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표선에 사는 나는 닭을 30마리 가까이 키우고 있다. 개도 함께 살고 있다. 큼직한 풍산개다. 이름은 산이다. 산이가 닭을 공격해서 몇 마리 죽였다. 그럴 때마다 혼내줬다. 별로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산이도 나이가 들었다. 닭장 밖으로 나온 닭을 잡으려 할 때마다 큰소리쳤다. 어느 순간부터 산이가 닭을 못 본 체했다.
이젠 됐다 싶었다. 닭장 울타리를 개방했다. 닭들이 온 마당을 헤집고 다닌다. 마당 한 쪽에 있는 배추밭을 쑥대밭을 만들고 있었다. 배추밭에 울타리를 쳤다. 우리 먹을 배추는 확보했다. 어느 때부터 닭장 안 포란장에 낳는 알 갯수가 적어지고 있었다. 다른 곳에 낳고 있는 것이다.
온 마당을 수색했다. 두 군데를 찾아냈다. 스스로 만든 둥지에 알을 매일 하나씩 낳고 있었다. 알을 꺼내고 골프공을 넣어 주었다. 닭은 내가 꺼내가는 걸 잊어버리고 매일 알을 낳는다. 그래도 평소보다 낳는 알이 적다. 그렇다면 못 찾은 둥지가 있다는 말인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겨울이라 적게 낳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1월 31일 까치설날이었다. 산이를 산책시키고 와서 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감귤밭 입구 큰 돌이 있는 곳에 냄새를 맡더기 갑자기 공격해서 닭을 한마리 물었다. 급하게 큰소리쳐서 닭을 풀어주었다. 닭은 혼비백산 도망쳐버렸다. 그리고 닭이 있었던 곳을 보니, 글쎄, 갓 깨어난 병아리가 3마리 있고, 부화가 막 진행중인 계란이 예닐곱개 있다.
큰일났다. 아깝다. 닭 한마리가 큰 돌이 엄호해주는 좁은 공간에 알을 낳아 모았고, 그것을 품고 품어 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검은색이라 20여일 품었어도 보이지 않았나 보다. 병아리를 살려야 한다. 부화하고 있는 계란도 부화를 완성해야 한다. 절대절명의 위기였다. 골든타임이었다. 병아리와 계란을 급히 닭장 안에 있는 부화기에 넣고 전원을 연결했다. 왜 그렇게 빨리 온도가 오르지 않는지....
갓 부화한 병아리는 체온을 유지해 줘야 한다. 어미닭은 품어서 그렇게 한다. 3일 동안은 대부분 어미 품에 있어야 하고, 그 뒤로도 수시로 품어서 체온을 유지해줘야 한다. 부화기 온도가 점점 올라간다. 안에서 쪼아 일부 깨진 계란도 함께 넣고 부화되기를 기원한다.
개에게 물린 닭은 왠만하면 죽는다. 물린 곳이 치명적인 상처이기 때문이다. 산이에게 물려 있는 모습을 봤으니, 살기 어렵다 생각했다. 그래도 찾아본다. 없다. 풀속, 나무 밑, 창고 아래 등등 아무리 찾아도 없다. 내말 들은 아내도 나와서 찾아 봤으나 없다. 어디가서 쳐박혀 죽었을까?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저 병아리들을 어쩐단 말인가?
2월1일, 설날이다. 잠에서 깨자마자 닭장에 들어가 부화기를 살핀다. 병아리가 4마리다. 그 와중에서도 한마리가 부화했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온도가 30도 약간 넘었다. 부화기 온도는 37.7도로 맞춰 놓았는데,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올라가지 않았다.
나오다 보니 올해 첫 복수초가 밀감나무 밑에 피었다. 복수초는 정말 이쁘다. 겨울에 피니 희소성 때문인지 더 이뻐 보인다. 설날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환하게 웃고 있다.
