에."
시를 쓰고 싶었어요
2004년쯤 대중음악 평론의 길로 들어섰으니 이제 17년 정도다. 소리로 이루어진 음악과 음악계라는 생태계를 글로 말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테다. 그는 고등학교 때 문학 동아리에서 시를 썼다. 한두 번 상도 탔으니 시를 잘 쓴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대학도 국문과를 갔죠. 그랬는데 글을 써야겠다 생각한 사람은 늘 그 생각을 품고 있잖아요. 기회가 안 되거나 능력이 안 되면 포기하기도 하지만, 단념하지는 못하고 그냥 품고 있고. 저는 학교 졸업하고 '민예총(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에서 일했어요. 음악 분과인 '한국민족음악인협회(민음협)'에서 잡다하게 일을 많이 했죠. 단체 일을 하다가 힘에 부쳤어요. 제 경험으로는 비전을 만들어 내지 못하겠다는 생각에 그만두고, 하고 싶던 글을 쓸 생각을 했어요. 문화비평 잡지를 보면서 평론가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죠."
프리랜서로 살면서 평론가의 길로 한 발 한 발 내딛기 시작했다.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에 들어갔다. 마침 이곳에서 대중문화 비평 전문 웹진 '가슴'을 운영하는 박준흠씨를 만났다. 덕분에 웹진 '가슴'에 글을 쓰게 되면서 음악평론 분야에 첫 발을 디뎠다. 박준흠씨를 비롯해 단체 활동할 때 맺어진 인연으로 축제 기획도 하고 원고도 쓰고 심사도 하면서 음악계 여러 일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마따나 그렇게 이 바닥에서 '버텼'다고 한다.
자율학습을 했죠
문화대학원 나왔다고 바로 평론가로서 활동하기란 쉽지 않을 테다. 뒤늦게 뛰어든 길이기에 조심스러운 점도 있었을 테고. 더구나 평론가가 되기 위한 정규 코스가 있지도 않다. 음악 공부뿐만 아니라 문화, 사회, 인문학 등의 공부를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될 듯한데 어떤 공부를 해 왔을까.
"자율학습을 했죠. 음악 관련 책을 꾸준히 읽고, 명반 리스트라고 하는 음악을 장르별로 쭉 들어 보고, 평론에서 좋다고 하는 음악도 찾아 듣고, 좋다는 평론 글도 어떻게 썼는지 살펴 읽고요. 아, 한겨레문화센터 문화비평가 양성 과정도 있었네요. '아트앤스터디'에서 하는 수업도 듣고, 새로운 음악이 나오면 듣고, 공연도 많이 보고, 페스티벌 가서 보고, 음악계 분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쓰는 데 오래 걸렸지만 글을 계속 쓰는 행위도 일이면서 자율학습이기도 하잖아요. 훈련이 되는. 그냥 계속 공부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경력이 짧을 때는 글을 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자신감도 많이 없었다. 먼저 자리 잡은 분들과 견줘 부족하다는 생각과 스스로 요령이나 노하우가 없다 보니 헤매는 시기를 보냈다. 초기에는 독자도 생기겠지만 적도 생기고 놀림감이 되기도 하는 과정이 있었다. 사회생활의 많은 부분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본다.
"항상 새로운 음악을 파악하는 게 자율학습의 기본 같아요. 음악이 계속 바뀌고 음악이 바뀐다는 건 사운드가 바뀌는 거거든요. 평론가는 상주하는 사람이 아니고 자꾸 기다리면서 받아 듣고 받아 적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음악을 해석하는 방식에서 어떤 인문사회과학적인 틀을 자꾸 갱신해야 되는 것 같아요. 같은 사건일지라도 시대가 바뀌면 해석이 자꾸 달라지는 거예요. 이건 살아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이든 사건이든 사람이든."
계속 스스로를 다듬지 않으면 그냥 '옛날 음악이 좋았어'라는 식이 되어 버리거나 새로운 음악이 담고 있는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그의 말이 평론가로서뿐만 아니라 일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새겨 둘 대목이다 싶다. 책도 잘 만든 책이나 좋은 책이 있고, 잘 팔리는 책이 있다. 둘은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음악도 그럴 테다. 그는 좋은 음악을 어떤 기준으로 고를까?
