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바쁜데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는 말이 있는데 저희는 몸이 두 개인 그런 세상을 만들어보는 비전을 잡고 있다."
6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2'에서 유영상 SK텔레콤 대표가 한 말입니다. 몸이 두 개라니, 복제 인간이라도 만든다는 말일까요?
아바타로 참여하는 가상 세계
SK텔레콤은 현재 메타버스 서비스 플랫폼 '이프랜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메타버스란 '가상', '초월'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 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 가상 세계를 말합니다(시사상식사전). 현재 운영되고 있는 대표적인 메타버스 서비스 플랫폼으로는 이프랜드 외에 로블록스, 제페토, 마인크래프트, 개더타운 등이 있습니다.
메타버스는 이용자 자신을 대신하는 아바타(avatar)가 있다는 것이 기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다릅니다. SNS에서는 '나'를 나타내는 구체적인 형상은 없고 내가 올린 글이나 사진, 영상만 있지만 메타버스에서는 나의 형상인 아바타가 있습니다(아바타의 원뜻이 힌두교·불교에서 신의 화신입니다).
메타버스는 아바타 외에도 정해진 경로 없이 아바타를 움직이는 곳마다 새로운 공간이 열리는 오픈월드,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샌드박스, 운영자와 이용자가 가치를 창출하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인터넷의 뒤를 잇는 메타버스의 시대가 오고 있다"(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라는 말처럼 메타버스는 제2의 인터넷이라 할 정도로 커다란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반면 메타버스는 신기루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메타버스의 세계가 좋아도 모니터 안의 세상일 뿐입니다. 모니터 밖 이용자는 현실에 몸 담고 있으니까요. 마치 영화 <아바타>에서 하반신 마비가 된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 설리가 아바타 프로그램에 접속한 상태에서는 마음껏 뛰어다니다가 접속을 끊고 현실로 돌아오면 여전히 장애를 안고 있듯이.
현실과 뒤섞이는 메타버스
유영상 SK텔레콤 대표가 말한 '몸이 두 개'는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왔습니다. 유 대표는 "지금 저희가 제공하고 있는 메타버스 서비스들은 고객이 아바타로 분장해 메타버스 월드를 돌아다니며 메타버스 세상을 살아가는 구조"라며 "그러나 대부분 생활을 현실 세계에서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메타버스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유 대표는 "여러분은 현실 세계를 살아가고 여러분의 아바타 AI 에이전트(비서)가 메타버스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경험과 학습을 하고 이런 것들을 다시 여러분과 공유하게 된다. 그러면 시간이 두 배가 늘어나고 두 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직은 화두를 던진 단계이지만 SK텔레콤의 AI 에이전트는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가 점점 더 뒤섞이는 쪽으로 메타버스가 발전하리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도 현실과의 접목은 구현되고 있습니다.
메타버스에서는 아바타가 곧 나이기 때문에 아바타가 입는 옷, 아바타가 이용하는 물건이 중요합니다. 이 때문에 아바타에게 옷이나 물건을 파는 사업(D2A, Direct to Avatar)이 성장하고 있습니다. 2022년 전 세계적으로 500억 달러(우리 돈 약 59조 5천 억)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됩니다(티타임즈 TV 2021. 8. 11). 실제 구찌가 내놓은 한정판 디지털 가방은 로블록스에서 4115달러(약 486만 원)에 팔리기도 했습니다(블로터 2022.1.16).
이렇듯 메타버스에서 일어난 매매가 현실에서 돈이 됩니다. 거꾸로 현실이 메타버스에 투영되기도 합니다. 가령 업무 공간 메타버스 플랫폼인 개더타운에서는 아바타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줌과 같은 화상 채팅창이 자동으로 열려 얼굴을 보며 말로 대화할 수 있습니다. 가상세계에 현실의 인물이 끼어드는 것이죠.
아바타가 이용자의 성향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전진수 SK텔레콤 메타버스 CO장은 "평소에 자기랑 다른 성향으로 활동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전반적으로 비슷해요. 평소에 본인이 행동하는 성향들 이런 게 그대로 나타나죠. 현실에서 무례한 사람은 메타버스에서도 무례해요"라고 합니다(티타임즈TV 2021.12.17).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요즘은 웬만해서 급한 일 아니면 음성통화도 잘 안 합니다. 대부분 카카오톡으로 소통하지요. 따지고 보면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사람들은 주로 SNS를 이용해 비대면 접촉을 해왔습니다. 내가 아닌 내가 쓴 글씨(때로는 사진이나 영상)로 교류해온 것이죠.
메타버스 시대에는 현실의 나를 드러내는 시간이 더 줄어들 것입니다. 내 아바타가 다른 아바타를 만나 담소를 나누거나 회의를 하거나 놀 테니까요. 이러다 보면 점점 아바타가 나를 대체하지 않을까요? 영화 <아바타>에서 죽어가는 제이크 설리는 나비족의 의식을 거쳐 완전히 아바타가 됩니다. 분신에 불과했던 아바타가 자신이 되고 자신은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바타도 사람으로 봐야 할까요? 가령, 메타버스에서 다른 아바타를 때리거나 성희롱을 하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아바타인데 어떤 죄로 누구를 처벌해야 할까요?(동아일보 2022.1.10).
메타버스와 현실, 나와 아바타가 섞여 구분이 모호해지는 세상이 곧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출처
티타임즈TV, '이프랜드' 설계자가 말하는 아바타들의 행동 패턴
티타임즈TV, 메타버스가 성공하려면 오픈월드, 샌드박스, 아바타를 알아야 한다
동아일보, 인공지능, 화려함 뒤에 쌓이는 난제들
블로터, 신기루 혹은 신세계 '메타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