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열린 제20대 대선 첫 TV토론의 지상파3사 종합 시청률은 39%로 역대 TV토론 중 2위를 기록했습니다. 1위는 법정 TV토론이 처음 의무화된 1997년 제15대 대선 TV토론(55.7%)으로, 그만큼 대선후보들의 정책과 비전을 한자리에서 비교·평가하는 자리를 유권자들이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후 2차 토론 개최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한국기자협회는(주관 JTBC) 4일 여야4당에 TV토론을 제안했고, 4당이 참석의사를 밝히며 8일 2차 TV토론이 성사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5일 실무협상에 나선 국민의힘이 윤석열 후보의 건강상 이유를 들어 일정 연기를 주장하는가 하면 한국기자협회와 JTBC의 정치적 편향성을 문제 삼으면서 토론이 무산될 것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1일 오후 8시 종편4사(JTBC·MBN·채널A·TV조선)와 보도전문채널(YTN‧연합뉴스TV) 2사 등 총 6개 방송사 공동주관으로 개최하기로 결정되었는데요.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언론이 1차 토론과 2차 토론 무산 논란을 어떻게 보도했는지 살펴봤습니다.
TV토론 최대 화제 'RE100과 택소노미'
이번 TV토론 이후 화제가 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RE100'과 '택소노미'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RE100'과 '택소노미'를 언급하며 기후변화 대응과 원전 문제 대응 정책을 물었는데, 윤석열 후보가 'RE100'과 '택소노미'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해 이 후보에게 되묻는 상황이 벌어져 화제가 된 것입니다.
RE100은 2014년 영국에서 만들어진 비영리단체 'RE100'이 기업을 상대로 '기업이 쓰는 전기를 100%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로 충당하자'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애플, 구글, BMW 같은 해외 기업은 물론, 국내에서는 SK나 LG 일부 계열사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택소노미(그린 택소노미)'는 '녹색 분류체계'라는 의미로 환경부는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환경개선에 기여하는 녹색경제활동 분류'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친환경 투자를 위한 가이드'라고 할 수 있는데요. 환경부는 2021년 12월 30일 EU택소노미를 참고한 K택소노미를 발표했습니다. 여기에 액화천연가스(LNG)는 포함됐지만, 원자력발전은 제외됐는데요.
반면 유럽은 2일, 당초 시행 중이던 EU택소노미와 달리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포함하는 새로운 택소노미 안을 발표했습니다. 원자력이나 천연가스가 녹색‧청정에너지라서가 아니라 전력가격 상승이 가져온 영향으로 인해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녹색‧청정에너지로의) 전환기에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RE100과 택소노미 질문, 장학퀴즈식 지식 뽐내기?
토론 직후 언론은 'RE100'과 '택소노미'를 언급하며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를 향해 전문용어 공세를 펼쳤다'거나 '온라인 커뮤니티 반응은 이러했다'는 식의 기사를 냈는데요. <중앙일보> "이재명 'RE100' 전문용어 공세에 '다시 한번…' 되물은 윤석열"(2월 4일 오현석‧박태인 기자)에서는 "이재명 'RE100' 전문용어 공세",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에게) 퀴즈식 질문을 던졌다"고 평가했습니다.
<조선일보> '팔면봉'(2월 5일)에서는 "여 '윤이 RE100 모르는 건 충격적.' 장학퀴즈식 질문 충격(?)에 여 지지층도 뒤늦게 RE100 열공 모드로"라고 전했습니다. 사실상 토론에서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는 물론이고 시민들도 알기 어려운 전문용어 질문을 던졌다는 뉘앙스였습니다.
<한국경제>는 "RE100‧EU택소노미 놓고 '시끌'"(2월 5일 오형주 기자)에서 "토론이 끝난 뒤 SNS 등에선 '알이백이 뭐냐. 진로 이즈백은 알아도' '대선 후보 토론이 장학퀴즈가 됐다'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고 핵심적인 환경정책을 희화화했습니다.
방송도 신문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TV조선은 "여야 '우리가 승리'…상대후보 놓고 '설전'"(2월 4일 김하림 기자)에서 "윤석열 후보에겐 유독 퀴즈 형태의 질문"이 많았다고 평하더니, <39%의 무게>(2월 5일 오현주 기자)에서는 "토론을 누가 잘했는지 판단하기에 앞서 지식을 뽐내듯 상식 퀴즈를 내는 것도, 여기에 연달아 정확히 답변 못 한 것도, 유권자들이 기대한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채널A "왜/이재명은 왜 'RE100'·'택소노미'를 물었나?"(2월 4일 임수정 정치부 차장)에서 동정민 앵커가 "왜 이재명 후보는 이런 어려운 단어를 쓰면서 질문한 것"이냐고 묻자, 임 차장은 "환경을 특별히 생각하는, 그리고 많이 아는 대통령 후보라는 점을 보여주겠다는 것", "(윤석열 후보가) 몰라서 살짝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게 해 준비 안 된 후보임을 알리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습니다.
