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약자에게 가혹합니다. 법의 바깥으로 내몰린 삶도 존재합니다. 유권자가 가장 대접 받는 대선 시기, 유권자로 주목받지도 호명되지도 않는 사람들을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가 만납니다. 이들을 대변하는 정치를 꿈꿉니다.[기자말] |
"우리가 예전에는 시청 지하도에서 많이 잤어요. 지하도는 조금 따뜻하니까. 그런데 한번은 거기 지하도에 무슨 문을 하나 만들었더라고. 거기 써 붙여놓기를 '12시면 이 문을 잠굽니다' .나가라는 거지.
거기있던 사람들이 서울역에도 가고 광화문에도 가고 뿔뿔이 흩어졌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르죠. 1월에만 서울역에서 2명, 남대문에서 1명, 종각에서 1명 노숙하던 이들이 죽었어요. 그런데 누가 죽었는지 안 보여도 경찰서에서는 확인을 안 해주고."
-로즈마리, 홈리스행동 야학 학생회장
법은 약자를 차별한다. 법은 때때로 빈곤 자체를 처벌하기도 한다. 집이 없어서 공공장소 또는 역사를 점유하고 앉거나 누워 있는 행위는 법 위반이다. 돈이 없어서 구걸을 하는 것 역시 불법이다. 가난으로 인해 빵을 훔치는 장발장뿐 아니라, 집이 없어 공공장소에서 생활하는 것 역시 처벌의 대상이 된다. 그러면 집이 없는 사람은 어디에 존재하라는 말인가?
스스로 뭘 해서 벌어 먹고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던 과거의 어느 시기, 서울역이나 용산역 등지에서 거리 홈리스를 마주치면 '나도 저런 처지가 될까' 두려운 마음이 든 적이 있다. 상대적으로 안락한 위치에서 나온 주제넘은 불안이었겠지만, 홈리스가 어떤 삶을 누릴 수 있는가는 그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처지로 내몰렸을 때 최소한으로 보장되는 사회안전망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2020년 한 해 295명의 홈리스가 사망했다고 한다. 사람이 살 만하지 않은 곳에서 병환과 가난에 시달리다 사망하거나, 추위와 더위 탓에 목숨을 잃기도 한다. 대부분은 사회가 살릴 수 있었던 목숨이었을 것이다. 홈리스가 얼마나 어떻게 사망하고 있는지 제대로 된 공식 통계조차 없다. 한 해 295명이 죽는다는 통계 역시도 관련한 민간단체가 알음알음 파악한 수치다.
정당들이 온통 '국민'을 부르짖는 대선 시기가 되었는데, 홈리스는 단 한 번도 유권자로서 호명되지 않는다. 부채감을 안은 채로 당사자와 활동가들이 함께 홈리스 야학을 운영하며 홈리스 인권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홈리스행동 측과 지난 9일 남영역 부근의 '반빈곤센터 아랫마을'에서 만났다(인터뷰는 A씨, B씨로 익명 표기).
"노숙인들의 존재 자체를 표적 삼는 현실... 별다른 주거대안 없어"
- 서울역에서 홈리스 쫓아내지 말라고 집회하던 때가 기억이 나는데요. 요즘은 어떤가요?
A씨: "거리가 추우니까 기차역에서 노숙을 하는건데, 철도안전법 제 48조에 보면 '역시설에서 노숙하는 행위'가 금지사항으로 여전히 규정돼 있어요. 철도 안전을 위해 만든 법인데 역시설의 노숙인들이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는 아니잖아요. 노숙 행위를 금지한다고 하지만 사실 노숙하는 사람의 존재 자체를 표적으로 삼는 거죠. 예를 들어 똑같은 캐리어라고 해도 기차 타러 온 사람의 캐리어는 문제가 안 되는데, 노숙인처럼 보이는 사람의 캐리어는 역사 밖으로 치우라고 명령하는 거예요. 철도안전법 뿐만 아니라 경범죄처벌법이나 도로법, 공원 관리 관련 조례들도 홈리스를 처벌하는 근거로 쓰이고 있고요."
B씨: "공공장소가 상업화되면서 노숙인에게 다 가혹해지는 부분도 있어요. 용산역같은 경우에 구름다리라고 불리는 공간에 원래 홈리스들이 많이 지냈는데, 이게 호텔이랑 연결이 되면서 다 쫓아냈거든요. 공공장소가 상업화될수록 홈리스들이 밀려나는 거죠."
- 쫓아내면 다른 대책이 없는 거잖아요, 어디로 사라질 수도 없는 거고.
A씨: "노숙인 시설로 가라고 하지만, 시설은 인간의 주거생활에 결코 적절치 않아요. 모두를 똑같은 규정에 옭아매고, 내무반식 주거환경은 지금 같은 감염병 팬데믹 시기에 위험하기까지 하죠.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임시주거지원도 열악한 쪽방, 고시원에 불과해 방역에 취약한 것은 마찬가지에요. 이렇게 별다른 주거대안이 없기 때문에 거리에라도 있는 분들이 있는 거거든요. 최근에는 코로나 때문에 시설들에서 입소를 거부하는 측면도 있고요."
B씨: "지금의 홈리스 지원정책은 시설 중심이에요. 시설에서 모범적으로 잘 지내면 상으로 임대주택을 준다는 식이거든요. 그런데 주거라는 자원의 배분에서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대상이 바로 홈리스 아닌가요? 홈리스 대책을 시설 중심이 아니라 '우선 주거를 제공하는'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코로나로 인해 홈리스 분들은 상황이 더 어려워졌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A씨: "홈리스 상태라는 건, 코로나 상황에서 정말 최소한의 방역 수칙도 이행할 수 없는 그런 조건 속에서 사는 거에요. 노숙인 시설부터 쪽방, 고시원 같은 주거지에서는 거리두기가 불가능하죠. 방역수칙을 보면 환기를 하라고 하는데 창문도 없는 방에 살면서 환기를 할 수가 있나요? 꽉꽉 들어찬 방들에 부엌과 샤워실을 많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상황에서 무슨 거리두기가 가능하겠어요.
