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초 일제는 무단통치만으로는 조선을 효과적으로 지배할 수 없다는 정무적 판단으로 이른바 문화정치를 표방하였다. 외형상의 유화정책을 통해 조선민중의 저항의지를 삭이는 한편 민족운동을 분열ㆍ약화시키려는 고도의 식민지 지배정책이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친일파 양성책을 폈다.
새 총독이 된 사이토는 <조선 민족운동의 대책>에서 친일파 양성대책으로 ① 일본에 충성하는 자들을 관리로 임용한다. ② 신명을 바칠 인물을 물색하고 이들을 귀족ㆍ양반ㆍ유생ㆍ부호ㆍ실업가ㆍ교육가ㆍ종교인들에게 침투시켜 친일단체를 만든다. ③ 각종 종교단체에 친일파를 최고지도자로 만들어 어용화한다. ④ 친일성향의 민간인들에 편의와 원조를 제공하고 수재교육의 이름 아래 친일지식인을 대량 양성한다. ⑤ 양반 유생으로 직업이 없는 자에게 생활방도를 마련해주고 이들을 민정정찰에 이용한다. ⑥ 조선인 부호에게는 노동쟁의ㆍ소작쟁의를 통해 노동자ㆍ농민과의 대립을 인식시키고 일본자본을 도입하여 연계를 맺고 매판화시켜 일본 측에 끌어들인다. ⑦ 농민을 통제ㆍ조종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 유지가 이끄는 친일단체를 만들어 국유림의 일부를 불하해주고 수목채취권을 주어 회유한다.
일제는 이같은 정책으로 대지주ㆍ매판자본가를 육성하거나 결탁하여 대정친목회ㆍ유민회ㆍ교풍회ㆍ대동동지회ㆍ대동사문회ㆍ유도진흥회ㆍ조선인소작상조회ㆍ상무단ㆍ조선불교교우원 등 각종 친일단체를 만들었다. 이들은 친일여론 조성ㆍ민족운동 각 분야에 친일세력을 확대시키고 민족분열을 획책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조선총독부는 1925년 5월 치안유지법을 공포, 단체를 조직하거나 가입하기만 해도 처벌토록 했다. 사상범(독립운동가)은 사형까지 내릴 수 있고, 치안유지법을 위반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도울 경우에도 처벌하였다. 또 예방구금령을 통해 이 법을 위반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전에 구속할 수 있었다. 민족운동가들이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만든 것이다.
사이토는 1919년 8월 조선총독으로 부임할 때 서울역에서 강우규 의사의 폭탄세례를 받았으나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래선지 그의 조선통치는 '문화정치'라고 내세우는 구호와는 달리 조선민족의 정신을 죽이고 생활터전을 파괴시키는데 모아졌다.
한 연구가의 분석이다.
1. 약간의 조선인 관리를 등용함으로써 이 방면에 관한 불평을 제거하고 그들의 지배기구 확대강화를 도모할 것.
2. 자문위원제ㆍ지방자치제를 개설하여 유지ㆍ유식불평자들을 그 일당(一堂)에 끌어들이고, 제1차 세계대전 후 세계적 정치사상 풍조의 하나였던 입헌민주정치이념과 그 운영방식에 관한 토론에 열중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시간과 정력을 이 방면에 소모하게 하고, 또한 조선통치에 관한 불평을 들어주는 척하여 그들을 회유함과 동시에 대비하며, 그리하여 또한 약간의 권위와 이권을 던져줌으로써 이른바 그들이 자연 총독정치의 협력자가 되게 만드는 것.
3. 조선인 일반이 갈구하여 마지않는 학교시설을 점차 확충하여 일본 교육을 강화함으로써 민족사상과 민족문화를 말살하고 일본역사ㆍ일본정신ㆍ일본어를 주입 강요하여 조선인 자손들을 반(半)일본인으로 만들자는 것.
4. ① 경제수탈을 급히하여 제1차 세계대전 하의 물가상승으로 약간 윤택해진 조선인 경제를 고갈 핍박하게 만들며, ② 특히 가격정책과 유통경제면의 조작으로 조선인의 고혈을 착취하여 조선인 일반을 생활난의 고해에서 헤매게 하며, ③ 토지조사사업의 여택에 의하여 현대적 거대지주가 된 조선인 지주들의 토지를 미곡거래소의 공개도박 개장 등으로 수탈하자는 것.
5. 임야조사사업으로 조선의 산 총면적의 3분의 2를 수탈하여 그 1을 조선총독부가 관리하고 그 1을 일본인들에게 넘겨줌으로써 국토의 3분의 2를 그들이 차지하자는 것.
6. 그 모든 시책하에 조선인 일반이 조선땅에서 살아나가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조선인을 만주 방면으로 내쫓고 일본인을 조선에 이주시키자는 것. (주석 1)
주석
1> 문정창, <군국일본 조선점령 36년사(상)>, 295~296쪽, 백문당, 1965.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민족대표 33인 박동완 평전]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