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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B 청주방송 이재학 피디 2주기를 맞아 3일부터 10일까지 총 6회에 걸친 추모 연재 '이재학, 2주기'를 진행합니다.[편집자말]
 이재학 피디(왼쪽에서 세번째)
이재학 피디(왼쪽에서 세번째)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2020년 2월 4일, 청주방송의 이재학 PD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떠난 지 2년이 됐다. 고 이재학 PD는 다른 정규직 PD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청주방송을 위해 일했다. 그러나 청주방송은 이재학 PD에게 근로계약서를 내미는 대신 그를 개인사업자로 취급하고 정규직 동료들과 차별했다. 그러다가 비정규직 동료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14년 넘게 근무한 그를 해고했다.

이재학 PD는 청주방송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의 소를 제기했고 2020년 1월 22일 패소 판결을 받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억울해 미치겠다. 모두 알고 있지 않는가?"라고 적은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재학 PD가 청주방송의 직원이었고 부당하게 해고되었다는 사실은 그가 죽고 난 후에야 2심 판결로 인정되었다.

재판을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던 방송사

이재학 PD가 죽고 난 직후 57개의 노동단체·시만사회단체가 대책위원회를 만들었고, 나는 'CJB 청주방송 故 이재학 PD 사망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일원으로 그의 행적을 쫓았다. 청주방송을 방문해서 그가 어떤 식으로 일을 했는지 확인했고 동료 및 직원들을 인터뷰했으며 각종 자료들을 조사했다.

소송기록도 꼼꼼히 살폈다. 요즘 들어 이재학 PD가 자주 생각나는데, 그 이유는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하게 된 비슷한 사건에서 MBC문화방송이 보이는 태도가 청주방송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MBC도 청주방송처럼 10년 가까이 일한 방송작가 두 명을 방송 개편을 이유로 해고했다. 두 작가는 2011년 MBC의 공채 시험에 합격하여 2020년 6월 해고될 때까지 MBC의 아침 뉴스 프로그램인 <뉴스투데이>에서 기사를 작성했다.

두 작가는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고, 중앙노동위원회는 두 작가가 MBC의 직원이고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판정했다. 그러자 MBC는 판정에 불복하여 2021년 4월 30일 서울행정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장기간 근무했다는 사실, 방송사에 소속되어 일을 했지만 직원으로 인정 받지 못한 사실, 아무런 잘못 없이 해고된 사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결국 소송으로까지 간 사실 모두 비슷했다. 그런데 이런 점만 비슷한 것이 아니다.
 
 이재학 피디
이재학 피디 ⓒ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재학 PD가 소를 제기한 날이 2018년 9월 11일이다. 그로부터 1년 4개월이 지나서야 1심 판결이 선고되었는데, 그 이유는 청주방송이 서면을 제때 내지 않고 수차례 기일 연장 신청을 했기 때문이다. 담당 변호사의 증언에 따르면, 악의적인 소송 지연 때문에 이재학 PD가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해고되고 이렇다 할 소득이 없이 판결 선고만 기다리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하루하루 심장이 타들어 가기 마련인데, 이러한 행태를 MBC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MBC는 2021년 4월 30일 형식적인 내용의 소장만 제출한 후, 2021년 10월 28일 첫 변론기일이 잡히자 그 직전인 2021년 10월 21일이 되어서야 사실상 소장 수준의 준비서면을 제출했다. 결국 법원은 첫 변론기일을 두 달 후인 2021년 12월 16일로 미뤘다.

그러나 또 다시 MBC는 첫 기일 바로 전날인 2021년 12월 15일 두 작가의 소득을 확인하겠다며 과세정보 제출명령을 신청했다. 두 번째 기일 바로 전날인 2022년 1월 26일에도 7건의 사실조회를 신청했다. 그 사이 중앙노동위원회는 한 건의 답변서와 두 건의 준비서면을, 방송작가들은 네 건의 준비서면과 한 건의 증거설명서를 제출했다. 문서송부촉탁신청도 일찌감치 했다.

신속하게 재판을 끝내기 위해서였는데 애타는 두 방송작가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MBC가 판결이 날 때까지 방송작가유니온과는 단체교섭을 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답했기 때문이다. MBC로서는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기 위해 판결 선고를 늦추려는 속셈인지도 모르겠다.

이뿐만 아니다. MBC는 두 방송작가들을 지시하고 감독했던 선임 차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마찬가지로 이재학 PD 소송에서도 청주방송은 이재학 PD를 감독하고 끝내 해고했던 선임 국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선임 국장의 증언은 청주방송이 승소할 수 있었던 결정적 증거였는데, 진상조사 과정에서 선임 국장의 위증 사실이 밝혀졌다.

재판 과정에서 이재학 PD는, 모든 사람들이 뻔히 알고 있는 내용을 청주방송이 부정하면서 위증을 하는 것에 억울해했고, 청춘을 바쳐 일해 온 청주방송에서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 같아 괴로워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패소 판결을 받게 되자 이재학 PD는 끝내 목숨을 끊었다.

MBC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이재학 PD의 소송기록을 보면서 소송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절감했고, 지금 또다시 두 방송작가의 소송을 대리하면서 유사하게 사건을 몰고 가는 MBC의 태도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MBC가 비정규직을 함부로 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MBC는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결과 근로자성이 확인된 <뉴스외전> 작가들도 최근 해고했다. 같은 방식으로 비정규직 아나운서에게 계약 만료를 통보했고 법원에서 패소하자 복직을 시켰다. 마음대로 프리랜서라 규정하면서 노동법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고, 끝내 소송으로 몰고 가서 비정규직을 두 번 죽이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이재학 PD의 죽음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다. 유족이 끝까지 싸웠고, 지금까지도 또 다른 이재학들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외부의 노동문제는 비판적으로 보도하면서 정작 내부의 비정규직을 외면하는 방송사들의 행태가 점점 알려 지고 있다.

이재학 PD는 참 따뜻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런 그를 나 역시 잊지 않고 있다. 두 방송작가를 대리하여 MBC를 상대로 한 사건에서 꼭 승소해서 이재학 PD에게 '당신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재학PD#청주방송#MBC#문화방송#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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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일하는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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