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몸'이 된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은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당을 떠나게 만든 갈등 상대인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최근 '보복' 논란 발언에 대해 "적절치 못했다"라며 "정치적으로 숙련된 사람이면 그런 소리를 안 했을 것이다. 권력에 취해 청와대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문재인 대통령이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 호의적인 것도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는) 실질적으로 보면 자기네들이 원래 추구하려던 민주주의 정신과 반대방향으로 갔다"고, 이재명 후보를 향해선 "문재인 정부보다 더 폭주할 것이 명백하다"는 말을 쏟아냈다.
이 같은 발언은 김 전 위원장이 최근 낸 책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 출판기념회에서 나왔다(
관련기사 : 김종인의 걱정 "이재명·윤석열, 누가 돼도 암울" http://omn.kr/1xaf5 ). 김 전 위원장은 출판기념회에서의 질의응답을 통해 대선을 4주 앞둔 상황에 대한 진단,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 대통령의 자질 및 대통령제의 문제점 등에 대해 본인의 40여 년 정치인생을 토대로 설명했다.
특히 김 전 위원장은 마지막에 '이재명·윤석열 후보에 대한 조언을 부탁한다'는 질문을 받았는데 여기서 "통합정부"를 강조했다. 이는 이재명 후보가 그동안 꾸준히 제시해왔던 공약이다. 김 전 위원장은 "반드시 통합정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당면한 (코로나19) 오미크론 사태부터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처리하려면 대전환이 필요한데 국회에서 여야가 옥신각신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윤 후보와 국민의힘 측에서 나오고 있는 야권 단일화에 대해선 "이미 시기를 많이 놓쳤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단일화는 특정 사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 상당 기간 협의를 거쳐야 성과를 낼 수 있다"라며 "그렇지 않고 막판에 이득을 보기 위해 단일화를 해봐야 의미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아래 이날 출판기념회의 질의응답 전문을 정리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사법부 다시 망가져"
- 윤석열 후보가 "적폐 수사"를 이야기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사과를 요청했다. 어떻게 보나.
"현 정부에 대한 적폐 발언을 보고 선거 과정에서 후보가 할 적절한 이야기인가 상당히 회의를 가졌다. 오늘 아침 문 대통령이 직접적으로 윤 후보에게 사과를 요청했는데, 이게 마치 후보와 현 정부가 맞붙어 논쟁이 되는 사안이 돼버렸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 중 네 사람이나 영어의 몸이 됐고 한 사람은 목숨을 스스로 끊어버렸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그런 식의 보복을 해야 하느냐는 건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내세운 게 적폐청산이었기 때문에 그 연결 과정에서 윤 후보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추가로 김 전 위원장은 출판기념회 후 취재진과 만나 "윤 후보는 이 정부에서 검찰총장이 된 사람"이라며 "후보로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에 대해 내가 보기에 적절치 못했다"라고 말했다.)
- 이번 정부에 대한 소회와 이 정부가 어떤 과제를 남겼는지 답해 달라.
"역대 새로운 정부가 탄생하는 과정을 보면 하나같이 거의 비슷했다. 민주주의를 철저히 지키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이야기하나 실질적 정부 운용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이 정부 초기에 공식적으로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정치권에서 들리던 말을 말씀 드리면 '사법부와 언론을 장악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국정을 운영하더라. 그래서 검찰개혁이란 이름으로 공수처가 탄생했다.
실질적으로 보면 자기네들이 원래 추구하려던 민주주의 정신과 반대방향으로 갔다. 사법부가 소위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골간인데 그 사법부가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다(김 전 위원장은 수사 부분까지 사법부의 영역으로 보고 설명했다 - 기자 주). 우리나라 사법부란 게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권위주의 통치체제 하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1987년 헌법 개정 후 그나마 사법부가 30여 년 동안 정상을 되찾으려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게 이 정부 들어 다시 망가져버렸다.
사법부가 정상적으로 가동되려면 또 30년 가까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공수처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한다. 공수처는 여야가 합의하지 못한 채 극한의 투쟁 속에서 탄생했다. 과연 그렇게 해서 만들었어야 했을까. 그런데 또 납득이 가지 않는 건 야당은 '내가 집권하면 그 기구를 원상으로 돌린다'는 이야길 안 한다는 것이다. 그게 우리나라 정치권의 못된 버릇이다.
한 가지 예를 들겠다. 제가 2016년 민주당 비대위원장을 할 때 방송법 개정안을 내도록 했다. 개정안 골자가 KBS, MBC 사장을 중립적으로 세우자는 것이었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그걸 반대했는데, 그때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가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에게 '미리 이야기하지만 당신네 곧 야당 되니 그때 후회하지 말고 (방송법 개정안에) 반대하지 말라'고 했다. 근데 안 하더라.