복수초도 병아리도 설날에 맞춰 세상에 나왔다. 우리를 축복하기 위해서 그럴 것이라고 믿었다. 매화도 봉우리가 막 터질 것 같다. 그러나 걱정이다. 어미닭이 없는 병아리를 우리가 어떻게 키워? 근 두달은 키워야 혼자서 살 수 있을텐데.
어미닭은 어디 갔을까? 혹시나 싶어 둥지에 가봤다. 그런데, 세상에! 둥지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부화시키고 있었던 알이 하나도 없는 그곳에 들어와 앉아 있었다. 개에게 물려 죽을 뻔한 그곳에 알을 마저 부화시키기 위해 돌아왔던 것이다. 죽음도 무섭지 않더란 말인가. 아님 새끼를 돌봐야 하는 어미의 맘이 죽음도 불사한건가?
다행히 개에게 물린 곳이 몽통이 아니라 날개깃이었던 것 같다. 됐다 됐다를 연발한다. 닭장 안 부화기에 있던 부화 진행 중인 알을 꺼내와서 품에 넣어주었다. 병아리는 그냥 두었다. 산이에게는 다시 한번 경고한다. "어미닭을 물면 너도 무사하지 못할 줄 알엇!" 그러겠다고 머리를 조아린다.
다음날인 초이튿날, 둥지를 살피니 병아리 소리가 난다. 몇 마리가 깨어난 것이다. 부화기 안에 있던 병아리 4마리를 꺼내와서 어미닭 품에 넣어 주었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는 듯이 서로 반가워했다. 초사흘날 병아리 소리가 많이 났다. 닭 품을 살펴보았더니 더 이상 부화될 것 같은 알이 없다. 알 2개는 산이 공격을 받을 때 깨져서 살지 못했고, 또 2개는 곯은 것 같았다. 병아리는 모두 8마리였다.
닭장 안에 있던 이동식 포란장을 살피니 덮개가 없다. 길이를 재서 잘라 덮개를 만들었다. 바닥에 톱밥을 깔아 푹신하게 만들었다. 혹독한(?) 제주의 겨울은 병아리가 살기에는 적절치 못하다. 그렇다면 온실 안에서 살게 해야 할 것 같았다. 포란장을 온실 안 한 켠으로 옮겼다. 덮개가 있는 바구니에 어미닭과 부화한 병아리를 넣어 들고 와서 포란장에 넣어주었다.
어미닭은 병아리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며 키운다. 사료와 물을 넣어 주었더니, 어미닭이 병아리들에게 먹으라고 권한다. 꼬꼬꼬하면서 먹이를 물었다 놨다 하면 옆에 있는 병아리가 난짝 먹는다. 물은 병아리들이 알아서 마신다.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한 번 쳐다 보고. 이 공식 그대로 한다.
내가 들어가면 어미닭은 슬금슬금 포란장 안으로 병아리들을 몰고 간다. 절대 급하지 않다. 병아리들이 충분히 따라올 정도의 속도만 낸다. 아무리 무시무시한 놈이 와도 어미닭은 절대 뛰지 않는다. 대단하다. 병아리 키우는 모든 어미닭은 위대하다. 그래서 모든 어미는 위대하다.
병아리들은 1주일이 지나면 몸무게가 2배가 넘게 자란다. 깃털도 나오기 시작한다. 어미닭이 품어주는 빈도가 줄어든다. 2주일이 지나면 거의 품어주지 않는다. 상온에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달이 지나면 병아리들은 지 맘대로 돌아다닌다. 지네들끼리. 그렇다고 어미닭이 그들을 완전히 풀어놓은 것은 아니다. 멀리서 다급한 병아리 소리가 들리면 이때는 쏜살같이 달려가 날개를 벌리고 상대를 위협한다.
그래서 병아리들은 점점 성계가 되어간다. 그 장면이 꼭 단축된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 같다. 영계 시기에 참매의 공격을 받아 두어 마리 잃을 것이다. 고양이 공격으로 또 몇 마리 잃을 것이다. 8마리 중에 과연 몇마리나 어른이 될까? 8마리 다 어른이 되기를 기원한다. 새해 복 많이 받아서 꼭 어른이 되거라, 병아리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