'RE100·택소노미' 정말 언론에 생소한 개념?
신문‧방송 모두 토론 이후 이재명 후보가 언급한 'RE100'과 '택소노미'의 생소함만 강조하거나 온라인 커뮤니티상 갑론을박만 전했을 뿐, RE100과 택소노미가 우리 삶이나 기후변화 대응 정책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본질에는 집중하지 않았는데요. 언론에게 RE100과 택소노미는 그렇게 생소한 개념이었을까요?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021년 2월 3일부터 1차 TV토론이 열린 2022년 2월 3일까지 6개 종합일간지 및 2개 경제일간지와 지상파3사 및 종편4사 저녁종합뉴스에서 'RE100'과 '택소노미'가 등장한 기사를 살펴봤습니다. 방송은 관련 보도가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신문에서는 관련 보도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경제 이슈를 주로 다루는 <매일경제><한국경제>와 같은 경제일간지에서는 100건이 넘는 보도건수를 보이며 활발하게 보도했습니다.
6개 종합일간지 중에서는 <조선일보> 보도건수가 53건으로 가장 많았는데요. <조선일보>는 얼마 전에도 "원전은 환경보전에 유리"하다는 한국수력원자력 주장을 근거로 환경부가 발표할 K택소노미에 원자력이 포함돼야 한다며 탈원전정책 비판 기사를 실은 바 있습니다(민언련 보고서 "조선일보의 무한 원전사랑, '원전은 무공해 청정에너지' 주장까지").
용어 생소함 부각보다 기후변화 대응책 본질 짚어야
RE100과 택소노미의 생소함을 강조하며 대선후보 간 유불리를 따진 기사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한국일보> "지평선/'RE100'이 뭐길래"(2월 5일 송용창 논설위원)는 "기후위기는 이상 고온과 대규모 화재, 한파 등이 속출하는 지역에선 현존하는 위협"이고 "기후위기 대응이 유럽과 미국 등에선 좌우를 가르는 정치적 쟁점이라는 점에서 다음 토론에서는 용어를 배우는 단계를 넘어 입장을 갖고 논쟁하기 바란다"고 촉구했습니다.
<경향신문> "여적/RE100과 택소노미"(2월 5일 윤호우 논설위원)는 "일반 시민은 몰라도 되지만 대선 후보라면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국가의 안전과 미래에 관련된 안보‧경제‧글로벌 핵심 이슈"이고 "토론은 대선 후보가 이런 중요 이슈에 대해 어떤 판단력을 갖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평가했습니다.
더불어 <경향신문> "아침을 열며/윤석열의 '돈 룩 업'"(2월 7일 박병률 경제부장)은 "RE100, 그린 택소노미, 블루수소는 맞춰도 못 맞춰도 그만인 장학퀴즈 문제가 아니"라며 "차기 정권이 철학을 갖고 세심하게 대응해야 할 국가산업전략"이라고 평하며 본질에서 벗어나 용어의 생소함과 온라인커뮤니티 반응만 강조하는 언론을 꼬집기도 했습니다.
한국기자협회‧JTBC 편향 주장하며 토론 무산시킨 국민의힘
우여곡절 끝에 오는 11일 개최되는 2차 토론은 지난 1차 TV토론 관련 논란과 마찬가지로 성사되는 듯하다 무산되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5일 실무협상에서 나선 국민의힘 황상무 선거대책본부 언론기획단장은 6일 페이스북에 "어제(5일) 협상은 제가 결렬시키고 나왔습니다", "왜냐면, 주최 측인 기자협회가 심하게 좌편향돼 있고, 방송사는 종편 중 역시 가장 좌편향된 JTBC였기 때문"이라며 한국기자협회와 JTBC 편향성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가, 돌연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기도 했습니다.
한국기자협회는 "대선후보 추천 토론회 실무협상 결렬에 대한 입장문"(2월 6일)을 내고 토론 무산 책임이 국민의힘에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국민의힘을 제외한 3당도 토론 무산 책임이 국민의힘에 있다고 비판했는데요. 토론 기피와 책임 논란, 후보 건강 염려 등 역풍을 우려한 국민의힘이 역제안하면서 2차 토론은 11일 밤 8시에 한국기자협회‧종편4사‧보도전문채널2사 공동주최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한편, 2월 7일 한국기자협회 JTBC지회는 한국기자협회와 JTBC 좌편향을 주장한 황상무 단장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사과와 거취 결정을 촉구했으며, 한국기자협회도 황 단장 발언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사과 및 재발방지를 요구했습니다. 황 단장은 실무협상에서의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입장을 내고 재발방지를 약속했습니다.
