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순천시 동천은 생태도시 순천의 도심을 가로질러 순천만으로 흘러가는 하천이다. 동천은 2019년부터 학교교사와 마을교사, 생태환경전문가가 함께 만들어가는 동천마을교육과정을 진행하는 배움터로 거듭나고 있다.
동천 인근에 위치한 순천삼산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동천은 아주 의미있는 학교밖 학교인 생태학교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하지만 순천시 도시계획에 의해 2021년 10월부터 동천에 도로확장공사가 진행되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첫날부터 동천마을교육과정을 함께 했던 이들은 마음을 모으기 시작했다.
2021년 10월 15일 동천생태탐사를 하러 나간 순천삼산초등학교 5학년 담당교사와 학생들은 바로 이틀전까지 동천 물고기를 관찰하던 장소에 포클레인이 들어오고 공사가 시작되는 현장을 목격했다. 다음날부터는 학교에 소음이 들릴 정도로 도로확장공사가 시작되었다. 학생들과 교사들은 울먹거렸고, 동천마을교육과정을 함께 만든 이들의 안타까운 탄식이 이어지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얼마전까지 우리들이 물고기와 새들을 만났던 장소였어요."
"동천의 생물들이 점점 살 곳을 잃어가네요. 언젠가 저희들의 살 곳도 점점 잃어가겠지요."
생물을 탐사하던 곳이 사라져 버렸어요
그날 이후 학생들과 교사들은 날마다 변해가는 동천 공사현장 사진을 찍어 학년 밴드에 올리며 생태배움터였던 동천에서 만난 생물들의 서식지가 파괴되는 현장을 공유했다. 학부모와 교사들도 모임을 열어 학생들의 배움터인 동천이 파괴되는 것에 대해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2019년부터 동천마을교육과정을 함께 만들어 온 우리마을교육연구소, 순천풀뿌리교육자치협력센터, 순천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환경과생명을지키는교사모임도 함께 소통하기 시작했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 만났던 왜가리, 중대백로, 흰뺨검둥오리와 수달가족도 더 이상 그 곳에서 만날 수 없었던 것이다.
몇 년전부터 계획된 도로확장공사 자체를 무작정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인 수달 가족이 살아가는 생태하천 동천이 포함된 도로공사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을 모으고 최대한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방법을 모색할 수는 없었는지 궁즘증은 더해갔다.
동천마을교육과정을 통해 동천의 생물들을 사랑하게 된 순천삼산초등학교 학생들은 학교 복도에 '동천 4차선 도로 건설에 대한 의견'을 모으기 시작했다.
"동천 4차선 도로를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면 동천 동식물들이 많이 죽기 때문이다."
"생물들에게는 피해가 안가도록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순천은 생태도시입니다. 지금 생물들이 보호받고 있는 걸까요?"
"아파트가 들어오는 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좀더 생물들이 죽지않게 조심히 만들면 좋겠다."
"지구온난화가 심각한데 파괴하고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배울 기회를 뺏는 것 같다."
공사를 일주일 중단하겠습니다
순천시 마을교육공동체 중간지원조직인 순천풀뿌리교육자치협력센터는 10월 29일 순천시 담당 부서와 연결을 통해 동천도로확장공사에 대한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간담회에는 순천삼산초등학교 학생 대표 3명을 비롯한 교사, 학부모회, 학교운영위원장, 동천마을교육과정을 함께 만든 시민사회단체가 참석했고 순천시 담당 부서, 시공사, 시행사가 함께 했다.
순천시 담당 부서로부터 동천 4차선 도로확장공사에 대한 계획과 구간, 공사일정 등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순천삼산초등학교 교사들은 동천에서 어떤 교육활동이 진행되는지 설명했고, 학생대표들은 동천도로공사에 대한 의견을 이야기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동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차분하게 물었다.
"생물다양성과 동천생태계에 대한 고려가 있었는지?"
"공사로 인한 대기오염, 수질오염, 소음을 포함해서 적절하게 공사가 이뤄진 건지?"
"하천 점유와 원상복귀계획이 있는지? 공사로 인해 학습권에 대한 피해는 고려되었는지?"
순천시 담당부서도 시행사, 시공사도 동천에서 진행되는 마을교육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이라도 공사를 중단하고 대책을 마련하라는 쉽지않은 요청에 응해주었다. 동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마음이 움직였던 것일까?
동천 4차선 도로확장공사는 동천마을교육과정을 함께 하는 많은 이들에게 더욱 더 동천을 사랑하게 만들고 동천 생태배움터를 지켜내야 한다는 마음을 더욱 단단하게 엮어주었다. 동천마을교육과정을 통해 생명을 존중하고 동천생물과 친구가 되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된 학부모들이 이야기했다.