그럼 민주당으로 정권이 이양됐을 때 어땠냐. 민주당 정부가 됐으니 당연히 민주당이 고쳐야 할 것 아닌가. 근데 그대로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안 하는 거다. 우리나라 정당사에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돼 왔다.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라고 본다."
- 각 진영이 중도 통합을 통해 내분을 회복하고 지지율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나라 정치권 병폐 중 하나가 뿔뿔이 헤어져 있다가 선거 때만 되면 단일화, 통합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정치를 처음 보기 시작한 게 1963년 (대선을 앞둔) 박정희 군사정부 시절이다. 겨우 야당이 창당됐는데 그 다음에 또 우후죽순 이 사람, 저 사람이 자기 이름을 걸고 정당을 만들더라.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란 사람이 공화당을 만들어 대선에 출마한다고 하니 야당들이 지리멸렬하면 안 될 것 같다면서 대통령 후보 단일화와 야당 통합을 들고 나왔다.
그때 경험에 비춰보면 통합이란 말 자체는 명분상 맞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하더라. 당시 대통령 후보로 죽어도 나가겠단 사람이 두 사람이었다. 한 사람은 윤보선, 한 사람은 허정이었다. 그 두 사람의 단일화 과정을 대한민국에서 내가 유일하게 목격했다. 12시간 동안 (양측의) 네 사람이 앉아 회의를 했는데, 모두 죽어도 양보를 못한다고 하더라. 이후에도 계속 싸움만 했다. 국민들이 새로 생긴 야당에 대한 희망 자체가 없어졌다.
2020년 4.15총선 땐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밖에 나가 있던 유승민씨가 이끌던 당(새로운보수당)과 통합을 했다. 사람들이 보수대통합을 하면 금방이라도 선거를 이길 것 같다고 착각했지만 결국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게 확인됐다.
최근에도 보면 대통령 후보들이 선거 막바지에 단일화를 이야기하고 있는데, 단일화를 하면 들어오는 사람의 표를 다 끌어들일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그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단일화를 하려면 특정 사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 상당 기간 협의를 거쳐야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막판에 이득을 보기 위해 단일화를 해봐야 의미가 없다."
- 이번 대선의 경우 언제쯤 해야 단일화의 효과가 있는 것일까.
"단일화는 이미 시기를 많이 놓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솔직히 단일화를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면 1월 정도에 그 문제가 거론돼 (지금은)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어야 한다. 후보 등록일이 불과 며칠 안 남았는데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할까. 굉장히 회의적이다.
- 단일화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과거 노태우 시절 3당 통합 때를 돌이켜보자. 어떤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의회 다수가 필요해 통합하는 것이 아닌, 숫자만 합해 의회를 맘대로 끌고 가려는 합의는 의미가 없다. 국민들이 금방 안다. 1990년대 초 (3당 합당 때) 당시 호남 빼고 전 지역이 연합한 것 아닌가. 그래서 (당시 국회 의석의) 2/3를 훨씬 넘겼다. (직후) 14대 총선을 앞두고 저도 정부 안에서 선거 상황을 보고 있었는데 당시 정보기관 예측으로 (여당) 180석을 이야기하더라.
내가 판단하기엔 도저히 과반도 안 될 것 같은 상황이었다. 나는 나대로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저 사람들 믿지 말라'고 했는데 (정보기관은) 내일 선거면 오늘까지도 그런 이야길 하는 거다. 나는 '두고 봅시다'라고 말했는데 결국 과반도 못 차지했다.
국민들이 너무 잘 안다. 무도하게 그냥 어느 한 지역(호남)을 빼버리고 합쳐버리면 영원히 그렇게 갈 것 같나. 우리 유권자들이 더 현명하다. 내가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치렀던)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그걸 느꼈다. 전반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여러 상황을 보면 여당이 이길 수 없는 선거였다. 네거티브 해봐야 먹히지 않는 선거였다. 서울에 540여 개 동이 있는데 여당이 겨우 4개 동에서 승리하고 다 졌다.
과거 집권여당이 서울의 큰 선거에서 패하면 그 다음 정권 자체가 유지되지 않는다. 선거 끝나고 여당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무엇 때문에 졌는지 알고 반응했어야 했는데 준비를 못하더라. 하지만 야당도 어떻게 승리했는지 알고 그걸 바탕으로 대선을 준비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선거가 혼탁한 것이다."
