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정국 한복판에서 부상한 한복(韓服) 문화공정(文化工程) 논란을 보면서 든 생각은 두 가지다. 과잉 민족주의에 기댄 언론의 가벼움, 이를 여과 없이 확대 재생산한 정치적 선동이다.
우리 시민들이 중국과 일본에 유독 민감하게 대응하는 건 역사적 피해의식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한류와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이제는 자신 있게 대응할 때도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발끈한다는 건 우리 사회가 넘어야 할 산이다.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한 한복 입은 여성
2022베이징 동계올림픽에 한복 입은 여성이 등장했다. '다함께 미래로'라는 캐치 프레이즈 아래 이 여성은 다른 소수민족 대표와 함께 중국 국기를 들고 입장했다. 우리 네티즌들은 중국 정부가 한복마저 자신들 것으로 만들려 한다며 발끈했다. 중국 정부에 대해 항의를 촉구했지만 황희 문화부장관은 그럴 사안은 아니라며 차분한 대응을 당부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네티즌 사이에서 제기된 과민 대응 정도로 이해됐다. 문제는 이를 자존심으로 확대 해석한 언론과 정치권 대응이 맞물리면서 외교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여야 대선 후보들도 한목소리로 중국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는데, 반중 정서와 표를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중국은 납득하기 어려운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축제를 문화공정으로 이용하는 건 아닌지 답해야 한다"며 강경한 어조로 비판했다. 이어 "김치, 한복, 심지어 스타 연예인까지 언급할 정도로 우리 자존심을 훼손하고 있다"고 했다. 또 페북에는 "문화를 탐하지 말라 문화공정 반대"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또한 "고구려와 발해는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라며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을 비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한푸(漢服)가 아니라 한복(韓服)이다"며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야당은 한걸음 나아가 정부·여당이 소극적‧저자세로 대응하고 있다며 공격했다. 이들은 "우리 정부는 동북공정과 문화침탈에 제대로 항의조차 못했고, 오히려 각종 외교 사안에서는 저자세를 유지해 왔다"고 주장했다. 또 "이재명 후보에게 묻는다. 왜 매번 중국의 부당한 처사에 안이하고 관대한가"라며 몰아붙였다.
반중 정서 자극하는 언론과 정치권
이쯤에서 한복 논란에서 비롯된 반중 정서는 온당한지, 또 언론과 정치권 대응은 바람직한지 돌아보자. 중국은 55개 소수 민족으로 이뤄진 다민족 국가다. '하나의 중국'을 앞세운 그들에게 소수민족 정책은 중요하다. 중국 최대 정치회의 '전인대'에 형식적이나마 소수민족 대표를 초청하는 것도 이 같은 의도에서다.
하물며 자국에서 개최하는 지구촌 축제 올림픽에 소수민족을 초청해 통합 메시지를 띄우려는 건 당연한 시도다. 조선족 대표가 한복을 입고 등장한 건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미국 폴게티미술관에 소장된 '한복 입은 남자'는 이따금 화제에 오른다. 루벤스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을 접한 한국인들 반응은 복합적이다. 서양인이 그린 최초 한국인, 한복의 우수성을 알린 그림이란 반응이 나온다.
1983년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드로잉 작품으로는 최고가인 32만 4,000파운드에 팔리자 은근한 자부심마저 돋우었다. '한복 입은 남자'를 대하듯 베이징올림픽 한복도 "역시 우리 옷이 최고"라며 끝낼 일을 과도하게 키운 건 아닌가 싶다.
네티즌 반응은 그렇다 치자. 반중 정서에 편승해 필요 이상으로 논란을 키운 언론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황희 장관은 "자신감, 당당함을 가질 필요가 있고 바로 잡을 부분은 잡아야 한다"고 했는데, 언론이 부화뇌동한 건 아닌지 아쉬움이 남는다.
정치권 대응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대중국 메시지에 신중을 기해왔던 민주당조차 한복 논란에 뛰어든 건 사려 깊지 못했다. 또 야당은 한복을 입고 개회식에 참석한 황희 장관을 겨냥해 "최소한 국민 자존심도 내려놨다"고 비난했는데, 자존심과 어떤 연관이 있다는 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여야 대선 후보들이 논란에 가세한 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선거를 의식한 행동으로 보인다. 반중 정서에 올라타야 표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인데 무책임하다. 민주당 박찬대 대변인 또한 "해프닝으로 넘기기에는 중대한 문제다. 중국 정부의 문화공정 중단을 요구한다"고 발끈했는데 역시 지나치다 싶다. 집권여당마저 균형감을 상실했다.
억지 문화공정에는 단호하되, 술수에 말려들지 말아야
중국 정부는 '중국몽'을 앞세워 주변 국가를 위협하고 있다. 국가 주도로 역사를 왜곡하고 영토 분쟁을 야기하고 있다. 고려사와 발해사를 자신들 역사라고 우기는 동북공정이 대표적이며, 얼마 전에는 김치마저 자신들이 종주국이라는 궤변을 늘어놨다.
중국정부의 오만과 탐욕을 경계하는 건 당연하며 억지 문화공정에는 단호하게 맞서야 한다. 이와 함께 우리 또한 스스로를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일본이 독도 문제를 분쟁 지역으로 만드는 목적은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기 위해서다. 독도에 이어 김치와 한복도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당연한 우리 것을 놓고 다투다보면 술수에 말려들 수 있다.
문화는 수 천 년 켜켜이 쌓여 형성된 산물이다. 조작하고 우긴다고 바뀌는 게 아니다. 우리 한복(韓服)과 중국 치파오(旗袍), 일본 기모노(着物)는 동아시아 3국을 대표하는 고유 의상이다. 언뜻 보면 비슷한 면도 없지 않지만 각국 문화와 환경에 맞게 정착돼 왔다.
치파오와 기모노가 아무리 예뻐도 우리 옷이 아니듯 한복 또한 중국 '한푸'가 될 수 없다. 그러니 흥분하지 말자. "우리 정부는 꿀 먹은 벙어리. 백주대낮에 보물을 도둑맞고도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있다." 야당의 이런 치졸한 선동에 동의할 국민도 물론 없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전 국회 부대변인)로, 이 글은 한스경제에도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