"공사를 막자는 것이 아니라, 동천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도로확장공사 방법을 고려했는지 묻고 싶었어요."
"내년에도 동천마을교육과정이 진행될 수 있도록 동천생태계에 피해가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공사를 진행해 주세요."
"동천마을교육과정은 동천에서 가능하지, 다른 공간에서 대신할 수 있는 교육활동이 아니에요. 누구보다도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귀기울려야 해요."
간담회 이후 일주일 동안 공사는 중단되었고 시공사로부터 대책을 전달받았지만 우리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공사로 인해 하천생태계가 100% 복원될 수 없지만,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동천마을교육과정을 통해 가슴아픈 현재 동천이 변해가는 과정도 담아가자고 했다.
순천삼산초등학교는 학부모회 총회, 교직원 전체회의,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지속가능한 동천마을교육과정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사항을 이야기했다.
11월 7일에는 순천삼산초등학교 교육공동체(학생회, 교직원, 학부모회, 학교운영위원회)와 동천마을교육과정을 함께 만들어간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동천마을교육과정을 위한 모임(이하, 지동모)"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이어가기로 했다.
동천은 생태학교에요
'지동모'(지속가능한 동천마을교육과정을 위한 모임)는 여러차례 모임을 통해 동천마을교육과정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사항을 정리했다. 동천은 시민들의 산책 공간 뿐만 아니라, 마을교육과정이 운영되는 교육공간임을 알리는 안내판과 교육활동 거점 공간 마련 등이었다.
2021년 12월 14일 순천삼산초 교사, 학부모회, 학교운영위원회, 우리마을교육연구소와 순천시 평생교육과, 도시과, 시공사와 만남을 가졌다. '지동모'의 요구사항을 순천시 담당부서와 시공사가 협의하기로 했다. 동천은 어린이 청소년들의 '생태학교'임을 이야기하며 순천시 유관 부서들의 소통과 협조를 요청했다.
순천시 평생교육과 팀장은 동천마을교육과정에 대해 도시과, 생태환경과, 하천 관리부서 등과 함께 소통하겠다고 답했다. 이렇듯 동천마을교육과정은 순천시 유관부서, 공사 시공사, 교육주체들과 인연맺게 하였다.
2021년 12월 29일 순천삼산초등학교로 '시행사는 동천 안내판 설치 가능하다'는 공문이 도착했다. '지동모'는 동천을 답사하며 동천에 설치할 안내판의 내용을 준비해 나갔다.
2022년 1월 14일 순천삼산초등학교 교장실에서 시공사 담당자와 면담을 통해 동천 안내판 설치에 대한 최종 협의를 마쳤다. 동천에는 모두 5개의 안내판이 설치될 예정이다.
순천삼산초등학교 학생들이 제작한 동천생태지도를 중심으로 동천이 생태학교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선보이게 된다. 또한 시공사는 동천현장 교육시 20여명이 앉아서 교육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순천시와 설치 협의를 통해 진행할 예정이다.
지속가능한 동천마을교육과정을 위해 많은 이들이 마음을 모았지만 특히 양우용 순천삼산초 학교운영위원장이 지자체와 시행사와 협의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다.
양우용 위원장은 "도로확장공사로 인해 훼손이 동천생태계가 원상복귀되지는 못하겠지만, 최대한 유해물질 처리를 잘 해 달라"고 시공사에 요청했다. 시공사 담당자는 "교각을 놓는 도로확장공사가 마무리되면 동천에 다시 물길이 흐르고 최대한 복원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동천에서 만났던 생물들을 꼭 다시 만나보고 싶어요
2021년 10월 15일 가슴아픈 동천 도로확장공사를 마주한 지 5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훼손된 동천에서 만나지 못했던 수많은 생물들에 모습에 속울음을 해야 했던 우리들은 그로 인해 한걸음 더 성장했다.
동천마을교육과정을 통해 '사람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배운 학생·교사·학부모·마을교육활동가·시민사회단체는 가슴아픈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서로 소통하고 고민하며 대책을 논의했다. 그 과정에 지자체와 함께 협의하고 가장 민감한 당사자인 시공사 담당자와도 인연을 맺게 되었다.
지속가능한 동천마을교육과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생태도시 순천을 만들어가는 여정임을 생각한다. 양아린 순천삼산초등학교 학생회장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이 기억이 살아숨쉬는 날들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지동모'는 동천으로 향한다.
"공사가 끝난 후에 동천에서 만났던 생물들을 꼭 다시 보고 싶어요."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우리마을교육연구소 사회적협동조합'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