작년 초에 서울역 인근 노숙인 시설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했어요. 당시 확진자는 100여명, 밀접 접촉자가 250여명 대규모로 발생했는데, 수십 명씩 한 곳에 잠을 자는 시설이었으니 감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죠. 재작년 초, 코로나19가 터지자마자 경기도에 있는 어떤 시설에서는 '외출을 하지 마라. 일을 하러 나갈 거면 시설에서 나가라' 이렇게 통보를 해서 강제퇴소를 시켰어요.
국가는 홈리스들에게 자가 격리가 가능한 공간을 내주지 않았고, 홈리스들은 계속해서 열악한 주거나 시설, 공공장소에 방치가 됐어요. 그러다보니 대규모인 것 외에도 소규모 집단 감염이 계속해서 발생해왔죠."
- 백신접종이나 PCR검사는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상황인가요?
A씨: "코로나 백신이 후유증이 심한 백신이기 때문에 백신 휴가 정책도 나오고 하는거잖아요. 그런데 거리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은 백신을 맞고 나서 추운 거리에서 여전히 주무셔야 하는 거예요. 백신에 대한 정보 접근, 백신 예약을 할 때의 어려움도 있어서 백신 접종률이 낮은 상황이고요. 코로나 재난지원금 역시도 휴대폰을 통해서 신청을 해야 했기 때문에 전국민 재난지원금 신청률이 99%에 달할 때 홈리스들은 신청률이 30%대 밖에 되지 않았어요. 코로나 관련 지원정책에서도 홈리스들은 배제가 되는 것이죠.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서울시는 홈리스 지원시설이나 급식지원소는 일주일 이내의 음성결과서가 있어야만 이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바꿨는데, 그러면서 홈리스 분들이 그동안 이용하던 지원도 접근하기가 더 어려워 졌어요. 이 봉투 사진이, 홈리스 당사자 한 분이 한 해 동안 받았던 PCR검사 결과지를 모아놓으신 거예요. 1년 동안 60회 이상을 받았다고 하네요." (관련해 이야기를 듣던 다른 이는 "하도 검사를 받으니 코 안에 굳은살이 배겨서 더 이상 아프지도 않아요"라고 말했다.)
- 급식지원 접근성이 떨어지면, 당사자들은 당장의 어려움이 크겠는데요.
A씨: "원래도 노숙인 대상 공공급식소들이 몇 개 되지 않거든요. 그런데 서울시가 각 노숙인 지원기관에서 음성확인서가 있는 경우만 이용하게 하라고 하면서 이용인원이 확 줄었어요. 밀집해서 급식을 하기가 어렵다고 한다면, 쪽방이나 고시원 사는 분들은 반조리 음식이라도 제공을 해서 가져가서 먹을 수 있게 해주거나 일시적으로 바우처 제도를 실시해서 근처 식당 이용을 하게 하거나, 그런 대안을 충분히 찾을 수 있는데 그냥 외면을 해 버린거죠."
- 2019년에 비해 20년도 홈리스 사망자 수가 2배 정도 증가한 것으로 집계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코로나 이후 시설 이용이나 급식 지원에 접근하기 어려워진 탓일까요?
A씨: "그런 부분도 있을 것이고요. 코로나 때문에 홈리스들의 의료 접근권 자체가 매우 제한받는 상황이 초래됐어요. 노숙인 의료급여로 치료를 받으려면 지정된 병원에 가야 하게끔 되어 있는데, 지정병원 중 대부분이 코로나19 전담병원이 되어버렸거든요. 코로나 전담병원들이 얼마나 미어터지는지 알고 계시잖아요.
그러다 보니 홈리스들이 입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병상이 없어 입원을 못 하고, 응급실 가야 하는데 베드 확보가 되지 않아서 가지 못하는 재앙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어요. 노숙인 의료급여로도 모든 병원 다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해결되는데, 역시 외면당하고 있는 문제예요."
공공장소에 머무를 권리... 제대로 된 나라의 역할은
공공장소는 누구의 것일까? 공공장소가 모두의 것이라면, 홈리스에게도 '공공장소에 머물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집이 없어 거리를 점유하는 홈리스에게 죄를 물을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적정주거를 제공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통상 기차 역사 등에서는 노숙인의 개인물품이 '집행(처분)'돼야 할 대상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일반 시민에게 사유재산권이 있다면, 홈리스에게도 그러하다. 구걸 행위를 처벌하는 경범죄처벌법이 아직 존속한다는 것이 가장 놀랄만한 일이다. 가난은 죄가 아니지 않는가.
홈리스의 존재는 '무연고자 시신'으로 행정당국의 시스템에 편입된다. 무연고자라고 칭하지만, 대다수 홈리스들에게도 연고는 있다. 즉 법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의지하며 지내온 주변인들이 고인을 추모할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 형국이다. 동료 홈리스들이 고인을 추모할 수 있도록 부고를 통해 죽음을 알리도록 법제화하고, 법적 가족이 아닌 연고자들이 장례를 치를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공공장소에서 누구도 쫓아내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정부, 나아가 모든 홈리스에게 우선적으로 집다운 집을 국가가 제공하겠다 말하고 실행하는 정부가 탄생할 수 있을까. 홈리스는 한 사회의 최저선을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이런 최저선의 삶도 존엄할 수 있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 역할을 하는 나라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강민진씨는 청년정의당 대표입니다.