"최근 호남 민심 좀 달라져"
- 책을 통해 측근이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측근 없이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건 대통령으로서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일정한 자격으로 참모와 각료가 다 있는데 측근이 필요할 이유가 없다. 솔직히 나도 한때 대통령 측근으로 있어봤지만 측근이 양심적이지 않고 자기 관계에 사로잡히면 결국 망해버린다.
예를 들어 박정희 시절에 육(영수) 여사 돌아가시고 경호실장으로 차지철 같은 사람을 데려다 놨다. 막스 베버가 '일을 하기 위해선 자기 주변 사람이 필요한데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의심하라'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차지철 같은 경호실장 말만 믿으니까 (여러) 정보가 통하지 않고 한쪽만 쫓다가 결국 실패하고 만 것 아닌가.
측근이란 게 일시적으론 자기에게 좋을지 몰라도 절대로 (있어선) 안 된다. 내가 이런 이야길 해도 될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노태우 전) 대통령 모실 적에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한 세 사람쯤 되는 것 같다'고 하니 대통령이 화내면서 '무슨 그따위 소리를 하냐'고 하더라.
그래서 '대통령만이 임명할 수 있는 자리에 대해 (측근들이) 여긴 내 거, 저긴 네 거 하고 있으니 그 사람들이 대통령 아니냐'라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인사가 이뤄지고 이권이 배분되면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측근을 제대로 관리하거나 측근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때 수도권 정당과 호남으로의 외연 확장을 강조했다.
"(2020년 총선에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수도권에서 참패했다. 수도권 사람들이 '너네 존재할 수 없다'고 이야길 해준 것이다. 야당을 소생시키기 위해 서울과 경기의 투표 성향을 분석했다. 당시 서울시 투표성향을 보면 대표적으로 종로에서 이낙연과 황교안이 20%p 차이를 보였다. 양당 대표급이 겨뤄 그런 것이니 상당한 격차다.
수도권, 특히 종로구 이런 데에 호남 출신이 많다. 서울에 호남출신이 34%라고 한다. 그 사람들이 '김대중 이후 오랜만에 호남의 다크호스로 이낙연이 나왔다'고 생각해 표를 몰아준 것이다. 그동안 공화당, 민정당, 한나라당 시절(모두 국민의힘 전신)을 쭉 보면 호남은 배제하고 다른 데만 갖고 선거를 치러도 된다는 사고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호남 사람들이 단순히 호남이라는 지역에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서울경기, 심지어 부산 이런 데까지 퍼져 있다.
과거 정부에 있을 때 관계자들이 '서울 인구가 늘어나는데 (늘어나는 인구 중 대부분이) 왜 호남 사람이냐'고 탄식하더라. 내가 '호남에서 먹고살기 힘드니 전부 몰려오는 곳이 서울 아니냐'고 답했다. 호남 지역만 생각하면 고립시킬 수 있겠지만, 전국에 걸쳐 사는 호남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않고선 선거에서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보수정당이) 5.18묘역에 가서 사과도 하고 수해 났을 적에 도움도 주고 그랬던 것이다. 최근 호남 민심이 조금은 달라졌다고 본다."
- 출산율과 자살률을 강조해왔는데, 미래를 위해 단순 GDP가 아닌 출산, 자살, 고용, 빈곤에 대해 더 고민하고 목표를 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가)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어 놨다. 국민총소득이 3만5000달러 정도 되니까 경제적 선진국임엔 틀림없다. 그런데 각종 사회 지표를 보면 선진국이 아니다. 자살률이 OECD 평균에 두 배를 넘고 출산율과 빈곤율도 큰 문제다.
사회갈등의 경우 최근 <한국일보>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80%가 우리 사회를 갈등 구조로 보더라(실제로 88.7%). 이걸 전면적으로 혁신하지 않으면 선진국의 방향에 맞게 나아갈 갈 수 없다. 다음 정권을 잡을 분들이 그것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출산율 문제는 금방 해결할 수 없다. 단순히 돈 몇 푼 준다고 높아지는 게 아니다. 1989년 보건사회부 장관으로 10개월 정도 일했는데 그때 막 취임해 보고를 받으니 출산율이 1.9명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산아제한 그만하라'고 했더니 이튿날 언론으로부터 '인구 많아서 걱정인데 무슨 소리냐'고 되게 얻어맞았다.
그때만 해도 인구와 경제의 관계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보건사회부장관이 연금과 건강보험을 관리할 책임자인데, 둘 다 인구 구조와 맞지 않으면 운영이 안 된다. 아무리 연금개혁을 해도 인구가 줄어가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인구가 줄어드는데) 연금개혁 100번 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각종 사회지표를 정상화시키려면 나라의 전반적 쇄신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 이런 거 다 안 된다. 내가 판단할 때 우리나라는 현재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초입 단계에 있다. 전반적 쇄신이 없으면 G5이고 G4고 없다. 근데 이런 이야길 하는 대통령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 대선 때 그런 이야기 하는 후보를 봤나. 대통령 되실 분들이 냉정한 인식을 갖고 임해야 한다."
