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23일, 서울 107만 호 등 전국에 311만 호의 주택을 신규 공급하겠다는 부동산 공약을 발표했다. 정부가 이미 발표한 206만 호 공급 계획에 서울 48만 호, 경기·인천 28만 호, 타 지역 29만 호 등 105만 호를 더했다.
311만 호 공급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번 공약에서 공급량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가격이다.
이 후보는 공공택지에 들어서는 아파트의 경우 인근 시세의 절반 수준 가격에 공급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동안 수도권 집값이 고분양가 아파트의 등장에 따라 급등해왔기 때문에, '반값' 공급으로 안정화를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주택 공급 과잉 논란이 있지만 반값 아파트라는 방향성은 제대로 잡았다는 평가다.
적확한 진단 : 주범은 감정가연동제
이재명 후보는 집값 상승 원인으로 공공택지의 높은 공급가격을 지목했다. 이 후보는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공공주택 용지 공급가격 기준이 박근혜 정부 당시 조성원가에서 감정가격으로 바뀌면서 택지가격이 주변 집값에 연동되어 공공분양주택까지 상승했다"고 진단했다.
공공택지 가격을 책정하는 방식은 원가연동제와 감정가연동제로 나뉜다. 원가연동제란 토지보상비 등 택지의 조성원가를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하고, 감정가연동제는 주변 시세 등을 반영해 가격을 매긴다.
원가가 아닌 시세를 반영하는 감정가연동제를 적용했을 때 상대적으로 택지 공급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2014년 이전까지 정부와 공공기관(LH 등)이 공급하는 공공택지는 대부분 저렴했다. 중산층과 서민들이 선호하는 85m² 미만 주택을 짓는 공공택지는 모두 원가연동제로 택지 가격을 책정했기 때문이다. 85m² 이상 중대형 주택이 들어서는 택지에만 감정가로 가격을 매겼다. 중산층 서민들에게 주택가격을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시절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4년 택지개발업무처리지침 개정을 통해 원가연동제로 공급하는 택지 기준을 85m² 미만 주택에서 60m² 미만으로 대폭 줄였다. 2016년에는 아예 모든 분양주택 택지를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공급하도록 기준을 바꿨다.
국토부가 업무지침을 변경하면서 "분양가가 상승할 우려는 없다"고 장담한 것과 달리 공공이 조성한 신도시의 아파트 분양가는 상승했다. 실제로 지난 2014~2015년 집중적인 분양이 이뤄진 동탄2신도시의 경우 3.3㎡당 평균 분양가가 13.27%(2014년 957만원→1084만원)나 상승했고, 김포한강신도시도 4.02%(2014년 994만원→2015년 1034만원) 상승했다. 당시 경기도 아파트의 평균 분양가 상승률(0.47%)을 훨씬 웃돌았다. 원가보다 높은 주변 시세를 반영해 택지 가격을 책정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3기 신도시 역시 고분양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사전 청약을 진행한 고양 창릉신도시의 예상 분양가(84㎡형)는 6억원대 후반, 남양주 왕숙(84㎡형)도 5억원대 초반 수준이다. 감정가를 기준으로 한 택지가격이 반영된 결과다. 국토교통부는 시세보다 저렴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중산층 서민들이 감내하기 어려운 가격이다.
박근혜 정부의 개악 바로잡기, 국토부 지침만 바꾸면 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토부가 발표한 3기 신도시 사전청약 20개 지구(1만8602세대) 사전청약 분양가는 평당 1669만원이었다. 경실련은 "토지조성원가 등을 그대로 반영한 평균 적정 분양가는 3.3㎡당 1115만원이면 충분한데 LH가 분양가를 과도하게 책정해 막대한 차익을 보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렇게 말 많고 탈 많던 감정가연동제 대신 원가연동제를 전면 도입한다는 게 이재명 후보의 구상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청년원가주택 등 일부 주택에 대해 감정가가 아닌 택지조성가를 반영해 공급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재명 후보처럼 대규모 공급 계획은 아니다.
이 후보는 "공공택지 공급가격 기준을 조성원가로 바꾸고 분양원가 공개 제도 도입, 분양가 상한제 적용 등으로 인근 시세의 절반 정도인 반값 아파트를 대량 공급하겠다"며 "공급과잉이라는 말이 나오더라도 약속을 지키겠다, 저렴한 가격으로 무주택자의 꿈을 이뤄드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공택지 공급 가격을 조성원가와 연동하는 것은 국토부 지침만 바꾸면 된다. 정부의 의지만 강하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후보는 이날 원가를 기준으로 분양가를 책정할 경우 경기도에서 30평형 아파트가 3억원대 분양이 가능하다고 했다.
30평형 3억원대 분양, 가능한지 실제 계산해보자
경기도 성남 복정공공주택지구의 예를 들어보자. 성남시 복정동과 창곡동 일대에 조성될 복정지구는 서울 강남 접근성이 좋아 실수요자들의 관심이 비교적 높은 곳이다. LH의 성남 복정 공공주택지구 자금조달계획에 따르면 복정 지구(전체 면적 7만7750㎡)을 조성하기 위해 들인 택지 조성 사업비는 총 2216억원이다. 토지 한 평(3.3㎡)를 조성하는 데 1505만원의 돈이 쓰였다.
이곳에 용적률 300%인 아파트를 짓는다면, 아파트 분양가 중 토지비는 3.3㎡당 501만원(조성비 1505만원에 용적률 300%를 나눈 값)이 된다. 여기에 분양가상한제의 기본형 건축비 상한(3.3㎡당 687만원)를 그대로 적용하면, 아파트 총 분양가는 3.3㎡당 1188만원, 30평 아파트는 3억5640만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고양 창릉신도시 예정 분양가(6억)의 절반 수준이다. 이 후보는 "공공이 민간 토지를 강제 수용해서 공공 택지로 조성하는 만큼 당연히 (수익을) 국민들께 돌려드리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공공이 반값 아파트의 공급에 나선다면 환영할 일"이라면서 "공공택지를 원가 수준으로 공급하는 것은 정부가 의지를 가지면 할 수 있는데 그동안 왜 하지 못했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은 "공공이 조성한 택지를 원가를 기준으로 한 저렴한 가격에 공급한다는 방향은 옳다"면서도 "원가 주택 공급에 앞서 그동안 LH가 공급했던 아파트들의 원가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제멋대로인 조성원가 기준도 다시 재정비해야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