1차 토론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그 중요성을 체감하면서 2차 토론 무산에 대해 대다수 언론은 국민의힘에 책임을 물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언론사는 책임을 따져 묻기는커녕 보도하지 않거나 책임을 엉뚱한 곳에 돌렸습니다. 2월 6일 지상파3사 및 종편4사 저녁종합뉴스와 2월 7일 6개 종합일간지 및 2개 경제일간지 등 15개 언론사 중 8일 2차 TV토론 무산을 언급하지 않은 곳은 TV조선과 채널A, <조선일보>와 <한국경제>뿐이었습니다.
<경향신문>은 "'2차 4자토론' 반대하던 국민의힘 역풍 거세자 '11일 열자' 역제안"(2월 7일 김상범 기자)에서 "8일 토론회 불참 의사"를 밝혔던 국민의힘이 "토론 기피와 책임 논란 등 역풍이 우려되자 11일을 다시 제시"했다고 전했습니다. "사설/D-30에도 정책은 게걸음, 후보들은 시민 요구에 부응하라"(2월 7일)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조건을 걸어 토론을 회피하면서 표를 달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남은 한 달 후보들은 시민들의 최소한의 바람에 부응해야 한다"고 국민의힘 행태를 비판했습니다.
<한겨레>는 "사설/'TV 토론' 오락가락하는 국민의힘 볼썽사납다"(2월 7일)에서 "(국민의힘이) 보수언론 기자들도 대부분 가입한 국내 최대 언론인단체인 기자협회를 편향적이라고 폄훼한 것도 황당"하다고 지적했으며 "(국민의힘은) 제이티비시에 대해서도 '손석희 사장이 있어 편향적'이라고 주장"했지만 "손 사장은 이미 보도총괄에서 물러나 순회특파원으로 외국에 나가 있다"며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고 일방적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은 더는 국민을 우롱하지 말고 토론 개최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며 "국민들은 토론 내용뿐 아니라 토론에 응하는 자세 또한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는 걸 명심하기 바란다"고 촉구했습니다.
<중앙일보>는 "사설/TV토론 할 때마다 어깃장 놓는 국민의힘"(2월 7일)에서 "(국민의힘이 토론을 무산시키며 언급한) 주최 측의 편향성 운운은 근거가 없다", "TV토론에 대해 유독 윤 후보 측이 이런저런 조건을 달며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TV토론에 나서는 게 부담스러워 그러는 것인가"라며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을 향해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MBN "기자협회 특정 방송사와 단독진행 편향성 논란"
반면 MBN은 "정치톡톡/2차 4자토론 둔 줄다리기"(2월 6일 주진희 기자)에서 2차 토론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무산 책임이 국민의힘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자협회는 다른 방송사와 논의 없이 특정 방송사의 단독 주관으로 진행했고, 이것이 결국 편향성 논란으로 이어진 것"이라며 무산 책임이 한국기자협회에도 일부 있다는 식의 뉘앙스로 전했습니다.
JTBC는 2월 7일 저녁종합뉴스에서 관련 보도 4건을 냈습니다. "이재명 검증 70여 건, 윤석열도 70여 건…성역 없었다"(2월 7일 오대영 앵커)에서는 "(JTBC 저녁종합뉴스 <뉴스룸>은) 대선전이 뜨거웠던 지난 석 달간, 이재명 후보와 관련해 70여 건의 '검증 보도'를 이어"갔으며 "윤석열 후보에 대한 검증 기사 등도 공교롭게 70여 건"이었다며 국민의힘의 JTBC 좌편향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또한 "도대체 무엇이 좌편향되었다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황상무 선거대책본부 언론기획단장을 임명한) 해당 후보의 언론관까지 편향돼 있는 것은 아닌지"라고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TV토론 겨우 1회 열려…무산 책임 엄중히 물어야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열린 TV토론은 2월 3일 단 한 번뿐입니다. 앞으로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정책과 비전을 한자리에서 비교하고 평가할 기회는 11일 열리는 2차 토론과 세 번의 법정 TV토론까지 단 4회만이 남아 있습니다. 잦아들 줄 모르는 코로나19 확산세로 대선후보들과 유권자 간 소통 창구는 더욱 한정돼 있습니다.
<한겨레>가 사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권자들은 TV토론에서 후보들이 보여주는 정책과 비전을 집중적으로 비교하고, 후보들이 토론에 응하는 자세 또한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언론사들은 대선후보들이 토론에서 보이는 정책과 비전을 검증하는 것만큼이나, 토론에 응하는 태도 또한 면밀히 살피고 검증해서 보도해야 합니다. 조선일보‧한국경제와 TV조선‧채널A처럼 토론 무산에 대해 언급하지 않거나, '토론 무산'을 일개 해프닝쯤으로 가볍게 치부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모니터 대상 : 2022년 2월 4일~2월 7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보도 /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1,2부), TV조선 <뉴스9>(평일)/<뉴스7>(주말), 채널A <뉴스A>, MBN <종합뉴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 미디어오늘,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