"남녀갈등, 급급하게 생각하면 더 심해져"
- 남녀갈등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보나.
"최근 젠더문제로 인해 20대를 기준으로 남성과 여성이 극한으로 대립하고 있다. 근데 20대만을 대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21세기 들어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게 여성의 사회진출이다. 경쟁에서 남성이 여성에 밀리고 있는 시점이라 20대 남성들이 여성들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다. 가장 교육을 잘 받고 유능한 세대가 20대다. 그 사람들이 갈만한 일자리가 없다. 일자리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나라 상황만 놓고 보면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안 하려고 한다. 잘 훈련된 20대들이 어떻게 글로벌하게 세계를 돌 수 있을지 정책을 잘 생각해내지 않으면 해결할 길이 없다. 그런 식으로 불만이 밖으로 나가야 국내 갈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최근 조사해보니 20대 여성은 거의 진보적이고 20대 남성은 거꾸로 보수적이더라. 극한 대립이 굉장히 큰 것 같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하고 끌고 갈지 희망이 보일 때 그 대립도 사라질 수 있다. 급급하게만 생각하면 갈등 구조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
- 내각제로의 전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나라 대통령제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 때부터 지금까지 헌법 개정을 통해 강화됐지 축소된 적이 없다. 정치적 능력과 관계없이 5년 동안 헌법상 권력을 맘대로 휘두르는 게 현재 우리나라 대통령제다. 대통령이 권력에 도취되거나 주변 사람들이 권력을 향유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제의 모든 문제가 도출되고 있다.
1987년 이후 현재의 헌법 체제 하에서 여덟 번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정상적 나라라면 최소한 한 명은 정치를 해온 사람들 중에서 대통령 후보가 나와야 하는데 (1987년 이후) 그런 사람이 없다. 갑작스럽게 정치와 전혀 관련이 없는 후보들이 나오는 게 우리의 실정이다. 대통령제가 막강하니 국회에서 사람이 자라지 않는다. 정치인이 자라지 않으니 정치지도자가 나오지 않는다. 제대로 된 정치지도자가 나오지 않는 나라는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내각제를 이야기하면 우리나라는 왜 거부반응을 보일까. 1960년 4.19혁명 이후 장면 정권이 1년도 못 가서 무너졌다.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고 장면이라는 총리의 개인적 문제로 정부가 실패했다. 그 다음부터 박정희가 장기집권을 하며 대통령 행세를 하니 그 뒤에 (권력자들이) 그 사람을 본떴다.
1987년 헌법 개정 과정에선 대통령 직선제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권력구조 자체를 생각해볼 여지가 없었다. 1990년에 3당 합당 과정에서 내각제를 한다고 했다가 뒤집어졌고,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연합 과정에서도 내각제를 한다고 했다가 뒤집어졌다. 그러면서 내각제는 해선 안 되는 것처럼 돼 버렸다. 하지만 국회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권력체제로 바뀌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순탄히 갈 수 없는 현실이다.
윤석열 후보의 적폐청산 이야기도 정치적으로 숙련된 사람이면 그런 소리를 안 했을 거다. 무의식 중에 그런 이야기를 한 것으로 판단한다. 권력에 취해 청와대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된다고만 생각하는 것이다. (대선에서 승리하면) 대통령만 그러는 게 아니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청와대를 떠나기 전까지 모든 일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성공한 대통령이 나오지 못하는 큰 요인이다. 내각제가 아니고 설사 대통령제를 이어간다고 해도 현재 대통령이 가진 권한을 상당 부분 축소해 의회로 넘겨야 한다."
- 중도층 확장을 위해 대선 후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이재명 후보, 윤석열 후보에게 개인적으로 바람이 있다. 반드시 통합정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소위 대전환을 맞이하려면 여야가 극한대립을 해선 절대 안 된다. 당면한 (코로나19) 오미크론 사태부터 여러 사회적 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대전환이 필요하다.
국회에서 여야가 옥신각신하다 전환기에 잘 대응하지 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어려움을) 빨리 극복하기 위해 대통합정부를 이룩해 국민 총화를 이끌지 않으면 그 정부도 성공하기 어렵다고 본다. 대통합정부를 생각하지 않고 '내가 대통령이 되면 주어진 권한을 내 맘대로 쓰겠다'고 생각하면 발전이 없을 것이다.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