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학 피디 2주기를 맞이해 오마이뉴스에 추모 연재 [이재학, 2주기]를 진행했습니다. 이기범(언론노조 전략조직실장), 이대로(이재학 피디 동생), 윤지영(공익인권법재단 공감) 한혜원(대구MBC비정규직다온분회) 권순택(언론개혁시민연대)까지 다섯 분이 글을 써 주셨습니다.
지난 2021년 8월에 해산한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피디 대책위(아래 '대책위')에 함께 했던 분들입니다. 대책위 해산 이후 각자의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2주기를 맞아 다시 마음을 모았습니다. 2주기 추모 연재뿐 아니라 추모제와 토론회도 진행했고 많은 분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이재학 피디 사망의 진상규명, 고인의 명예회복, 책임자 처벌을 위해 80여 개의 단체가 함께 했던 대책위는 일단락됐고, 민주노총 충북본부, 언론노조,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추모사업의 기획과 실무를 담당하면서 '이재학 피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몇 가지 추모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연재도 추모사업의 일환이었고, 2주기에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이라며 기꺼이 청탁에 응해주셨습니다. 아마 그 마음이 이재학 피디 2주기를 맞이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었을 겁니다.
'재피'라고 불렸던 그를 추모하는 시간
이재학 피디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 그토록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손 내밀지 못했던 사람들 모두가 그를 잊지 않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실천을 하고, 함께 움직이지 못하지만 연대의 마음을 보내주는 많은 분 덕분에 이재학 피디 2주기 행사를 별 탈 없이 마쳤습니다.
2월 4일 이재학 피디 기일에는 청주방송 대강당에서 2주기 추모제를 진행했습니다. 대강당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은 분이 함께 해 주셔서 긴장했던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청주방송에서 일하는 동료들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동료들에게 추모사를 요청했지만 성사되지는 못했습니다. 이재학 피디가 동료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후 회사의 방해와 위증으로 인한 패소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것을 생각하면 동료들의 추모사가 없는 추모제가 아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CJB청주방송의 경직된 내부 분위기 속에서 노동자들이 나서기란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청주방송뿐 아니라 수많은 방송사 노동자들이 용기 낼 수 있는 현장을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재학아 늘 항상 미안했다. 가슴 먹먹한 시간이었다. 다음 생에는 영광만 있어라, 안녕."
"재학아 더는 아프지 말고 천국에서 잘 지내거라. 형은 너를 항상 잊지 않고 기억할게. 보고 싶구나. 사랑한다."
"늘 보고 싶은 친구, 재피. 다음에도 꼭 친구하자."
"이재학 피디가 남긴 질문을 숙제처럼 품고, 꼭 답을 찾겠습니다."
"차별 없는 일터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추모제 말미에 사람들은 이재학 피디에게 건네는 말을 적었습니다. '재피'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이재학 피디에게 동료들이 남긴 말들, 그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의 메시지들이 모였고 유가족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추모제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재학 피디가 돌아가신 지 2년, 방송현장은 변했나?"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변했다면 어떻게 변했는지, 변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 2주기 추모 행사를 준비하는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이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애썼습니다.
2월 9일에는 이재학 피디 추모 토론회 '이재학 피디 투쟁 이후 방송비정규직 현실과 과제'를 진행했습니다. 최근 방송현장의 무늬만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법원 소송, 노동부 진정을 통해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사례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입니다.
MBC방송작가들 중노위 노동자성 인정, 청주방송 MD 불법파견 인정, YTN 그래픽 디자이너 등 근로자지위확인소송 1심 승소, KBS전주 총국 부당해고 방송작가 노동자성 인정 등 좋은 소식들이 많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재학 피디도 살아 있을 때 항소심 승소해 노동자성 인정, 부당해고 인정 판결문을 받아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러한 좋은 소식은 이재학 피디 죽음 이후에, 그가 온몸을 다해 우리에게 남긴 뜻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재학 피디가 있었기에 많은 노동자가 용기 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2월 9일 토론회는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고 이제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해, 조금 더 집단적인 힘을 모아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자리였습니다. 조직은 어렵고 현장의 투쟁은 요원하기만 현실, 거대한 방송사는 꿈쩍도 하지 않고 노동자성의 형식적 징표를 없애는 기만을 멈추지 않는 상황, 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 또한 기대하기 어려운 지금입니다.
하지만 힘겹게 고군분투하는 방송작가유니온, 방송스태프지부 등 노동조합의 노력, 함께 하는 여러 단체와 활동가들, 법률 투쟁하는 변호사 노무사 동지들... 아직은 어렵고 더디지만 다양한 상상력과 기획, 노력으로 직군을 넘어, 고용형태를 넘어, 시사교양 예능 드라마 등의 분야를 넘어 비정규직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투쟁과 연대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이재학 피디 2주기 추모사업을 마무리하며 언제 올지 모르는 그때, 그 순간에 대한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이재학 피디를 기억하는 일들을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따뜻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