"보통 사람들 귀하고 엄청 다르다 생각지 않고요. 다만 저는 인풋(input)을 자꾸 하는 사람이다 보니 판단하는 기준이 조금 더 다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음악은 일단 제가 들어서 좋은 음악이에요. 다양하게 들어 보면서 저의 기준이 바뀌어 가는 과정에서 더 좋은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고정되어 있지 않은 거죠. 어쨌든 얼마나 좋은 멜로디를 가지고 있는가, 그 멜로디에 어울리는 노랫말과 사운드를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죠. 그걸 통해 인간에 대한, 사회에 대한 인식까지 깊이 있게 보여 준다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사운드나 멜로디만으로도 좋은 노래는 얼마든지 많다 생각해요."
변화를 위해 친절하게 말 걸기
많은 사람들이 음원 사이트 위쪽 순위에 있는 음악을 자주 듣기 마련이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방송에서도 이런 음악을 주로 들려준다. 귀에 익은 음악이 될 수밖에 없다. 잘 만든 음악과 잘 팔리는 음악이 꼭 같지는 않을 텐데, 그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잘 만들어졌고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잘 팔리지 않고 호응이 적은 까닭은 사운드나 장르라는 측면에서 친숙하지 않기 때문일 거고, 친숙해질 수 있는 과정이나 경험이 적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은 친숙한 걸 좋아하지, 좋은 걸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무의식적으로 순위 차트 100위까지는 그냥 듣거든요. 찾아 들으려면 그 너머도 찾아 들을 수 있는데. 그러면 좋은데 다들 너무 바쁘니까…."
동의가 되면서도 이걸 인정해 버리자니 변화나 새로운 무언가를 가져오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죠. 세상을 볼 때도 마찬가지잖아요. 빨리 변하고 더 평등해지거나 자유로워지면 좋겠지만, 안 그러잖아요. 차별금지법이 바로 제정되지 않은 것처럼요. 다만 정치적 올바름이나 음악적인 어떤 정수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굳건하게 자기 뜻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잘 설득하느냐의 문제 같아요.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3퍼센트 사람들이 줄기차게 싸우면 세상이 바뀐다는 거예요. 음악도 그런 구석이 있거든요. 강력하게 그 음악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으로부터 음악이 퍼져 나가는 것 같아요."
덧붙여 그는 사람들이 안 들어 주면 아쉽지만, 사람들을 탓해서는 풀릴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음악이나 좋은 세상을 위해서는 '어떻게 말을 거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주변에 친절하게 말을 걸면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고집스레 옹호하는 자세를 강조하였다.
긴 겨울밤, 서정민갑 추천 음악과 함께
서정민갑씨에게 독자들을 위해 소개하고 싶은 음악인과 작품을 부탁해 보았다.
"좋은 음악이 요새 정말 많아서 쉽지는 않지만, 먼저 '악단광칠'이라는 음악인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황해도 지역 굿 음악과 민속음악을 재편성해서 들려주는 전통 음악팀인데요. 굉장히 흥겹고 사이키델릭(몽롱하고 환각적인)해요.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아서 들어 보면 되게 좋아할 것 같아요. 라이브가 특히 매력적이어서 라이브를 들으면 좋겠다 싶네요."
이어서 그는 이주영이라는 싱어송라이터를 소개해 주었다. 사랑과 이별 노래를 하는데, 정말 애절하다고 한다. 애절해서 마음 깊이 파고드는 음악이어서 추천하고 싶어 했다.
이주영에 이어 그는 김동산이라는 음악인을 권해 주었다. 그가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음악인 중 하나이기에 소중하다는 말을 덧붙여 주었다.
소개받은 김에 어떤 사회적인 주제를 담은 음악인도 소개해 달라고 했다.
"박창근씨라는 가수가 있어요. 그가 10년쯤 전에 <이런 생각 한번 어때요>라는 노래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채식에 대해서, 채식이 굳이 아니더라도 지구의 생명체들과 함께 산다는 점에 대해서 고민을 해 보면 좋겠다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음악인 중에 '데드 버튼즈'라는 밴드가 있는데요. 이들의 음악 안에 채식, 생태주의, 반폭력에 대한 메시지가 좀 많이 담겨 있어요. 최근에 이 데드 버튼즈가 텀블벅을 통해 만든 채식 관련 음반도 있는데, 이걸 들어 보셔도 좋겠네요."
긴 겨울밤, 음악과 함께 보내길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작은책(www.sbook.co.kr)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