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는 말은 중국 전국시대 병서 '손자'에서 유래된 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말은 케케묵은 골동품 말이 아니라 21세기 현대전에서도 널리 원용되는 명언이다. 뿐만 아니라 국제외교나 무역 등에서도 금과옥조와 같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세계가 하나 되어야 할 때가 왔다"는 'We are the world'(우리는 세계입니다)라는 팝송이 우리의 귀에 익은 지 오래고, 서울올림픽 때 코리아나가 부른 '손에 손잡고'라는 노래가 온누리 방방곡곡에 메아리쳐진 지도 수십 년이 지났다. 내가 사는 원주 시내 중앙시장에는 아시아 푸드마켓(식자재상)이 두어 곳이나 되며, 이웃 문막공단에 가면 동남아시아에서 온 근로자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이즈음 농어촌 안방은 동남아에서 온 며느리들이 지키고 있는 집이 많다. 시내버스에서도, 그리고 학교에서도 이들 다문화가족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우리는 '지구촌'에 살게 된 지 오래다. 최근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동남아를 오가는 사람들이 한 해 1000만 명에 이르렀단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동남아 출신의 이주 노동자가 없으면 우리 밥상에 농산물과 수산물이 오를 수 없을 정도요, 한때 필리핀 출신 이주자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우리 실생활과 가까워진 동남아시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들의 역사와 문화 등, 실상을 잘 모른 채 며칠의 여행에서 얻은, 혹은 지난날 파월장병들의 참전으로 전하는 수박 겉핥기 식의 얕은 지식으로 그들을 대하고 있는 느낌이다. 더욱이 우리는 일본인들이 '강대국에는 약하고 약소국에는 강하다'는 이중성을 호되게 비판하면서도, 은연 중 동남아인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 그들과의 선린 관계를 먹칠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동남아시아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우리의 중요한 교역 상대국이요, 또한 한국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투자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의 대기업들이 동남아시아에 공장을 두지 않는 기업이 없을 정도로 동남아 진출 붐을 이루고 있다.
아세안 10개국 인구는 6억 6천 만 명으로 세계 3위다. 그 가운데 절반이 30세 이하일 정도로 젊은층이 많다. 게다가 동남아는 석유, 농산물, 향료, 목재 등 풍부한 천연 자원의 보고요, 드넓은 시장에 최근 한류로 우리나라가 앞날 더욱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할 교역 상대국이다.
이론과 현지 사정에 밝은 전문가가 쓴 책
이 책의 저자 박소현은 일찍이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에서 인도네시아어와 역사를 공부하고, 싱가포르에서 본격으로 동남아시아를 수년 동안 공부한 이론과 현지 사정에 밝은 전문가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동남아시아의 10개 나라를 일목요연하게 소개하고 있다.
고대부터 불교문화를 꽃피워 온 미얀마,
교통의 중심지이자 세계적 관광 대국 태국,
바다는 없지만 아름다운 산이 많은 라오스,
앙코르와트와 크메르 제국의 후예 캄보디아,
기나긴 전쟁을 겪고 통일을 이룬 베트남,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앞장서 온 필리핀,
다양성 속에서 통일을 추구하는 인도네시아,
동서양을 이어 주는 길목 말레이시아,
술탄이 다스리는 평화의 왕국 브루나이,
작지만 부강한 도시 국가 싱가포르 등이다.
이상 10개국의 나라를 국기와 지도, 그리고 나라 소개와 역사와 문화 풍물들을 허현경 작가의 일러스트로, 그리고 사진으로 아주 깔끔하게 정리했다. 누구나 알기 쉽게, 동남아 사람들이 봐도 조금도 어색하거나 기분 나쁘지 않게 각 나라를 아주 잘 소개하고 있다.
다소 복잡한 동남아 여러 나라의 역사와 지리를 훌쩍 뛰어넘어 그들의 다양한 종교, 언어, 문화, 음식, 의복, 어린이, 기후, 교통수단, 경제 등을 현재의 시점으로, 특히 실용적 관점으로 오밀조밀 세밀한 필치로 풀어놓았다. 그리하여 동남아 여행자는 물론, 그곳으로 진출하려는 기업인, 외교관, 순례자 등이 기초 자료로 꼭 보고 지참하면 좋을 듯하다.
이즈음 나는 전시의 네덜란드 안네 프랑크처럼 집안에서만 맴돌다가 이 책의 책장을 넘기자 문득 초록의 동남아시아로 후다닥 떠나고픈 생각이 든다. 코로나19가 멎으면 이 책을 들고 상하의 나라 동남아시아의 풍물에 빠져 여러 날 머무르며 역병으로 찌든 몸과 마음을 달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